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대학생이 광고·기획 부문 공모전에서 23관왕을 차지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여기, 대학 시절 ‘전설’을 남기고 떠난 이가 있다. 그녀는 당시 한 번 수상하기도 어려운 대기업 주최의 공모전에서 여러 차례 대상을 휩쓸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광고·기획 분야 직종을 희망하는 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기업이라 일컬어지는 제일기획에 입사하는 당찬 행보를 보여줬다. 현재는 제일기획을 나와 교육 컨설팅 회사로 이직한 뒤, 많은 이들의 기획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그녀가 그동안 틈틈이 쓴 책 『삽질정신』과『기획의 정석』등은 기획 초보자들을 위한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 모든 성과를 이뤄낸 폴앤마크 박신영 이사를 만나, 그녀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삽질정신』과『기획의 정석』의 저자이자, 교육 컨설팅 전문업체 폴앤마크의 이사를 맡고 있는 박신영입니다. 현재 삼성, LG, SK, 현대 등 여러 기업에서 기획에 대한 내용으로 강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사님이 공모전에 도전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제가 다녔던 한동대학교는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당시에는 주변에 정말 논밖에 없어서 고립돼 있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래서 활발한 대학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도, 꼭 교내 동아리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의지와는 다르게 동아리 입부시험이나 면접에서 계속해서 떨어졌어요. 제가 들어갈 수 있는 데가 없다는 사실이 절망적이었죠.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광고학회는 면접이 없다고 알려줬어요. 그래서 그 길로 바로 광고학회에 찾아가 지원했죠. 그때는 광고나 공모전을 하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는데, 나를 받아줬다는 곳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날아갈 듯이 기뻐서 뭐든 열심히 참여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선배들과 대화할 때도 모르는 표현이 나오면 나중에 혼자서 다 찾아보고, 어떤 책을 읽어보라고 지나가듯이 조언해주면 기억해놨다가 몇 권이 됐든지 간에 읽었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니까 선배들도 저를 좋게 보셔서 함께 공모전에 나가자고 권유했고요. 그게 제 공모전 도전의 시작이었어요.

당시 많은 공모전에서 대상을 휩쓸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지금 돌아보면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그도 그럴 게, 공모전을 시작했을 때 어떤 결과물을 내야 하는데,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별로 없었어요. 말 그대로 텅, 비어 있는 상태였죠. 그래서 지식을 채우자는 심정으로 휴학을 한 뒤에 1년 동안 도서관에서 책만 읽으면서 살았어요. 도서관 근처에 고시원을 잡고 아침부터 나가서 밖이 깜깜해질 때까지 계속 책을 읽는 거죠. 이렇게 말하면 되게 대단해 보이겠지만, 사실 저도 시작했을 무렵에는 책이 잘 안 읽혀져서 졸다가 일어나고를 반복했던 기억이 있어요. (웃음)
그리고 처음에는 공모전에 도움이 될 만한 경영, 마케팅, 기획 관련 도서만 골라 읽었는데, 배경 지식이 없다 보니까 그런 책들도 바로 이해가 되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복합적인 지식부터 쌓고자, 문학, 심리학, 언어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제가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을 두루 갖추고 싶어서, 의식적으로 균형적인 독서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무리 좋은 책을 읽었더라도 다음 날이 되면 까먹어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책 내용을 잊지 않도록 항상 메모를 해놨어요. 이때 하던 메모가 습관으로 굳어져서 지금까지도 적어놓곤 합니다.
한편, 그때 그렇게 책을 읽는 데에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문뜩 불안한 감정이 들었어요.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떠올랐죠. 친구들이 휴학해서 요즘 뭐하냐고 물어보는데 책 읽는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어요. 독서가 곧바로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서 스스로도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렇지만 당시 저는 저 자신이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고 여겼어요. 실제로 1년간 책을 읽으면서 지식도 쌓고, 사고도 여러 방면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다음 해 공모전에 도전했더니 대상을 받았거든요. 그 이후로도 계속 수상했고요. 그래서 저는 비록 효과가 눈앞에 바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학생들이 꼭 책을 읽는 시간을 많이 확보해뒀으면 해요.

