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인 1908년 3월, 1만 5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가 생업을 내려놓고 뉴욕 러트거스 광장으로 모였다. 극도로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견디다 못한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는 1857년, 여성 노동자가 노동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이후로는 전례가 없던 대규모 시위였다. 곧이어 뉴욕의 거리는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를 달라”라는 함성으로 가득 찼다. 여기서 빵은 남성 임금의 반밖에 받지 못했던 여성의 생존권을 의미한다. 또한, 장미는 그동안 남성에게만 부여됐던 반쪽짜리 참정권을 상징하는데, 앞으로 여성도 정치에 참여해 사회를 직접 개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날 뉴욕 러트거스 광장의 함성은 이후 수많은 나라로 퍼져나가며 여성의 인권 신장을 주장하는 날로서 자리 잡았다. 이후 1910년 8월에는 독일의 여성 운동가 클라라 제트킨이 뉴욕의 시위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3월 8일을 국제기념일로 제정하자고 제의했는데 이러한 제트킨의 제안은 여성의 날의 공식 제정을 공론화하는 신호탄이 됐다. 그 영향으로 1911년부터는 오스트리아와 스위스를 비롯한 각국에서 성 불평등과 여성의 인권 유린에 대해 저항하는 여성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되기 시작했고, 비로소 1975년에는 유엔에서 세계 여성의 해를 맞아 매년 3월 8일을 여성의 지위 향상을 주장하는 국제기념일로 제정했다.

한편, 우리나라의 여성 운동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본지에서는 지난 8일이었던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의 여성 운동 역사와 함께 여성 인권의 현주소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한국 여권 운동의 기반을 마련하다
과거 한국은 가부장 제도가 오랜 시간 고착됐던 전형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여성의 지위와 권리는 존중받지 못했고 오로지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하는 현모양처가 가장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평가받았다. 주체로서의 존재가 아니라 가정에 귀속된 객체로 취급됐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남존여비 사상에도 굴하지 않고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싸웠던 인물들이 있다. 이에 대표적인 인물로 19세기 초 여성 운동가 나혜석과 허정숙을 손꼽을 수 있다. 먼저, 나혜석은 화가이자 작가였던 동시에 당대 최고의 여권 운동가였다. 또한, 자유주의 성향이 강했던 인물로서 여성의 독자적인 권리를 가장 큰 가치로 여겼다. 그녀는 끊임없이 첩을 들이는 등 독재적이었던 아버지와 이로 인해 고통받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기존의 가부장 제도에서 탈피한 신여성 시대를 꿈꿨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그녀는 봉건사회를 살아가며 고군분투하는 여성을 그린 단편 소설『경희』를 문단에 발표한다. 이 소설은 한국의 첫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불리며 아직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그녀는 각종 신문과 인터뷰에서 “남자와 여자의 권리는 동등하다. 여자도 사람이다”라며 그간 남성에게 가려져 수동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에게 여권 신장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허정숙은 냉철함과 열정을 동시에 지닌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운동가로 평가받는다. 이에 걸맞게 조선여성동우회, 경성여자청년동맹 등의 단체를 조직해 운영했으며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기자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 허정숙이 관심을 기울인 곳은 농촌 여성의 삶이었다. 그녀는 봉건사회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농촌의 모습을 조명하며 농촌 여성의 계몽 운동을 주장했다. 기존 남존여비 사회에 익숙한 여성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느끼고 깨어나기를 바란 것이다.

이처럼 앞선 세대가 여성 운동의 기반을 마련해놓은 덕분에 여성의 사회 활동에 대해서 보수적이었던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공개적으로 여성 운동을 벌이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해방 이후 여성 인권 운동이 잠시 주춤했던 시기도 있다. 바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부가 사회적 성향의 단체를 탄압하면서 이와 관련된 인권 운동도 모두 멈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후 정권 교체가 진행되면서 1985년부터는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다시 공개적으로 개최됐다.

