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이 개최될 때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종목은 단연 ‘쇼트트랙(short track)’이 아닐까? 쇼트트랙은 짧은 거리의 링크 안에서 선수가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하지만 이렇게 짜릿한 쾌감을 선사해주는 시합 뒤에는 매번 많은 것을 포기하고 훈련을 선택한 선수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그리고 여기 14년 동안 한 길만 바라보고 달려온 선수가 있다.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는 쇼트트랙을 하겠다는 쇼트트랙 선수 최지현(23)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성남시청 소속의 쇼트트랙 선수 최지현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운동을 시작해 올해로 14년 차 선수가 됐어요. 2012/2013 시즌과 2015/2016 시즌에는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선발돼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선수님이 쇼트트랙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해요
원래는 부모님이 공부할 때 체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오빠를 스케이트장에 데려갔는데, 옆에서 그걸 보던 저도 너무 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저도 해보고 싶다며 부모님을 졸라서 그날 바로 쇼트트랙을 시작했죠. 나중에 오빠는 그만두고 저 혼자서만 재밌어서 계속 배웠어요. 그러다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전국동계체육대회에 나가 처음으로 1위를 하게 됐어요. 금메달을 목에 거니까 욕심이 생겨서 그만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게다가, 그때 저는 서울에서 경기를 준비하느라 지방에 있는 가족과는 떨어져 지내야 했어요. 가족들이 곁에 없어 심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1위를 하니까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죠.

선수님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초등학교 시절 지방에 살면서 각종 경기를 준비하다 보니까, 한 학교에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어요. 결국, 타 지역 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출석을 해야 했죠. 그러다 보니 교우관계도 길게 유지하기 어려웠고요. 다행히 중학교 때부터는 아예 서울로 이사를 와서 학교를 옮겨 다니는 일은 없었지만, 훈련 때문에 소풍이나 수학여행 등을 못 가는 건 마찬가지라서 친구들과의 추억은 많지 않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쉽긴 하죠. 그래도 그때의 생활을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제 노력에 대한 결과물을 내고 싶은데 그 당시에는 학교를 꼬박꼬박 다니면서 그러기가 쉽지 않았으니까요. 실제로, 주니어 선수일 때는 학교를 빠지면서까지 열심히 훈련한 덕분에 좋은 성적을 많이 얻기도 했고요.

대학 생활을 어떻게 보내셨는지도 궁금해요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시간표를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서 청소년 때와 달리 정말 알차게 다녔어요. 운동보다 대학 강의 듣는 걸 더 좋아해서 동기들이 운동선수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훈련이 너무 많은 날에는 수업시간을 이용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고요. (웃음) 그리고 어렸을 때는 저처럼 운동부에 속한 친구들과 자주 친해지곤 했는데, 대학교에 가서는 수업에 잘 참여하니까 일반인 친구들과도 친해질 기회가 많아졌죠. 대학에서 친해진 친구들은 지금도 잘 만나고 있고요.
코치님은 제가 학교에 너무 잘 가니까 조금 싫어하시긴 했는데, 정해진 훈련 양을 다 채웠기 때문에 별다른 말씀은 안 하셨어요. 하지만 코치님이 걱정하시지 않게끔 운동과 학업을 모두 잘하려고 하다 보니까 몸이 매우 힘들었어요. 특히 대학교 1, 2학년 때는 들어야 할 과목이 많아서 아침 운동 끝나면 바로 수업 들으러 가고 오후가 되면 다시 훈련에 참여하는 과정을 매일 반복해야 했죠. 새삼 운동하면서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깨달았죠.

