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에도 어김없이 진달래는 피었다. 보잘 것 없는 야산 귀퉁이에서 피어나는 진달래꽃잎은 그 자체가 여리고 처연하다. 진달래가 피면 접동새가 찾아와 슬프게 운다고 한다. 옛날 중국 촉이라는 나라의 임금이 나라가 망한 후 다시 복위를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한이 맺힌 두견새는 밤이고 낮이고 “귀촉 귀촉(고향인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다)” 하며 슬프게 울어 귀촉도라고도 한다. 이 새는 가슴속에 맺힌 한으로 피를 토하며 울고 토한 피를 다시 삼켜 목을 적셨다. 그러다 그 핏방울이 꽃잎에 떨어져 붉게 꽃잎을 물들인 것이 바로 진달래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두견새는 봄이 되면 밤낮으로 우는데 특히 핏빛같이 붉은 진달래만 보면 더욱 슬피 울어댄다고 한다. 그리고 한 번 우짖는 소리에 진달래꽃이 한 송이씩 떨어진다고 한다.

 
  이 봄 진달래는 또 어김없이 피었다. 그 선홍빛 꽃잎에는 또 얼마나 많은 가슴 아픈 사연들로 물들었을까. 아마 세월호의 수많은 아이들의 한 맺힌 피 울음은 선명하게 물들어 있을 것이며, 억울하게 죽은 두 단역배우 자매들의 한과 눈물 역시 선홍빛으로 아로새겨져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이름 없는 이들의 한숨과 탄식, 그리고 눈물 역시 진달래꽃잎 속에 물들어 있을 것이다. 더불어 그릇된 세월의 역사 속에서 왜곡되었던 수많은 아픔들 역시 피를 토하듯 진달래꽃을 물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차마 눈을 감지 못해 아직도 억울함을 토로하며 피맺힌 절규를 하고 있는 두견새 같은 이들은 또 얼마를 헤아릴 것인가.


  죽은 듯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들은 그 자체로 생명의 외경이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눈앞의 현실과 마주하며 일궈낸 살아있음의 증거이다. 최근 우리는 정의와 진실이 사라졌던 어둠의 시대를 뚫고 역사적 사실(史實)과 다른 진실의 사실(事實)들은 새삼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새봄의 새싹들과 같이 우리들을 새삼 각성케 한다. 그것은 단지 진실은 감춰지지 않는다는 관용적인 말이 아니라 그 진실이 호도되고 왜곡되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묻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귓가를 스치는 두견새의 울음소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마주친 진달래가 마냥 예쁘고, 귓가에 스치는 새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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