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월요일 웹툰으로 연재된 <여중생A>는 <아이들은 즐겁다>로 이름을 알린 ‘허5파6’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웹툰은 2016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의 수상작으로, 중학생 소녀가 고통스러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 많은 독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안겨줬고 큰 호평을 받았다.

웹툰 <여중생A>는 가정폭력에 노출된 중학생 소녀 ‘장미래’의 이야기다. 암울한 가정환경 속에서 미래는 정신적으로 늘 위태롭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한 채 항상 우울한 생각에 빠져 있으며, 또래 사이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끊임없이 자책만 할 뿐 따질 의욕이 없다. 그런 그녀의 유일한 즐거움은 게임이다. 미래는 게임 속 커뮤니티가 자신이 진짜로 살아가는 세상이고, 실제 현실에서는 아무도 그녀라는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의 미래는 항상 무기력하다. 하지만 문제는 미래의 무기력함에는 항상 자기 혐오가 동반된다는 점이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미래 역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러나 미래가 선택을 했든, 하지 않았든 불행한 환경이 주는 고통을 그녀는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청소년인 미래가, 불행한 삶의 원흉이자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책임을 묻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화 속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사람의 형태가 아닌 괴물로 표현될 만큼, 미래에게 아버지란 감히 대항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다. 결국, 갈 곳 잃은 원망과 분노는 그녀 자신을 향하고, 미래는 습관처럼 모든 문제의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는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자기 혐오는 비단 미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 어떤 부모를 만날 것인지 등을 선택하고 태어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가정에서 자랐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다른 이들한테는 부족함 없어 보이는 가정일지라도, 사실은 그 속에서 누군가는 불행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판단은 오직 본인의 몫이다.

그렇지만 사회는 괴로운 상황에 부닥친 사람들에게 오히려 “살아온 환경을 탓하지 말라”라고 윽박지른다. 물론 무슨 일이든 환경 탓으로 돌리는 행동은 옳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의 지능, 능력, 성격, 외모 등부터 시작해, 심지어 존재 자체에서까지 문제점을 찾도록 부추기는 건 훨씬 더 부당한 일이다. 환경이라는 부당한 무게를 짊어지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미래의 모습을 보며 수많은 독자가 제 일처럼 분노를 터트리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편, 만화의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이토록 불행하기만 한 현실에서 자신이 계속 살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 미래가 죽음을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의 계획은 이 만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희’를 만나게 되면서 완전히 틀어진다.

재희는 미래가 게임에서 알게 된 친구다. 죽기 전에 만나보자는 마음으로 대면하게 된 재희는 매우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방학 내내 미래는 그에게 정신없이 이끌려 다녀야 했다. 그 덕분에 미래는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녀의 죽음은 매일 다음날로 미뤄진다. 그렇다 보니,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다짐했던 것과 달리, 개학날은 어느새 그녀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얼떨결에 개학을 하게 된 미래는 ‘게임 속 지인들과 제대로 작별할 시간이 필요하다’, ‘수행평가를 같이하는 반 친구들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처럼 작고 사소한 이유들로 매일 또 다른 내일을 이어가게 된다.

이처럼 현재희의 등장이 중요했던 이유는 미래(未來)를 기대할 수 없던 장미래가 ‘내일’을 기다리게 됐기 때문이다. 불행한 환경 속에서 ‘나 같은 건 왜 사는가’를 떠올리는 미래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계속 현재를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작가가 재희의 존재로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사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내일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것, 그 기대감이 우리를 살게 한다. 답답한 환경에서 자기 비하를 멈출 수 없는 장미래가 우리 마음속에도 존재하지만, 내 탓만 하며 이대로 억울하게 죽어버리기엔 내일이란 미래(未來)가 우리에게 있다.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