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원색의 꽃들이 마구 뒤엉켜 있다. 강렬한 색으로 치명적인 유혹을 하듯 꽃들은 터질듯한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다. 꽃들 뒤로는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줄기의 웅장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강렬한 원색과 자연의 풍광은 하나의 그림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을 깊게 우거진 숲 속에 던져놓고 자연을 감탄의 대상으로 느끼게 한다. 신비로움을 풍기는 이 작품은 <새와 폭포>라는 제목을 가진 김종학의 작품이다. 이 그림이 그러하듯 ‘설악산의 화가’로 알려진 김종학의 작품들은 모두 자연 속에서 탄생하고, 자연을 닮아 있고, 자연을 향해 있으며, 캔버스 안의 풍경으로 관람객을 흡수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종학 전>은 김종학의 50여 년간의 화업을 돌아보면서, 그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1950년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 작품까지 대표작 70여 점을 골고루 선별해 그의 시대별 화풍을 알아 볼 수 있게 구성되었다. 그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추상회화 및 판화 작업을 하던 중 1979년 이혼을 당하면서 현실 도피를 위해 설악산에 칩거하기 시작했다. 설악산에 칩거한 후 작가는 자연을 벗 삼아 지금까지 그가 두 발을 굳게 디디며 살고 있는 ‘땅의 정신’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김종학은 ‘설악산의 화가’로 미술계에 알려졌다.
  전시장을 눈여겨보면 캔버스 안의 계절이 동선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김종학의 작품들을 계절별로 분류해 봄․여름․가을․겨울을 동선의 이동에 따라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김종학 작품의 강렬한 원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해 전시장의 벽이 모두 화이트로 구성되었다.
  사계절이 끝나는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김종학이 딸에게 보내는 친필 편지가 전시돼 있다. 그는 대중에게 ‘설악산의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과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로서의 김종학의 모습을 빠뜨릴 수 없다. 그는 딸에게 설악산에서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쓸쓸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편지로 전하고 있다. 그는 창조란 창조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밝히면서 자신이 그리는 꽃은 화면 위에서 다시 피어나는 꽃이라고 말한다.
  <김종학 전>은 화려한 색채와 자연의 신비로움에 관람객을 빠져 있게 하다가 전시의 마지막에 놓인 이 편지들을 통해 관람객이 관람만 하는 것을 넘어 김종학을 가족의 정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무언가 고민을 털어놓고, 자신이 묵묵히 걷고 있는 일을 토로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아버지 김종학이 딸에게 자신이 걷는 길이 어떠한 길인지,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면서 생기는 쓸쓸함과 행복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가족에게 정신적으로 의지를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처럼 전시의 마지막에 놓인 편지를 읽으며 관람객은 그가 가진 철학과 작업에 대한 생각, 화가로서 가지는 고민과 즐거움을 듣게 되어 그를 공감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그를 포옹하게 된다.
  그림의 채색에서 물감을 절대 혼합시키지 않는 김종학은 울긋불긋한 꽃과 풀, 산과 달, 바람과 물을 통해 자연의 기운생동을 전달한다. 캔버스 안에서 대담한 원색으로 강렬하게 표현된 자연들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거대한 자연의 예찬하게 만든다. 회색빛 하늘,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시 속 현대인들에게 <김종학 전>은 모든 걸 잊게 만들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묻힐 수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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