이사님의 대학생 시절 꿈이나 목표가 무엇이었나요
전 정해놓은 꿈이 없었어요. 대학 입학을 준비할 무렵에도, 수능 공부밖에 못한 제가 어떤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해서 무전공 입학이 있는 대학교를 선택했어요. 정해진 전공이 없었던 만큼 원하는 수업을 자유롭게 들어볼 수 있었죠. 경영, 전산, 디자인, 기계 등 다양한 영역의 수업을 들어봤어요. 그런데 여러 분야를 들었다고 해서 저한테 적합한 전공을 만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딱 맞는 꿈을 찾아야 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 직업이어야만 한다는 일념을 확고히 설정한 사람들도 있지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알게 돼서 곧장 한 길만 바라보고 직진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단지, 많은 수업을 들어보면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것들을 알게 되는 정도였어요. 나와 맞지 않는 것을 하나씩 소거해가면서, 하고 싶은 일의 범위를 좁혀나가는 식이었죠.
그래서 예전부터 ‘어차피 확실한 방향이 없다면, 뭘 하든지 최대치로 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이런 게 바로 ‘삽질정신’이라고 생각했고요. 최선을 다하고 나면 나랑 맞지 않는 일이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길에 미련도 전혀 안 남아요. 오히려 값진 경험을 얻는 거죠. 예컨대, 학부생 때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영화제작 모임에 들어갔는데, 그때도 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정말 후회 없이 해봤어요. 힘들게 끝내고 나니까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를 느꼈지만, 그래도 저는 영화를 만드는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 많아서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고 봐요.
공모전도 우연히 광고학회를 들어가면서 시작하게 된 일이었지만, 기왕 한다면 정복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한 거죠. 다들 어렵다고 하지만, 진짜 최대치로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휴학하는 동안 책도 많이 읽었던 거였고요. 게다가, 보통 남들은 1-2개만 출품하는 공모전에, 저는 엄청 준비해서 20개를 넣기도 했어요.
이렇게 후회가 남지 않을 만큼 하고 나니까 공모전 23관왕이라는 영예도 누릴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공모전 준비로 인해 수없이 기획서를 써보면서, ‘기획’이 다른 일보다는 저와 맞는다는 점을 몸소 깨달았어요. (웃음)

그동안의 성과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을 꼽자면 무엇일까요
다른 것보다 『기획의 정석』을 쓴 게 가장 만족스러워요. 사실 제가 공모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기획서를 써야 하는데, 기획에 대해 쉽게 정리된 책을 찾아보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 저처럼 기획서를 쓸 때 막막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써진 ‘기획의 교과서’를 집필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그러다가 2013년도에 기회가 돼서, 제가 알고 있는 기획에 관한 모든 지식들을 담은 책을 세상에 내보일 수 있었어요. 기획 관련 공모전을 준비하려는 대학생은 물론이고, 기업에 다니는 회사원들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에요. 출판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스테디셀러인 걸 보면, 제 진심이 전달된 것 같아서 감사할 뿐이죠. 더불어, 작년에 쓴 『기획의 정석 실전편』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썼어요. 제가 쓰면서도 이런 것까지 알려줘도 되려나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적어놨고, 저 혼자만 알고 싶은 내용도 넣었어요. 이 책은 많이 안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예요. (웃음)

공모전에 도전하는 이들이 기획서를 잘 쓰기 위한 팁이 있다면요
기획서를 쓸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을 꼽자면 자신만의 논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에요. 논리의 순서도 내가 말하고 싶은 순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픈 순서’인가를 따져봐야 하고요. ‘논리의 흐름=상대방의 의심과 궁금증의 흐름’으로 써야겠죠. 상대방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무리 말해봤자 듣는 사람은 지루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 자신의 기획서를 다른 사람한테 계속 보여주고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피드백 과정에서 자신이 몇 달 동안 준비한 기획서가 ‘이해가 전혀 안 된다’라는 혹평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안타깝지만 그건 정말로 자신의 기획서 어딘가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는 소리에요. 비판을 들었다고 기분 나빠해야 할 게 아니라, 왜 저 사람이 이해가 안 됐을까를 생각해봐야 하는 거죠. 이후, 문제점을 파악했다면 충분히 다듬어야 하고요. 물론 타인의 피드백을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소리는 아니에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백 명한테 보여줬을 때, 백 명 모두가 만족하는 기획서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최대한 비판이나 칭찬에 그저 담담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기획서를 조금씩 발전시켜나가야 해요.

안정적이라고 평가되는 제일기획을 나오셨을 때 불안하지는 않으셨나요
대기업인 제일기획을 나오기로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왜 주류에서 비주류로 가려고 하냐면서 말렸어요. 저도 나온 직후에는 당연히 불안했죠. 그런데 저는 강의와 교육 쪽에 관심이 있었고, 해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었어요. 그래서 선택을 한 거죠. 만일 제가 제일기획을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불안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하고 싶은 일을 택하지 못했던 당시를 떠올리면서 두고두고 미련을 가졌을지도 모르죠. 절대적으로 좋은 선택은 없다고 생각해요. 좋은 점이 있다면 분명 나쁜 점도 있겠죠. 중요한 건 자신이 어디에 더 가치를 두는지 파악하는 거예요. 결국, 불안함의 기준은 대기업이 아니라, 내가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선택을 했는가에 있다고 봐요. 대기업이라고 항상 안정적인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제일기획을 나오고 1년 정도는 강의와 교육에 대한 내공을 쌓기에 여념이 없어서, 나중에는 불안해하는 시간조차 여유로 느껴졌어요.

마지막으로 동덕여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다는 걸, 스스로한테 허락해주면 좋겠어요. 처음 해보는 일을 못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만약에 어떤 학생이 공모전에 도전하려고 기획서를 몇 번 써봤는데, 제대로 못썼었어요. 그런데 그거 때문에 자신을 바로 ‘기획서 못쓰는 사람’으로 단정 짓는 게 옳을까요? 얼마 해보지도 않고서 바로 못한다고 포기해버리는 건, 스스로를 무시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하물며 평생 해야 할 일을 찾을 때는 더 열심히 노력해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저는 여러분이 자신을 위해 삽질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길 바랍니다. 남들이 나를 무시하더라도, 나만은 스스로를 인정해주세요.


이지은 기자 unmethink@naver.com
사진 제공 박신영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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