©TongRo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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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대학생 A 씨의 통화 목록은 오늘도 부재중 전화로 가득하다. “전화만 오면 심장이 뛰고 식은땀이 나요.” 이는 비단 A 씨만의 일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전화를 받기 싫어 일부러 핸드폰 전원을 꺼 두거나, 대신 전화해 줄 사람을 고용한 적이 있다는 경험담을 공유하며 일종의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전화를 뜻하는 ‘콜(Call)’과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Phobia)’에서 파생된 콜 포비아(Call Phobia). 그 간편하고도 단순한 행위에 공포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MZ세대는 “비대면이 편해요”

  지난달 31일, 구인·구직 전문 플랫폼 ‘알바천국’에서 MZ세대 이용자 1,496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콜 포비아 증상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총 35.6%였다. 이는 지난해보다 5.7%p 높아진 결과다. 더불어, ‘콜 포비아 증상을 느끼는 상황(복수 응답 허용)’은 △지원·면접 등 구직 관련 전화를 할 때=72% △업무상 전화를 할 때=60.4% △제품·서비스 문의 전화를 할 때=44.5% 순으로 드러났다.

  또, ‘콜 포비아에 대처하는 방법이 존재한다’라고 대답한 응답자들의 답변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 건 ‘모르는 번호의 전화는 받지 않기(39.2%)’였다. 이외에도 △전화 통화를 최소화하고 이메일·문자 위주로 소통=28.8% △전화 통화를 하기 전 미리 대본 작성=28.4% 등의 답변이 이어져 눈길을 끌었다. 이들 대부분이 두려움에 맞서기보다 피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위 수치는 자칫 콜 포비아가 구인·구직 또는 업무에 부담감을 느끼는 환경에 한정된다고 오인하도록 만들기 쉽다. 그러나 요점은 해당 현상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쉽게 발견된다는 것이다. A 씨는 “친한 친구, 심지어 가족과 연락할 때도 메신저를 선호한다”며,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식당을 예약할 때도 되도록 온라인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양상을 고려한다면, 콜 포비아를 단순 두려움으로 치부하기엔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나비 효과? 

  전 세계를 멈추게 했던 코로나19의 여파로 언택트 서비스는 근 몇 년간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사람 간의 상호작용이 필수로 여겨지던 사업도 빠르게 변화해 갔다. 지난 2021년, 부동산 중개 플랫폼 ‘다방’은 비대면 부동산 전자계약 서비스 ‘다방 싸인’을 출시했고, 한국교육방송공사는 공교육 수업을 대체할 EBS 온라인 클래스를 신규 도입했다. 

  이러한 시장 흐름 속에서 젊은 층의 ‘비대면 선호’는 꽤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언택트 서비스가 최근 떠오르는 소비 동향 ‘시성비’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가성비’의 합성어인 시성비는 주어진 시간을 그 누구보다 알차게 활용하려는 젊은 층의 소비 패턴을 뜻한다. 1분 이내의 영상을 편집한 숏폼 콘텐츠와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문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통할 수 있는 문자 메신저가 등장하면서 그들에게 전화 통화는 ‘시성비 떨어지는 행위’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이 번거로움이 ‘포비아’라는 이름으로까지 확장된 이유는 무엇일까.

 

‘완벽함’이 만든 공포

  A 씨는 생각을 정리할 새 없이 대화해야 하는 점이 통화를 꺼리게 되는 원인이라 전했다. 전화 통화는 상호작용이 즉각적으로 이뤄지는 매체로 빠른 대응과 처세가 필요하다. 이미 꺼낸 말을 되돌릴 수 없다는 두려움도 전제된다. 하지만 이 현상이 유독 MZ세대 사이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이유는 그들이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초년생이란 점에 있다.

  지난 2020년, 취업 포털 ‘인쿠르트’는 831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대졸 신입사원이 갖추었으면 하는 역량 및 태도’를 물었다. 그 결과, 대기업 인사담당자 내에서 최다 득표를 받은 항목은 다름 아닌 ‘커뮤니케이션 능력(18.7%)’이었다. 단순히 관계를 맺는 방식에 불과했던 소통은 이제 젊은 층이 지녀야 할 역량의 영역으로 탈바꿈했다. 실수가 두려운 사회 초년생에게 전화가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기도 하다.

  한때 잘못 전송된 메시지는 웃긴 밈(meme)으로 활용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메신저 플랫폼들이 연달아 메시지 삭제 기능을 도입하면서 이 또한 역사 속으로 발자취를 감추게 됐다. 소통마저 스펙이 된 시대. 어쩌면 콜 포비아는 삭제 없는 세상에서 우스워지지 않기 위한 청년들의 생존법일지도 모른다.

 

이지은 기자 jieuny9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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