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만 년 전, 지구상의 육상동물 중 99.9%는 자유롭게 자연을 누비는 야생동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의 끊임없는 개발과 영역 확장 끝에 육상동물 중 30%는 인간, 67%는 인간이 키우는 가축, 야생동물은 단 3%뿐이다. 이마저도 온전히 자연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관광지, 도로, 산업단지, 주택 조성 등 개발로 인해 야생동물의 서식지는 점점 줄어들고, 그들을 향한 위협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야생동물의 삶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전국에 분포 하고 있는 19개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다. 이들은 제 자리를 침범당하며 위험에 처한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재활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그중에서도 충청남도 예산군, 공주대학교 내에 있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 논산 △아산 △천안 등 충청남도 내 시, 군 15개의 야생동물 구조를 담당한다. 작년에는 2,392마리의 야생동물을 구조하며 야생 동물 조난사고에 대응하고 있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입구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입구

야생동물을 향한 여정
  지난달 19일, 21인치 캐리어와 작은 백팩을 메고 자취방에서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를 찾았다. 센터에 도착한 건 오후 1시 50분경. 내부를 들여다 보기도 전에 구조 차량에 탔다. 천안에서 구조 전화가 걸려 왔기 때문이다. “멧비둘기가 충돌로 인해 조난 상황인 것 같아요.” 구조란 으레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 신속하고 재빠른 처치로 생명을 살려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을 야생동물을 떠올리며 결연한 마음으로 차의 문을 닫았다.

  하지만 구조는 긴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구조 요청이 들어온 곳은 천안의 한 공 장단지로, 예산군에 있는 센터에서는 한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다. 충청남도에 야생동물 구조센터가 하나뿐이다 보니 인근 지역 뿐 아니라 도내 지역이라면 어디든 구조 접수를 받는다. “여름 번식기가 돼서 구조를 필요로 하는 동물들이 많아지면 아침에 구조를 나가 저녁에 들어와요. 그냥 운전하는 사람들이죠.” 김리현 재활관리사는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능숙한 운전으로 구조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 비가 얇게 흩날리고 있었다. 신고자는 주차장 한편의 종이상자로 안내했고, ‘다친 새 있음’이라고 써둔 상자를 거두니 날개를 심하게 다친 멧비둘기가 보였다. 김리현 재활관리사는 멧비둘기의 상처로 보아 포식자의 공격을 당했거나 유리창에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10분이 채 되지 않아 마무리된 구조, 또다시 이동을 위해 차에 몸을 실었다.

▵구조된 멧비둘기다
△구조된 멧비둘기다

투명한 죽음을 기록하는 사람들
  새들은 투명한 유리를 인식하지 못한다. 유리가 반사하는 하늘을 진짜 하늘로 인식하고 죽음을 향해 날아든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유리에 충돌해 죽는 새들이 1년에 약 800만 마리다. 800마리도, 80,000마리도 아닌 800만 마리. 유리창 충돌로만 매해 광역시 전체 인구의 3~4배에 달하는 새가 죽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렇게 죽는 새들은 이렇다 할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작은 새들은 가볍기 때문에 유리를 깨트리는 일도 없고, 유리창에 피가 많이 묻어나지도 않는다.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새들은 죽어가고 있다. 

  사실 이런 피해를 방지하는 일은 간단하다. 투명한 구조물에 5×10cm 간격으로 스티커를 붙이기만 해도 새들은 해당 공간으 로 비행을 시도하지 않아 피해를 99%나 줄일 수 있다. 센터의 유리창에서도 일정한 간격으로 부착된 스티커를 볼 수 있었다. 여태 그걸 몰라서, 어쩌면 귀찮아서 800만 마리의 새들이 죽어야 했던 거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단지 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해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그치지 않고, 야생동물의 조난 원인까지 데이터화 하고 있다. 구조 업무를 마치고 센터로 돌아와 구조된 동물의 종과 구조된 위치, 조난 원인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다. 특히 조난 원인을 명확하게 하는 일은 야생동물을 위한 법안이나 조치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처럼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를 비롯한 야생동물 구조센터가 축적해 둔 데이터는 2022년,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야생동물이 유리창에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공공기관은 스티커 부착 등 이를 방지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의무화한 것이다. 이에 김리현 재활관리사는 “그런 법이 개정됐을 때 사용되는 데이터들이 저희 같은 야생동물 구조센터들의 데이터거든요. 그래서 원인 파악을 열심히 하는 중이죠.”라며 꼼꼼한 원인 파악의 이유를 설명했다.

