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한국수어사전

지난 8월, 올해 초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됐다. 이 법안은 한국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밝히고, 수어가 발전과 보전을 꾀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농인과 수화언어 사용자의 언어권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수화언어에 대한 연구는 어떻게 이뤄졌으며 법 시행을 통해 앞으로 기대되는 효과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더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을 만났다.

‘수화언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정의하면 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언어’다. 청각장애인은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음성 대신 손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손의 모양, 방향, 움직임 등을 달리해서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음성언어에서 억양이 나타나는 것처럼 표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똑같은 수화라고 해도 다른 뜻이 된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음성언어와 수화언어는 아예 다른 언어라는 점이다. 때문에 문법 체계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수화언어는 동작과 표정을 위주로 하다 보니 음성언어에서 나타나는 주어, 서술어의 순서가 뒤바뀌거나 아예 이를 통으로 합쳐 사용하기도 한다.

수화언어 연구는 어떻게 이뤄지나
지역마다 사용하는 방언이 다르듯, 수어 또한 사용하는 지역에 따라서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인다. 오늘날 통신 수단의 발달로 인지하지 못할 뿐, 본래 지역 공동체마다 언어가 다르게 발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화언어도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서로 떨어져 있는 농인 집단이 많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이를 표준화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이미 국립국어원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수화언어 표준화 사업을 해왔다. 그 결과, 단어의 의미를 수어 이미지 및 동영상으로 풀이해 놓은 ‘한국수어사전’을 만들었다. 현재는 기존의 단어를 검색해 수어 동작을 찾는 시스템이지만, 앞으로 손의 위치나 방향을 통해 해당 단어를 알아볼 수 있는 ‘수형으로 찾는 수어사전’을 마련 중이다. 이는 한글을 잘 알지 못하는 농인도 쉽게 사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표준화 사업에는 기존에 없는 개념을 새로운 수어로 만드는 과정도 포함된다. 외래어와 외국어가 국내로 들어올 때, 이를 수어의 특징에 맞게 순화하거나 번역어를 만드는 것이 그 예다. 기존의 수화언어에서 찾기 힘들었던 전문용어나 새로운 개념을 만들 때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농인과 농학교 교사, 그리고 수화언어 분야의 전문가가 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단계의 협의를 거치고 있다.

수어 표준화와 농인의 언어 사용 현실과의 괴리는 어떻게 극복하나
수화언어는 단어가 새롭게 만들어졌을 때, 실제 사용자인 농인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현재 이를 사용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과정은 ‘말뭉치 언어학’을 통해 이뤄진다. 이는 빅 데이터처럼 해당 언어에 대한 자료를 모아 사용자가 실제로 어떻게 언어를 쓰는지 관찰하는 과정인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실제 언어 현실에 사용되는 수화언어를 표준화 사업에 적용한다.
한편, 수화언어의 말뭉치 과정에는 촬영이 필요하다. 이는 다른 언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며 수어를 하는 사람 두 명 혹은 여러 명을 모아놓고 대화 장면을 총체적으로 영상에 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단지 손의 모양만 담는 것이 아니라, 표정까지 나오도록 상반신 전체를 찍으며 이후에 영상 자료를 기반으로 손의 수형을 분석하고 기술해 말뭉치를 구축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수화언어에 대한 정책 현황은 어떠한가
수화언어법이 시행된 이후,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수화에 대한 홍보와 인식개선 사업이다. 이는 대중이 편견 없이 수어를 독립된 언어이며, 청각장애인의 언어권을 보장하기 위해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나아가 청각장애인 본인과 이들이 속한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실제로 지난 9월 국립국어원에서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필릭스 시 홍콩 중문대 교수는 ‘청각장애를 가진 어린이에게 어린 시절부터 수어를 접하게 했을 때 사회성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라며 해당 내용의 교육 방안을 발표했다. 발표 후 당시 청중으로 참가한 여러 농인이 교수에게 큰 박수갈채를 보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국립국어원 내에 수어와 점자 정책을 전담하는 특수언어진흥과를 신설함으로써 기존의 수화교육원을 확대하고 수화통역사를 육성하는 등의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해나가고 있다. 또, 최근에는 농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에 주력하는 중이다. 기본적으로 언어는 ‘습득한다’고 불리는데, 이는 해당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에 놓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언어를 배우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마찬가지로 농인도 수어를 사용하는 환경에서는 저절로 수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반면, 그들은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듯 한국어를 학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에서 농인의 국어 능력에 대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예상보다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다. 이처럼 농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현재 국립국어원에서도 수어 교재 개발에 힘쓰고 있다.

향후 수화언어 연구의 전망은 어떠한가
지금까지 청각장애인은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 비장애인과 동등한 국민이지만, 이들을 위한 지원은 상당히 소외됐던 것이 현실이다. 또한, 수화언어학이라는 학문이 발달한 독일의 사례와 한국을 비교하면, 우리는 아직 출발 단계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연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주제가 아주 많다. 한국어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경음과 격음 같은 역할을 하는 수어소를 조사하는 등 문법체계에 대한 연구가 그 예이다. 이외에도, 농인을 대상으로 한 수어 교육과정 설계까지, 앞으로 더욱 다양한 주제로 수화언어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 


문아영 기자 dkdud4729@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