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기자의 주관을 담는 고함이라는 기사를 쓸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장애인 인권에 관심 두지 않았던 스스로가 부끄럽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던 터라 여느 때보다 신중을 기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혹시나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기사가 되지 않도록 구성을 되짚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안녕함을 가로막는 장벽 너머의 사람에게’라는 제목의 글이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학보를 발행한 후에도 예시로 들었던 과거의 경험이 본 주제를 말하는 데 적절했는가에 대한 의심을 쉽사리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항상 목말라 했던 피드백도 이때만큼은 두렵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중 주차를 위해 거주하는 건물 입구를 막은 쇠사슬을 치우던 날이었습니다. 두 손에 힘을 가득 줘도 몸이 갸우뚱하는 무게에 문득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는 더 힘든 작업이 될 수 있겠다고 느껴졌습니다. 뒤이어 저희 큰이모가 떠오르더군요. 필자보다 작은 키에 한쪽 다리가 불편한 이모에게 쇠사슬은 본인의 한계를 시험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게다가 두꺼운 쇠사슬 바로 앞에 위치한 장애인 주차 지역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 모양새가 더욱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이후 관리 센터에 건의 사항을 전달했고 다행히 입주민의 의견을 바탕으로 대처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답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위의 기사가 만족스럽지 못한 건 여전했지만, 글로 다뤘던 사안을 늘 염두에 두고 연대하는 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위의 기사처럼 필자가 학보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가장 관심을 둔 사안은 페미니즘이었습니다. 처음 여성학을 접할 당시만 해도 알아야 하지만 어려운 학문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 사건과 현직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뱉은 성소수자 반대 발언 등 각종 사건이 지속해서 발생하면서 기자는 페미니즘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정체화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자보를 작성하고 직접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끝에는 글로써 사회 문제를 피력하는 기자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학보라는 통로를 통해 학내 구성원 그리고 많은 이와 페미니즘 시각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스스로 ‘좋은’ 글을 쓰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깊어지면서 종종 무력감에 빠져야 했습니다. 나타나는 반응이 적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매 순간 중요성을 체감하는 주제를 글로 다루는 게 본인의 운동 방식이라 여겼기 때문에 우울감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공감과 비판 그 무엇이라도 간절하던 그때, 학보사는 계속해서 글을 쓰는 기회를 줌으로써 멈춰 선 기자의 등을 두드려줬습니다. 사실 자유롭게 주제를 정하는 꼭지라 해도 한 분야를 고집해서 피력하는 건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학보 시스템에서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오직 기자를 믿고 지면을 내준 학보사 구성원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진짜 여성을 재단하고 올바른 페미니즘을 규정하려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행운을 얻을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기자로 임하는 동안 젠더와 섹슈얼리티, 페미니즘 콘텐츠 등 총 14개의 페미니즘 관련 기사를 내며 보다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는 퇴임하는 기자이기에 앞서 여성, 퀴어,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물론, 이밖에도 기자를 설명할 언어는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자신을 말하는데 필요한 언어를 빼앗기곤 합니다. 상황을 해결해야 할 공직자가 2차 가해를 일삼거나 일부 집단의 항의에 방송 영상이 삭제되는 일이 시시각각 발생하는 세상입니다. 학보사를 떠나면 기자 또한 언제 입과 손을 저지당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를 밝혀내 알리는데 힘쓴 지난 3년이라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금세 일어서리라 자부합니다. 덧붙여, 함께 대학 내 언어를 지키기 위해 애쓴 선배 강연희 편집장, 동기 이지은 편집장, 후배 김규희 기자와 김진경 기자에게 그 노고가 정말 값지다는 말을 전합니다.

여전히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확신하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스스로 싸워가는 방식임을 알기에 하고 싶은, 해야 하는 말이 끊이지 않는 한 글쓰기를 이어가려 합니다. 작은 손이지만 모든 소수자가 마음 놓고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럼, 곧 다시 글로 만나 뵙겠습니다.



문아영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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