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안고 눈물 닦아준 문재인 대통령이 선언한 ‘불통의 종언’

2017년 5월 18일.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꼭 37년 되는 날,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는 애국가 4절을 완창한 후 자신이 직접 준비한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취임사와 같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일성은 불과 두 문단 만에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연설이 됐다.


문 대통령은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의 지도자로서 유가족들의 고통을 어루만짐과 동시에 고통의 사회적 분담 그리고 영령들이 이룩했던 민주주의의 토대를 차분히 영빈했다. 민주화운동을 “자신이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준 원동력”으로 규정한 문 대통령은 “오월의 죽음과 광주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세상에 알리려 했던 많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도 함께 기리고 싶다”며 대표적 희생자 4명의 이름을 호명하기도 했다.


유가족들의 눈물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그 어떤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가장 진솔한 자기반성이었다.


그다음 장면은 이날 기념사의 백미였다. 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난 김소형 씨가 항쟁 중 서거한 아버지를 향한 추모사를 읽다 눈물을 흘리자 문 대통령이 안경을 벗고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눈물을 닦은 것이다. 김 씨가 추모를 마치고 퇴장하려 하자 문 대통령이 무대 위로 올라가 김 씨의 손을 잡고 그를 부둥켜안았다.


문득 지난 10년의 세월이 생각났다. 흡사 군부 독재 시절과 다르지 않았던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이 ‘통치’했던 ‘잃어버린 10년’이다. 그들의 공포스러운 정치 탓에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공감(共感)과 너무나 소원했다.


이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지난 2008년, 6.10 민주화 항쟁 21주년을 기념하려던 광화문 촛불 시위가 먼저 스쳤다. 이 대통령은 컨테이너 박스로 광화문을 향하는 시내 주요 거점을 막았다. 시위대를 향한 물대포는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선의, 민주주의 사회의 인권, 과거에 대한 공감은 봄날 먼지처럼 쓸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던 2014년 4월 16일 터진 세월호 사고는 이러한 사회적 공감을 더욱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배가 침몰하는 동안 박 대통령은 행적조차 묘연하다 사건 7시간 만에 모습을 드러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걸 못 구하냐”는 망언만 남겼다.


그런 10년간의 ‘상실의 시대’에서 비로소 이날 진정으로 아픔을 어루만지고 아팠던 역사에 진지하게 대면하는 한 대통령을 만났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제창을 허가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른 뒤 유족들과 손을 맞잡으며 식장에서 물러났다.


노래를 부르는 문 대통령의 모습에서 묘하게 한 사람이 오버랩됐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지난 2015년 6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이메뉴얼 아프리카 감리교회에서 한 백인의 총기난사로 흑인 9명이 사망하고 중상자가 나오는 사건이 터졌다. 흑인이 대다수였던 이 교회를 표적으로 삼아 터뜨린 ‘특정 살인 사건’이라는 점이 흑인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백인 사회에 대한 분노가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 오바마 대통령은 추도식에 참석해 짤막한 연설을 남기고 과거 흑인 노예 폐지론의 선봉에 섰던 존 뉴턴이 작사한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불렀다. 흑인 사회 전체의 상처를 치유한 것은 물론 백인 사회에도 이 상처에 대한 ‘공감’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분의 은혜는 얼마나 놀라운가. 잃었던 길을 다시 찾았고, 멀었던 눈으로 이제는 볼 수 있네”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사 中)


멀었던 눈과 잃었던 길. 우리가 지난 10년간 맞닥뜨린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 기념식에서 울려 퍼진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또한 그랬다. 민주화항쟁의 상흔을 계속해서 치유함과 동시에 영령들이 마련한 자유를 수호하고 우리가 마주쳤던 현실을 꿋꿋이 타개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이날 눈물을 흘리고 유가족들의 손을 마주잡은 문 대통령의 행동은 그 가사에 대한 답이자 우리 사회가 수두처럼 앓았던 ‘상실의 시대’에 대한 종언 그리고 ‘공감의 시대’로의 귀환 선언이었다. 진정으로 달갑게 맞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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