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5 목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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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기 자판기가 아니라 사람이다”
2018년 10월 16일 (화) 00:28:33 임나은 기자 dong773300@naver.com
   
△해바라기 씨를 던지는 퍼포먼스를 진행 중인 시위 참여자들
   
△구호를 외치고 있는 시위 참여자들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 여성들의 처절한 외침이 보신각 전체를 강타했다. 지난 달 29일 낮 2시, 9월 말의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다. 가을이 왔다는 것을 각인이라도 시켜주듯 연일 날씨가 쌀쌀했는데, 그날만큼은 거리로 모인 여성들의 열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었다. 그들은 검은 옷을 입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목이 쉬라고 구호를 외쳤다. 그동안 빼앗겼던 여성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목소리였다. 
 
  그들은 임신 중단에 관한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바로잡고 낙태죄(형법 제269조 및 제270조)를 폐지하기 위해 보신각에 모였다. 임신중단 전면합법화 시위는 2016년 10월부터 지금까지 17차에 걸쳐 계속 이뤄졌다. 지난 8월에는 임신 중단 수술을 한 의사를 처벌하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개정안이 시행됐다. 그 결과 많은 이의 원성을 사고 임신 중단을 사회적으로 크게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하기로 했으나 결정이 미뤄지고 있어 개정안은 잠정 중단이 된 상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17차 시위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라도 하듯 2시 정각, 보신각 앞은 굳은 표정의 얼굴로 빼곡하게 메워졌다. 그렇게 작은 공간이 아님에도 그곳은 정부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못하는 검은 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시위 구역에는 경찰의 통제 속에 생물학적 여성만 입장 가능했지만, 그 주변엔 시위를 취재하기 위한 언론사 기자와 시위를 구경하려는 사람으로 붐볐다. 
 
  수많은 인파를 뚫고 간신히 시위 구역으로 들어온 기자는 임신 중단 합법화에 동참한다는 서명을 위한 줄과 맞닥뜨렸다. 긴 줄 끝에는 서명서와 구호 문이 적힌 종이, 낙태죄의 위헌을 재치 있게 표현한 스티커 그리고 물과 간식이 준비돼 있었다. 시위를 주최한 여성 익명 단체인 비웨이브(Bwave)는 더운 날씨였음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시위 참여자를 독려하고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눈짓으로 그들은 마음을 주고받았다. 기자도 준비된 물품을 받아 시위 장소에 착석했다.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산만한 분위기는 아니었고, 다들 주최 측의 진행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시위는 1차 일정과 2차 일정으로 나뉘어 진행될 것이라는 공지가 떴다. 이윽고 주최 측 진행 요원이 앞으로 나와 구호 선창을 희망하는 지원자를 받기 시작했다. 앞에 나와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는 게 쉽지 않은 일임에도 마이크를 통해 공지가 되자마자 사람들은 부리나케 줄을 서기 시작했다. 결국 제비뽑기를 통해 선창자가 결정됐고 첫 번째 선창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세포 동정하지 말고 여성 인권 신경 써라!’, ‘낙태가 살인이면 자위도 살인이다!’ 등의 낙태죄의 모순을 재미있게 꼬집은 구호들이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졌다. 시위 참여자들은 왼손에 구호 문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주먹을 움켜쥔 채 커다란 목소리로 격려의 함성을 보냈다.  
 
  1차로 구호를 외친 후 진행된 퍼포먼스는 시위 참여자 외에도 시위를 구경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충분했다. 달걀과 해바라기 씨를 던지는 퍼포먼스였다. 달걀이 닭이 아니듯 대부분 임신 중단이 이뤄지는 시기의 태아는 인간이 아니며, 해바라기 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함이었다. “태아의 가능성보다 여성이 앞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에 더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시위를 주최한 비웨이브의 발언이었다. 퍼포먼스에 참여한 여성들은 해바라기 씨를 뿌리고 그 위에 달걀을 마구 던지기 시작했다. 어찌나 세게 던졌던지, 던진 달걀의 파편이 그 앞에서 카메라 플래쉬를 이리저리 터뜨리는 기자에게 튀기도 했다. 깨진 달걀을 바라보며 그들은 자신의 염원이 이뤄지기라도 한 것처럼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임신 중단에 대한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퍼포먼스 이후 시위는 40분가량 선창 희망자를 더 받고 구호를 외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차 일정은 이것으로 종료됐다. 20분의 쉬는 시간 이후 연극 등으로 구성된 퍼포먼스와 음식배부 및 섭취, 마지막 구호 선창이 있을 예정이었다. 쉬는 시간 동안 시위 참여자였던 서울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 모(21) 씨를 만나 대화를 나눠봤다. “늘 관심을 두고 응원했지만 제가 직접 나서는 것에는 용기가 없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이 시위에 오셨고 함께 목소리를 내면서 저의 용기가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위는 여성 인권을 억압하는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낼 기회인 것 같아요.” 유 모 씨의 시위는 이번이 두 번째다. 그녀는 시위 진행 중 근처에서 시위에 관한 부정적인 말을 내뱉는 사람을 많이 목격했다고 했다. 그들을 생각하기라도 하는지 유 모 씨의 표정은 왠지 씁쓸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인식 전환과 관심이 적극적으로 필요한 때다”라는 말을 덧붙이고는 유유히 다시 검은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사실 시위가 그동안 순탄하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다. 비웨이브 언론 담당 측은 낙태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많은 것도 힘들지만 가장 힘든 부분으로 인력난을 꼽았다. “주최 진행 인원으로는 40명 정도가 있지만, 시위마다 모두 참석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시위 진행 요원이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라며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희도 항상 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기에는 외부적 상황에서 부족한 점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항상 현상 유지를 하거나 정말 미미하게 나아지는 것처럼 느껴 아쉬운 마음이 크죠. 그래도 많은 분들이 연대해주시니까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도 머지않아 오기를 바라요.” 포기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그녀의 목소리에 녹아 있었다.
 
  2차 일정의 시작으로 구호를 몇 번 더 외치고, 땡볕에서 고생하는 시위 참여자를 위한 간식으로 핫도그가 배부됐다. 격렬하고 사나웠던 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간식을 먹기 시작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집합 안에서 참여자들은 하나가 됐다. 메인 퍼포먼스였던 정부 비판 연극도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끌어와 ‘남자만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다’ 등의 대사를 집어넣어 낙태죄를 위헌이라고 여기지 않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이후 몇 차례의 구호 선창 후 뜨거웠던 우리의 열일곱 번째 시위는 막을 내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했던가. 그들은, 아니 우리는 임신 중단 전면 합법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지치지 않을 것이다. 여성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사회와 국가는 이 사안이 도덕적 논쟁의 대상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는 길임을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임나은 기자 dong7733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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