당시 첫 번째로 열렸던 공식 행사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주관으로 진행된 ‘한국여성대회’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한국여성대회는 여성의 날을 기념해 거리행진을 주도하거나 고용 시장에서의 여성 불평등을 지적하는 등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여성의 날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일은 한국여성대회의 33주년 행사가 진행됐던 날이다. 이날 행사장에는 30여 개 회원단체가 참여해 ‘성 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라는 표어를 주제로 여성 운동의 성과를 나누고 성적으로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에 대해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덧붙여, 여권 향상을 위해 애쓰는 또 하나의 단체를 소개하자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여성민우회가 있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1987년에 출범해 여성의 노동과 복지 등에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는 단체다. 이들은 남녀의 임금 격차와 같은 성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거나 성평등 복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토론회 등을 주최하고 있다.


김진경 기자 wlsrud6843@naver.com

 

“여권 향상을 위해 우리부터 앞장서야 해요”

먼저, 동아리 소개 부탁드립니다
WTF는 교내에서 여성 인권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모여 만든 여성학 동아리입니다. WTF라는 명칭은 What The Feminism의 약자로, “What the Fuck!”이라는 강한 어감에서 착안해 지었죠. 주 활동은 정기 모임을 열어 여성학 혹은 인권 문제와 관련된 책을 읽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이에요. 또한, 여성 단체의 집회가 열리면 참석해 페미니스트 시국선언을 하고 여성의 권리 보장을 주장하는 거리행진에도 동참합니다. 그리고 페미니즘 및 인권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 대자보를 부착해 이에 대한 의견을 밝히기도 하죠. 강남역에서 여성 살해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교내에 대자보를 붙여 여성 혐오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섰어요. 이 외에도 지난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총학생회와 함께 학우에게 초콜릿을 나눠주고 이날의 역사를 소개하는 작은 전시회도 열었습니다.

현재 여성 인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전 세계적으로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고 특히 젊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나 합격자 비율이 남성을 앞지르게 되면서 한국이 훨씬 성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됐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그게 정말 사실일까요. 실제로는 한국은 OECD 국가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자 일하는 여성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인 사회입니다. 때문에 여성 상위시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해요.

근래 페미니즘이 크게 주목 받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지난 2015년, SNS를 통해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이 이뤄지고, ‘메르스 갤러리’나 ‘메갈리아’라는 여성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가 활발히 운영되면서 사람들이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파급력이 컸던 것은 아무래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이 아닐까요.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와 폭력을 마주해야 했던 사건에 많은 사람이 분노를 느꼈죠. 게다가, 일부 남성이 이 같은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채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더 문제가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일이 발생한 이후로, 계속해서 페미니즘 도서가 쏟아져 나왔고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페미니즘 도서를 볼 수 있었어요. 출판계의 불황이 계속되는데도 이러한 실적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페미니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는 어떤 성 불평등 문제가 있나요
우선,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받는 불이익이 매우 크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성별 임금 격차가 매우 큰 나라에 속하죠. 이를 숫자로 표현하자면 남자는 100이고 여자는 64로, 눈에 띄는 차이가 있어요. 게다가, 우리나라는 직장 내 여성이 동등할 대우를 받을 기회를 평가하는 지표인 유리천장지수에서 4년 연속 OECD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혼 여성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갖고 있는데, 이는 결혼, 임신, 출산, 육아가 결국 경력 단절로 이어져 여성들이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노동조건이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재취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한편, 여성이 낙태를 결정할 권리인 ‘재생산 권리’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입니다. 지난 9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는 임신중절 수술을 하다가 적발됐을 때는 최대 12개월까지 의사 자격 정지를 내리겠다는 내용이 포함됐어요. 그러자 산부인과 의사회에서는 임신중절 수술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죠. 임신이나 임신중단, 출산 등은 모두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정부와 의사회 모두 여성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거예요. 이 때문에 분노한 여성이 생식권에 대한 애도와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