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최저생계비 실계측이 있었던 해이다. 우리나라는 3년에 한 번씩 최저생계비를 계측하여 발표한다. 최저생계비는 우리나라에서 여러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대상자와 급여기준을 결정하는 기준선으로 활용된다. 특히 공공부조 프로그램에서 빈곤층에게 생계비를 지원할 때, 그 대상자를 결정하는 기준의 하나로 수급대상가구의 소득수준과 최저생계비를 비교한다.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최소비용’으로 얼마가 필요한지, 이에 관련되는 모든 물품의 가격을 합산하는 전 물량방식(market basket)을 통해 산정된다.
 다른 나라에서도 이론적으로나 정책적으로 빈곤의 기준이 되는 빈곤선을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빈곤선으로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의 최저생계비를 활용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대개 50%나 60%)을 빈곤의 기준인 빈곤선으로 삼는다. 소위 상대적 빈곤선이다.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를 전 물량방식이 아닌 중위소득의 40%를 기준으로 하는 상대빈곤선으로 전환하자는 시민단체들의 요구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10년 전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는 중위소득의 40% 선을 넘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된 사회양극화 상황 속에서 최저생계비 산정을 전 물량방식과 소비자물가인상률에 계속 기초하다보니, 최저생계비 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지금은 최저생계비가 우리사회의 중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0%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우리나라 신빈곤의 대표적 양상을 ‘일해도 가난한 근로빈곤’과 ‘격차를 극복할 수 없는 절망적 상대빈곤’으로 이야기하곤 한다. 실제 우리나라의 빈곤층 중에서 취업자의 비율은 계속 높아져가고 있다. 또한 현재 최소한의 생존은 가능할지언정, 중산층 이상으로의 상승이 불가능하다는 인식도 예전에 비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빈곤의 문제는 개인의 도덕적 해이와 노력의 여부에 초점을 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양극화와 이를 통해 나타나는 사회통합의 와해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빈곤정책의 핵심은 사회적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공공성의 개입, 즉, 상대빈곤의 측면에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최저생계비도 즉, 빈곤기준선도 우리나라 보통수준의 소득에서 일정 수준 이상 떨어져서는 안된다는 규범을 관철시켜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절대빈곤선에서 상대빈곤선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전 물량방식의 최저생계비 계측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별난 빈곤선 책정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최저생계비 수준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유용하다는 것이 현실적 이유가 되고 있다. 최저생계비 수준을 억제하여 공공부조 지출을 줄여보려는 것이다.
 물론 공공부조제도는 빈곤층을 선별하여 현금을 제공하는 방식이고, 그 규모가 너무 커서 좋을 것이 없다. 세금을 재원으로 하기 때문에, 재원을 제공하는 담세자와 서비스를 수급하는 사람이 분리된 제도이다. 최후의 사회안전망이기는 하지만 일차적 소득보장 정책으로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공공부조의 비중이 크다. 때문에 복지확충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내가 낸 세금을 다른 사람에게 준다’는 인식에서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해 민감해지게 된다. 공공부조의 규모를 줄이려는 것은 일리가 있는 방향이다.
 하지만, 공공부조의 규모를 줄이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차적 사회보장의 충실화에서 방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연금이나 수당제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결합된 소득보장제도가 취약하면 당연히 공공부조제도의 비중이 커진다. 공공부조의 비중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다며 대상자 수를 줄이기 위해 최저생계비를 낮추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또 최저생계비를 낮추기 위해 전 물량방식의 계측방법을 유별나게 고집하는 것은 양극화 상황에서 분명 편법적인 정책방향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상대빈곤선을 도입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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