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한 분노와 아쉬움, 하지만 또 다른 희망을 안고 대한민국이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위기를 두려워하고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 대학의 청춘들 앞에는 여전히 미로 같은 앞날만 놓여 있을 뿐이다. 며칠 전 들려온 30대 취업준비생과 고3 수험생의 잇따른 자살 소식은 이런 상황의 불길함만을 떠올리게 한다.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고 있는 그 스산한 불안함을 떨쳐버리기에는 하고 싶은 것, 할 수 없는 것, 해야 할 것 사이에서 거친 숨만 몰아쉬며 보내는 시간의 층들이 여전히 버겁기 때문이다. 냉철한 의식에서 이상적인 가치와 세계를 그릴 인문적 사유의 욕구가 관념의 사치는 아닌지 자꾸 의심하게 된다.
이토록 거친 항로 앞에서 우리 청춘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자조와 위안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비록 주변에서 우리 자신을 억누르는 다양한 표피적인 경향들이 친숙함을 가장해 퇴행과 단순의 논리를 주입한다고 할지라도, 세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분석의 노력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지형을 사유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 위치와 그 속의 구체적인 관계성을 밝히기 위한 시도에서 출발해, 공허한 혁신 혹은 감각적 스테레오타입의 함정을 엄밀하게 이야기하기를 권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예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예술은 작금의 스펙터클 사회에서 서툴고 지루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고, 그렇기에 세속적 유용성의 측면에서 답답하고 열등한 종으로 취급당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예술이 지닌 사유의 응집성과 확장성은 분명 현실을 관찰하는 우리의 또 하나의 정신적 자화상이다.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그 자화상은 관찰의 의지를 촉발해낸다. 현재와의 경쟁적인 협상에서 승리자가 되려고 하지 않은 예술, 그래서 오히려 그 자본주의적 협상의 허울을 해독할 정신적 내밀함을 나누려고 하는 예술이 바로 그러하다. 그러므로 현실의 다른 모습으로서의 예술 특유의 호흡과 감성을 통해, 현실이라는 ‘필연의 왕국’을 논박할 힘을 갖춰나가길 바란다. 그러한 의식적 실천은 우리 속의 끝없는 욕망이 이끄는 반자유적인 허구의 안정을 있는 그대로 깨닫게 한다. 그리고 그만큼 예술이 실험하는 삶의 기획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환기할 것이다. 예술과 함께하는 더 깊은 현실 검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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