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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문제’ 보고만 있을 것인가?
난민 수용은 우리나라 역시 풀어야 할 숙제
2015년 09월 22일 (화) 17:09:49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chs@ssu.ac.kr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심각한 난민 위기를 맞았다. 2015년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도착한 난민만 이미 35만 명을 넘었으며, 이 행렬은 연말까지 더욱 늘어날 예정이다. 시리아 내전으로 4백만 이상의 난민이 해외로 도피해 떠돌게 된 상황에서 터키, 레바논, 요르단 등 유럽 주변국의 생활 여건이 처참하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민 가운데 그나마 사정이 나은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난민은 자신이 희망하는 목적 국가에 도달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다. 작은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침몰 사고나 표류 등으로 사망한 사람이 올해에만 3천 명이 넘었다. 그 중에는 해변에 숨진 채 발견된 세 살 어린이 아일란의 사례도 있다. 또, 밀폐된 트럭을 타고 헝가리에서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다가 질식해 숨진 사람 가운데는 한두 살의 영아도 있었다고 한다. 영국으로 가서 새로운 삶을 꿈꿨던 수많은 난민이 프랑스의 해저터널 입구에서 기차에 매달리려고 안간힘을 쓰다 목숨을 잃었다.


이에 유럽 사회는 난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주의적 수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번 사태에 대해 가장 용기 있는 결단력을 발휘한 리더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메르켈은 독일에 도착한 난민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도덕적인 방침을 발표했다. 유럽 주요 언론이 메르켈을 ‘유럽의 양심’이라고 박수치는 이유다. 난민들이 “독일과 메르켈을 사랑한다”는 푯말을 흔드는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번 조치로 독일의 국제적 위상과 이미지는 한층 향상됐다.


물론 독일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시리아 난민 모두를 수용할 수는 없다. 이에 독일은 유럽연합의 다른 회원국에게 국력에 따라 적절한 수의 난민을 분담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에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등 동구 국가들은 난민 수용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신들이 설사 이들을 받아들여도 독일이나 영국으로 가기를 희망하는 난민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 표면상의 이유다. 그러나 본질을 들여다보면 이들 국가가 이슬람 난민을 받아들이기 꺼려한다는 데 있다. 이처럼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에 가입해 대폭 재정지원을 받고 독일이나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으로 자유롭게 이민할 권리 등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국제사회의 의무를 이행하는 데는 온갖 핑계를 대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국 역시 1992년 이후 난민협약에 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난민을 수용, 보호하고 지원할 의무를 갖게 됐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난민’ 지위를 신청한 사람을 받아들인 비율은 선진국 평균 35%에 비교해 턱없이 낮은 4%에 불과하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간 한국이 인정하고 받아들인 난민은 5백여 명뿐이다. 일 년에 평균 20여 명 수준인 것이다. 우리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훌륭한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난민 수용과 같은 국제사회 의무의 수행과 인도주의적 정책의 객관적 지표는 부끄럽기 그지없다.


요즘 국내에는 ‘한국이 잘살게 됐으니 가난한 나라를 돕겠다’라는 식의 개발 협력 바람이 불고 있다. 정부는 해당 예산을 늘려 선진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홍보하려 하고, 시민 사회도 해외 봉사와 지원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이런 국가적 노력을 하는 마당에 스스로 한국까지 와서 난민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사람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나아가 매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대외 정책이자 ‘소프트파워(Soft power, 상대를 강제로 순응시키는 것과 달리 설득을 통해 자발적 순응을 유도하는 힘을 뜻함)’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세 살 아이인 아일란이 숨져있는 충격적 사진이 보도된 뒤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칠레, 브라질, 호주, 뉴질랜드 등 전 세계적으로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발표가 잇따랐다. 그러나 북한 독재 비판에 목청을 높이는 정당이 집권하는 대한민국에서, 정작 독재와 전쟁을 피해 도망 나온 시리아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움직임은 없다. 국제사회의 대국으로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을 노리는 일본도 난민 사태에 침묵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잘사는 데도 침묵하는 선진국’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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