▵와이어에 매여 있던 고라니다
△와이어에 매여 있던 고라니다
▵충돌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라니다
△충돌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라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63%
  “안녕하세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입니다.” 점심 식사가 한창인 시간, 대화 소리를 뚫고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그날 구조 전화를 담당하던 정병길 재활관리사는 이후에도 서너 번의 구조 전화를 더 받고, 현장 사진을 전달받느라 식사하는 와중에도 계속 핸드폰을 들여다봐야 했다.

  그렇게 다시 구조 차량에 탑승해 켄넬과 포획망, 절단기를 싣고 천안으로 향했다. 고라니가 올무에 걸렸는지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나 한참 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전화였다. 1시간 20분을 달려 현장에 도착했고, 구조자들이 걱정스레 가리킨 곳에는 무성한 덤불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고라니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엉켜있는 덩굴 사이 얇은 와이어가 고라니를 옭아매고 있었다. 빠져나가기 위해 부단히도 몸부림 친 탓에, 뒷다리에는 심한 상처가 나 있었고 주변 풀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절단기로 와이어를 자르자 빠져나오는 건 금방이었다. 사람이 하면 이렇게 간단한 일도 동물들에겐 생명의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어 고라니가 쓰러져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당진의 한 도롯가에서 차량 충돌로 추정되는 고라니를 구조했다. 구조 현장 바로 옆은 공장이었고, 인근에도 중공업 공장들이 꽤 많이 위치해 있었다. 이 때문에 몸이 떨릴 정도로 큰 트럭들이 위협적으로 지나갔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신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번째 고라니 구조를 마치며 정병길 재활관리사가 신고자들을 향해 건넨 말이다. 사람이야 다치면 제 손으로 신고하거나 주변 사람들이 바로 알아채 신고해 주지만, 동물은 스스로 구조 요청을 할 수 없다. 또한 운 좋게 구조를 받더라도 완벽하게 야생으로 돌아가는 동물은 36.9%에 그친다. 한참 동안 애써가며 동물들을 구조해도 폐사하거나, 안락사당하는 동물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날 구조한 첫 번째 고라니는 다리를 너무 심하게 다쳐 회복이 어려웠고, 두 번째 고라니는 척추와 골반이 골절돼 마찬가지로 회복이 불가능했다. 더 이상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판단하에, 구조는 안락사로 끝이 났다.

▵ICU에서 회복 중인 너구리다
△ICU에서 회복 중인 너구리다

야생동물의 시각으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접수되는 구조 요청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는 야생 동물을 향한 관심의 증가를 반증하기도 하나, 동시에 야생동물이 계속해서 터전을 잃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건축이나 재개발 등 규모가 큰 인간 활동은 동물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김리현 재활관리사는 “개발 전에 이뤄지는 환경영향평가가 더욱 면밀 하게 이뤄져야 한다”며 야생동물의 서식지 감소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것들을 너무 많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센터를 방문한 지도 어느덧 3일째,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의 먹이 급여를 보며 ICU(집중 치료실)에 앉아있었다. 치료실 창문에는 귀여운 그림들이 오밀조밀하게 그려져 있다. 동물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그려둔 것이라는 설명에 수많은 죽음을 낳았을 투명 유리창을 떠올렸다. 이뿐일까, 케이블카, 골프장, 각종 관광지 등의 시설은 야생동물에게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졌다. 우리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 이들의 삶은 우리에 의해 끊임없이 침해되고 있다.

  그치지 않은 비를 맞으며 서울에 돌아오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저 산에 있는 야생동물이 언제까지나 야생동물로 남아있을 수 있길, 사람들이 한 번쯤은 더 야생동물을 생각해 주길 바랐다.

진효주 기자 hyoju_pres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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