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이 물의 도시 아니야, 물의 도시”
  가평역에서 굴봉산역으로 향하는 경춘선 안, 한 아주머니가 창밖을 보며 하신 말씀이다. 경춘선은 북한강을 끼고 달린다. 가평역과 굴봉산역 사이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주변 풍경이 특히나 잘 보인다. ‘물의 도시’라 불러 마땅할 정도로 사방에 강이 보이기는 하지만, 거긴 춘천이 아니라 가평이다. 이런 사실관계를 떠나서 아주머니의 순수한 감탄은 내게 오래 기억에 남았다. 춘천에서 서울로 통학하길 3년 차. 그 경치에 감탄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가평역과 굴봉산역 사이의 풍경은 매일 다르게 아름답다. 주변의 산과, 캠핑장과 공원이 자리 잡은 자라섬, 철도와 나란히 놓인 교량이 양쪽 창으로 펼쳐진다. 햇볕이 쨍한 날에는 윤슬이 눈이 시리도록 반짝인다. 어둑하게 구름이 낀 날에는 한층 묵직해진 산과 강의 색채를 볼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껴 강과 산을 감춘다.

  그 풍경들을 눈에 담고 싶어 전자기기나 책을 내려놓고 창밖을 본다. 같은 열차에 타는 사람 중 나처럼 창밖을 보는 이는 거의 없다. 보통 자기 손에 든 휴대 전화를 쳐다보기에 바쁘다. 책을 읽거나 잠을 자거나 일행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좋은 풍경을 놓친다는 생각에 늘 아쉽다.

  일상에서 지칠 때마다 우리는 어김없이 비일상적인 시공간으로 떠난다. 한강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마천루 꼭대기에서 야경을 보고, 새로운 장소로 여행을 떠난다. 그 순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을 견디고 또다시 나아갈 힘을 안겨준다.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위해 다시금 일상에 최선을 다한다는 모순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구태여 일상을 떠나지 않아도 우리는 그러한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게는 열차의 창밖을 보는 일이 그렇다. 어제와는 다르고 내일엔 또 다를 풍경에서, 그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을 갖는다. 나만의 비일상적인 경험은 힘차게 하루를 시작할 용기를 준다.

  창밖 풍경을 보지 않아도 좋다. 새로 찾아간 가게가 의외의 맛집일 때, 늘 가던 곳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을 때,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을 때 우리는 일상을 견딜 힘을 얻는다. 각자의 일상에서 반복되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보자. 온전한 나만의 경험과 기쁨을 찾아낼지 모른다. 많은 이들이 지나친 풍경을 보고 작은 감탄을 내뱉던 아주머니처럼.

이영서 학생 논설위원(문헌정보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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