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였던 지난달 10일 오후, 통일부에서 개성공단 관련 중대 발표를 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에 본인을 포함한 본사 기자들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아보라며 입주 기업들에 대한 취재 지시가 떨어졌다. 입주 기업 관계자는 이 상황에 대해 미리 알았을 것으로 생각해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란 것이다.
  하지만 연휴 마지막 날에 전화를 받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가까스로 오후 두 시쯤 한 기업 관계자와 통화가 연결됐다. 이 관계자는 개성공단에서 내복을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의 대표였다. 그에게 “개성공단이 중단된다는 소식이 들리던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고 묻자, 회사 대표자는 “진짜 가동이 중단되느냐”라며 오히려 기자에게 되물었다. 이어 “정부의 사전 협의는 전혀 없었다”라고 답하며 “지금 모든 기계가 중단되면 회사는 망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는 하소연을 털어놨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발표했다.
  다음날 개성공단 입주기업 직원들은 부랴부랴 공단에 트럭을 끌고 들어갔다. 이미 만들어 놓은 완제품과 원재료를 가지고 나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부에서 출입을 허용한 인원은 해당 업체당 고작 1-2명이었다. 2013년 남북관계가 악화됐을 때, 가동 중단을 경험한 이들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관련 기업들은 정부에 더 많은 트럭을 투입하도록 허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곧이어 북측은 ‘오후 5시 반까지 다 나와야 한다’라며 전원 추방하기로 한 시한을 불과 40여 분 남기고 남측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통보했다. 이들에게 짐을 싸서 나오는데 딱 반나절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개성공단에서 양말과 여성 레깅스를 생산하는 한 업체는 5t 트럭 한 대로 짐을 싸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그들이 개성공단에 남겨둔 재고는 트럭 약 50대 분량이었다. 그나마 이 회사는 어느 정도 짐을 챙겼지만, 빈손으로 나온 입주 기업들이 태반이었다.
  이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여전히 중단된 상태다. 공단 내 기계는 녹슬고 원재료는 방치된 채 나뒹굴고 있다. 수천억 원의 내복, 양말, 신발, 헬멧, 전기밥솥 등을 생산했던 그곳은 현재 굳게 닫혀 있다.
  결국, 기계를 가동하지 못해 얻은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들이 졌다. 123개 개성공단 기업들의 모임인 ‘개성공단 입주기업협회’는 피해액이 약 8,152억 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그동안 관련 기업은 정부에 줄기차게 ‘보상’을 요구했다.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막았으니 그 책임도 정부가 지라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공장 설비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물건을 만들려고 갖다 놓은 원재료와 이미 만들어진 완제품, 반제품 등을 가지고 나올 시간을 정부가 벌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액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임원은 “미리 말이라도 해줬으면 피해를 최소화했을 텐데 손쓰기도 힘든 설 연휴에 중단 발표 선언을 해 피해를 키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부는 ‘보상’이란 단어부터 잘못됐다며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 책임이기 때문에 정부에게 보상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손해 입은 기업이 많아 이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지원’은 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 2월, 정부는 약 5,500억 원 규모의 특별대출을 해주고 기업들이 원하면 경기도 내 산업단지에 개성공단을 대체할 부지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가동 중단 사태에 대비해 가입한 경협보험에 대해선 최대한 빨리 보험금 지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과연, 정부가 제공한 지원을 받으면 기업이 입은 피해는 ‘보상’될 수 있을까. 당장 대출을 받아 급한 불을 끈다 해도 결국은 이들이 갚아야 할 돈이다. 게다가 장사를 못 해 발생하는 손해, 다른 회사와의 계약 위반으로 잃은 신뢰, 개성공단에 두고 온 원자재 구매비용 등은 ‘지원’ 대상에서 빠졌다. 또한, 개성공단을 대체할 공장을 지으려면 최소 1-2년은 걸린다. 보험금 지급 역시 기업들이 낸 보험료를 돌려받는 것일 뿐이다.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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