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넌 지금 질문을 할 때가 아니라 대학에 갈 생각을 해야 할 때야”란 답만 돌아오던 때였다.

  “그럼요, 정말 그때가 좋았죠. 뭐 생각할 필요가 있었나요.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됐죠.” 김보영의 소설집 『얼마나 닮았는가』 중 ‘0과 1 사이’에서 양육자들은 아이들이 겪는 시기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입시를 치르는 청소년기는 ‘앉아서 공부만 하면 되는’ 시기이자, 그저 대학 입학을 위한 시기일 뿐이다. 따라서 김 여사는 딸 수애가 ‘시대착오적인 교육을 중지하라’, ‘무한경쟁을 중지하라’, ‘입시교육 철폐’ 같은 글씨가 쓰인 종이를 들고 밖으로 나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들은 아이들이 세상에 질문하는 것을 그저 시간 낭비라고 여긴다. 1분 1초도 아까운 시기를 방해하는, 자질구레한 것 중 하나일 뿐이다.

  2009년 처음 발표된 이 글에서 나타나는 사회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은 여전히 청소년을 ‘미성숙한’ 사람으로 규정한다. ‘0과 1 사이’ 속 어른들처럼, 그들의 온당한 물음을 지나가는 투정으로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다. 청소년 또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할 수 있는 존재다. 어쩌면 어른들보다 더 풍부한 시선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청소년을 입시로 가두곤 ‘그땐 다 그래’라며 질문을 회피하는 일은 어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그 말에 담긴 무심함과 비겁함을, 어리석음을 아는 어른이 되겠어”라고 다짐하던 수애의 말을 오래 곱씹는다. 시간여행을 할 수 없는 나는 과거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줄 순 없다. 그러나 고등학생 동생으로부터 과거에 내가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받곤 한다. 바쁜 일상에 건성으로 답했다가 이내 장문의 문자를 다시 써 내린다. ‘네 질문은 사소하지 않아’라는 마음이 네게 잘 가닿았길 바란다.

진효주 대학사회부장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