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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다리 짚은 김영란법
'기사 빼 달라' 청탁은 못 막고 밥값 시비만... 정말 최선인가?
2016년 09월 02일 (금) 14:46:26 장용진 파이낸셜뉴스 법조팀장 ddpress@dongduk.ac.kr

  “대통령께서 그 기사를 보셨으니 다시 녹음하거나 빼 달라.”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청와대 홍보수석 시절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사를 빼 달라고 요구하며 했던 말이다. 당시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대통령이 9시 뉴스를 보고 심기 불편해하니 기사를 부드러운 표현으로 바꿔주거나 아예 빼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이외에도 타 언론사에 비슷한 요구를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이 같은 청탁 혹은 압박은 언론계에서 흔한 일이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각 정부 부처나 각급 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의 홍보팀 직원의 가장 주된 임무가 바로 “기사를 고쳐 달라”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포털사이트에 뜨는 각 언론사의 기사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가 소속 회사에 불리한 기사가 뜨면 곧바로 달려와 수정을 요구한다. 아무 문제가 없는 기사인데도 내려달라는 억지를 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기사를 고쳐달라는 요구를 받곤 한다. 얼마 전 모 재벌기업의 홍보실 책임자는 “팩트는 다 맞아요”라고 말하면서도 “우리 좀 살려 달라”라며 읍소하기도 했다. 정부와 기업체의 홍보담당자가 기자를 찾아다니며 술과 밥을 사고, 골프 접대를 하는 이유도 오로지 언젠가 이와 같은 요구를 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신문은 이제 광고효과가 별로 없다”라고 말하면서도 신문지면에 기업광고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기업이 압력을 행사하기 위함이라 여겨진다. 가끔은 지금까지의 친분이나 광고실적 등을 거론하면서 은근한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시쳇말로 “우리가 남이냐?”라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러한 청탁이나 요구는 ‘부정한 청탁’이다. 돈과 권력을 앞세워 언론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왜곡된 여론을 만들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행위를 처벌하거나 금지하는 법률이 없다. 공무원이 아니기 때문에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고, 소속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보기도 애매하기 때문에 배임수재죄로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률가들의 견해다. 배임수재죄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 이득을 취한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오는 9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으로도 이런 잘못된 관행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김영란법의 본이름은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지만 이 법을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이름을 딴 형태가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법률은 부정청탁이나 금품을 받는 공직자를 처벌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며, 공직자 외에도 사립 교직원과 언론인이 대상에 포함돼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이들이 3만 원 넘는 밥을 대접받고, 5만 원 넘는 선물을 받는 행위는 위법이다.
  또한, 김영란법에서는 부정청탁의 유형으로 모두 15가지를 들고 있는데, 15가지 항목에서는 기사 수정 요구를 부정청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으며 비슷한 조항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상식적으로 돈과 권력을 앞세워 기사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요구가 부정청탁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부정청탁이란 말인가? 하지만 김영란법 어디를 봐도 부당한 기사수정 혹은 삭제 요구를 부정청탁으로 규정할 근거는 없다. 정리하자면 비싼 밥은 먹지 못하게 했지만 정작 막아야 할 기사 삭제 혹은 수정에 대한 압력은 그대로인 엉터리 법이 만들어진 셈이다. 시쳇말로 ‘앙꼬없는 찐빵’이다. 이런 식이라면 도대체 왜 언론인을 공직자 범주에 포함했는지 의문이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놓고 헌법재판소까지 가서 1년 가까이 법정 공방을 벌였으니 밥 한 끼 때문에 벌인 일치고는 큰 판이 아니었나 싶다.
  기자가 제대로 된 기사를 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취재원을 만나고 관련 자료를 찾아야 하며 전문가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 더미를 뒤지거나 오밤중에 산길을 헤매야 할 때도 있다. 어쩌다 일이 잘 안 풀리면 몇 년을 공들여야 겨우 실마리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힘들게 기사를 쓰면서 기대하는 것은 딱 한 가지, 내 기사가 지면과 인터넷, 방송을 타고 온 국민에게 알려지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공들여 쓴 기사가 압력으로 인해 사라지거나 수정되는 일이 언론계에서는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정직해야 할 기사와 공정해야 할 칼럼이 아무렇지도 않게 돈과 권력에 관행처럼 팔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혁명적 발상’이라는 극찬을 받는 김영란법은 이런 부패 관행에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최근 정치권과 정부는 식사비 제한액을 올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두고 3만 원이네 5만 원이네 하는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부패를 막는 최후의 마지노선이 이 금액 사이 어디쯤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겨우 2만 원의 차이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천박한 발상에 기가 막힌다. 도대체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아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기나 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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