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 리비아 대사관 앞 시위대의 모습
  작년 12월 18일부터 튀니지에서는 전국적인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다. 튀니지국민은 1987년 대통령에 취임 이후 24년간 장기집권을 한 벤 알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결국 벤 알리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이를 ‘재스민 혁명’이라 부르는데, 이 운동을 시작으로 주변 나라들에서 민주화운동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리비아의 통치자인 무아마르 카다피는 19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뒤 지금까지 42년 동안 장기집권을 해온 독재자다. 카다피의 잘못된 독재 정치로 리비아는 실업률이 상승했고, 빈부격차도 커졌다. 또 헌법 없이 통치되는 정치 속에 카다피와 그 자식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
  그러던 중 리비아와 근접한 튀니지에선 재스민 혁명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집트도 장기집권 대통령인 호스니 무바라크가 퇴진하게 되자 이에 영향을 받은 리비아 시민들은 카다피의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
  이번 리비아 사태는 지난 2월 15일 반(反) 카다피 도시인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서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확대될 조짐을 보이자 카다피는 18일 새벽 벵가지에 군 병력을 투입해 시위대를 공격, 결국 시위는 유혈 사태로 변질되고 말았다.
  리비아의 문제는 이로 끝나지 않았다. 민주화 운동이던 리비아 사태는 시간이 가면서 내전으로 변해갔다. 리비아엔 약 500개의 부족이 있는데, 이 중 3대 부족인 와르팔라, 주와야, 카다피가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그 가운데 와르팔라, 주와야족 대표들은 카다피의 하야를 요구했고, 카다피 부족과의 협력 중단을 선언했다. 여기에 소수 부족까지 뒤엉키면서 사실상 내전 상태가 됐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카다피 정권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카다피군은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일본 대지진으로 세계의 관심이 일본으로 돌아가자 카다피군은 반정부 시위군을 대량 학살했다. 이렇게 카다피군이 승리를 잡는 듯했으나, 다국적군(여러 나라의 국적을 가진 군인들로 편성한 군대)이 개입되면서 리비아 사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 3월 17일 유엔안전보장위원회가 리비아 사태에 유엔의 군사개입을 승인하는 내용이 채택됐고, 표결에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 10개국이 찬성했다. 그리고 이 국가들은 다국적군으로 리비아 사태에 개입해 공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9일, 카다피가 물러날 때까지 리비아 공습을 계속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카다피군은 현재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군사력의 20∼25% 정도를 잃었다고 한다. 그리고 리비아의 고위관리들은 잇따라 사임을 표명하고있다. 이에 카다피정권의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재 반정부 시위군의 군사력은 미미하기에 어느 측이 유리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로 인해 리비아 사태는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상태이며, 또 다른 세계전쟁이 초래될까 염려되기도 한다. 리비아 사태가 민주화 운동의 형태로 시작된 만큼 서로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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