쇼트트랙은 어떤 점에서 힘든가요
쇼트트랙은 신체적으로 정말 힘든 운동 중 하나에요. 체력은 물론, 민첩성, 순발력, 근지구력 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필요합니다. 특히 쇼트트랙은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근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다리에 힘을 줘야 하는 스케이트 자세는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 되거든요. 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얼음판이 아닌 지상에서도 매일 근력 운동을 해야 하죠. 운동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면 함부로 추천하지 않을 종목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웃음)
또한, 매일 경쟁에 치여 살아야 해서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요. 실제로, 순위와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서 쇼트트랙 선수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게다가, 쇼트트랙이 개인종목이고 경쟁이 심한 운동이다 보니, 이기적인 선수를 종종 만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화가 나도 홀로 억눌러야 하죠. 그래서인지 저도 원래 무슨 일이든 잘 나서는 활발한 성격이었는데, 쇼트트랙을 하면서 굉장히 소심해졌어요. 오히려 주니어 선수일 때는 누구와 경쟁하든 대담하게 잘해냈어요.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져봤자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면서 시합에 임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제가 쇼트트랙 선수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다 보니, 어린 선수들이 매 대회마다 성장한 게 눈에 보이면 위기감을 느끼곤 합니다. 슬프지만 저도 사람이라서 어린 친구들에게 지면 가끔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요. 선수들은 항상 체력 관리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마음을 단단히 챙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쇼트트랙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감사한 분이 있다면요
가장 감사한 분은 부모님이죠. 사실 쇼트트랙이 선수 혼자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종목은 아니에요. 옆에서 지속적으로 선수의 몸이나 컨디션을 신경 써줄 사람이 필요한데, 저한텐 그게 바로 부모님이었죠. 실제로, 어려서부터 여러 시합에 나갈 때마다 부모님은 본인들의 일정을 제쳐놓고 저를 따라와 챙겨주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게다가, 시청에 소속되기 전까지는 아이스링크장 사용료, 스케이트 부츠와 기타 장비의 관리비 등 여러 가지로 돈이 많이 들어서 부모님이 많이 부담스러우셨을 거예요. 또, 고등학교 때까지는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와서 부모님의 짐을 덜어드릴 수가 있었는데,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그마저도 없어져 순전히 자비로 내야 했어요. 제가 국가대표가 되고자 노력한 것도 부모님의 금전적인 부담을 덜어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어요.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대표 수당이 나오니까요. 다행히 지금은 성남시청 소속으로 직장인처럼 일정 금액이 나와서 부모님께 짐이 되고 있지는 않아요.

곧 있으면 2017/2018 시즌 국가대표 선발전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모든 경기가 중요하겠지만 국가대표를 뽑는 시합은 아무래도 그 의미가 남달라요. 이건 쇼트트랙 선수의 인생과도 직결된 문제라서 피가 마르죠. 죽기 일보 직전까지 달린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선발전이 다가온다고 해서 제가 특별히 다른 운동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평상시처럼 훈련하고 있어요. 이전보다 운동량을 갑자기 늘리는 선수들도 있긴 한데, 저한테는 그런 방식이 맞지 않더라고요. 저는 경기 일정이 많이 남아 있어도 평소에 꾸준히 운동해놓는 편이라서 시합이 가까워져도 조급해지지 않아요. 단지, 시합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선발전 당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몸에 더 신경 쓰고,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스케이트 부츠를 세심히 관리하는 등의 기술적인 부분을 점검해요.

너무 힘들어서 쇼트트랙을 포기하신 분도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쇼트트랙 자체가 훈련할 때 매우 힘든 종목이라서 제 주변에도 그만둔 선수가 많아요. 저도 앞서 말했듯이 대학교 1, 2학년 때가 고비였어요.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싶고 운동도 잘하고 싶은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가 너무 벅차더라고요. 오히려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집중을 못 해서 둘 다 놓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래서 쇼트트랙을 그만둔 선수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요.
그리고 대부분의 선수가 어렸을 때부터 쇼트트랙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왔을 텐데, 만족할 만한 결과를 못 내보고 그만두는 걸 보면 안타까워요. 열심히 한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 개중에는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한 번도 순위권에 들지 못한 선수가 있을 테니까요. 물론, 운동을 그만두고 자신의 적성과 맞는 일을 새롭게 찾아가는 선수들을 보면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선수님의 목표가 궁금해요
현재로써는 평창올림픽에 출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 4월 초에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서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더라도, 다음 시즌에 다시금 도전할 예정이에요. 일단, 결과가 나오면 되돌릴 수 없는 거니까 오랫동안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얼른 털고 일어나야죠. 사실 제가 지금 쇼트트랙 선수로서는 나이가 많은 편인데, 여자 쇼트트랙 선수 중에는 서른 살 넘어서까지 활동하시는 분도 계세요. 그래서 저도 자기관리를 꾸준히 하며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시니어 선수가 된 뒤로는 뚜렷한 성과를 못 내서 그런지, 주변에서 다른 스케이팅 종목을 권유한 적도 있었어요. 물론, 다른 종목을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쇼트트랙을 선택했으니까 이걸로 끝을 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여기저기 방황할수록 저는 이도 저도 안 되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 우선은, 쇼트트랙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밀어붙일 거예요.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요즘 대학생은 등록금, 학점, 스펙 등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힘든 건 알지만, 4년 동안 대학 다니면서 추억을 최대한 많이 쌓으셨으면 해요. 저는 운동선수 생활을 하느라 학교에서 특별한 추억을 못 만들었다는 게 항상 아쉬워요. 그래서 후배들한테도 계속 남는 건 친구랑 추억밖에 없다는 말을 자주 해요. 바쁠 때는 열심히 본인의 일을 하더라도, 쉴 때는 신나게 놀러 다니길 바라요. 대신, 휴식을 충분히 보충했다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 잠시 놓았던 일을 완벽히 끝마쳐야겠죠? 최선을 다해서 놀되, 책임감은 필수랍니다.
글·사진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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