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1 화 20:48
> 뉴스 > 기획
     
제31회 동덕문화상
2018년 11월 20일 (화) 18:05:19 동덕여대학보 ddpress@dongduk.ac.kr

  지난달 8일까지 본교 학우를 대상으로 동덕문화상 공모가 진행됐다. 시 부문 135편, 소설 부문 6편, 사진 부문 35편의 작품이 응모됐으며 여태천(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윤대녕(인문대학 문예창착과) 교수, 신빛(예술대학 회화과) 겸임교수가 심사를 맡았다. 이번 호의 5-7면은 동덕문화상 당선작으로 꾸며졌다. 
 

<동덕여대학보사>

 

ㅣ 시 부문 당선작

푸딩에게 - 이상미(문예창작 14)

오전에는 쏟아지는 겨울을 계속 주워 담았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어 이제 한 손으론 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래도 자주 넘어지고 난 가끔 밀린 연체료가 된 것 같고 그렇다 고양이가 내 턱을 잡고 뽀뽀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선반에 있는 접시를 몽땅 꺼내 각자의 접시에 각자의 캐롤을 올려놓고


너는 아직도 크리스마스에 취해있니 아직도 제주도를 괌이라 부르니 시적인 순간이 올 때마다 견딜 수 없어 고속도로를 타고 너만 아는 고향으로 가고 있니 나는 너만 아는 고향에서 태어나고 중학교도 다녔다 새벽 두시까지 독서실에서 가위질만 했어 트렁크 팬티 입고 문학교과서를 오려 독서실 책상 벽에 붙이고 내 옆자리는 전교 1등 내 뒷자리는 독서실 원장 딸이었는데 나는 그 방이 좋았다 뭐라도 된 것 같아서


뭐라도 되고 싶은 날들이 계속 이어지니 손목 시계의 시침은 특별해 보고 있으면 부서질 것 같지 모르는 사건에 휘말려도 감당할 수 있다는 예감을 뒤로한 채 너는 일본 가정식 식당 같은 카페에 앉아 서울을 마신다 서울은 그냥 그래 너는 여기서 밥도 먹고 나중엔 결혼도 하고 그런다 나는 베란다에서 얼음물을 키우고 있어 잘 자랐으면 좋겠다 언젠가 훌륭한 사람이 되렴


다시는 쓰지 않을 저 무수한 껍질들을 봐 다시는……다시는 이라는 말 멸망으로 밀어 넣는 거 아니야? 이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예감 실패 너머의 실패 너는 너의 가족과 벽난로 앞에서 이제 가족 행세는 그만하자고 비로소 너의 생일이 생겼다고 기뻐하고 있다 넌 화단을 벗어난 식물들 행렬에 참가하고 싶어 하는 중 난 오후에도 처음 겪는 것처럼 바깥에 나서는 중이고 화분을 으깰 때마다 맞바꿀 수 있는 푸딩 한 스푼

 

시 당선 소감

졸업 선물을 미리 받은 기분입니다.
이 기분을 어떻게 아껴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시를 실어준 동덕여대 학보사에 감사합니다. 곧 다가올, 나와 동기들의 졸업을 축하합니다. 옴의 법칙, 건강원, 극예술 연구회 여러분. 버티고 쓸 수 있는 힘을 나눠줘서 고맙습니다. 지금껏 학교에 다니며, 더 화내고 더 설치지 못한 것이 마음을 가렵게 합니다. 그 가려움으로 「푸딩에게」를 썼습니다. 이 시를 읽는 모두에게 용기 있는 겨울이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이 저의 마지막 지면이 아니길 바랍니다. 쓰는 사람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습니다.

 

시 심사평

예년에 비해 응모작품의 수가 많았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시라는 형식을 빌려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면서 언어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다. 언어를 통해 세계를 발견하고 있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심사를 진행했다.


「백만 마리의 물고기가 쏟아지는 낮」은 상상력이 돋보였다.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상상은 현실을 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반리얼리즘적인 방식으로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할 만했다. 「나는 화분을 선물한다」는 슬픔과 아픔으로 힘든 ‘당신’에게 선인장 화분을 선물하는 이야기다. 소품에 가깝지만 상반되는 이미지를 부각하는 방법이 우선 눈에 띄었다. 개별 이미지를 두드러지게 하는 구절이 참신했다. 병실에서 ‘왁자지껄한 슬픔’을 발견한다든가 ‘흙냄새를 맡는’ 당신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서 예리한 감각이 느껴졌다. 「오늘의 얼굴은 사과를 닮았다」는 언어를 다루는 재주가 남달랐다. 모든 사람은 상처를 갖고 있다. 상처 많은 사과와 맨발에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는 화자를 나란히 놓고 넋두리처럼 이어가는 말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다소 길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상을 관찰하고 그 대상의 특이성을 포착해낸 후 이를 언어화하여 끌고 가는 힘이 돋보였다. 그 힘은 단순한 말재주가 아니라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태도에서 온다. 길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반드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걷어낼 부분과 남겨야 할 부분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푸딩에게」는 오전과 오후, 나와 너의 대립적 구도가 시를 이끌어간다. 그런데 이 구분이 특별한 의미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실이 시를 풍성하게 만든다. 어딘가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며 열정적인 ‘너’에 비하면 ‘나’는 ‘밀린 연체료’처럼 매우 불안정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너’의 모습은 뭔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그러한 상상은 마치 이 시의 제목인 ‘푸딩’과 닮았다. 달콤하고 매력적인 푸딩은 말랑말랑하다. 변형 가능한 물질로서의 푸딩의 이미지를 가져와 새로운 가능성으로서의 ‘나’와 ‘너’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 이 시가 지닌 매력이다. 함께 응모한 「싱크」도 읽는 재미가 있었다. 언어를 다루는 가능성을 믿고 「푸딩에게」를 올해의 당선작으로 뽑았다.


수상자에게는 축하의 말을, 응모자에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응모자들은 누추하고 보잘것없는 삶을 지탱하는 힘이 문학에서 나온다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이 세계를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겼으면 좋겠다.


여태천(시인·국어국문학과) 교수

ㅣ 사진 부문 당선작
UNDER THE GROUND SERIES.1- 허혜윤(회화 16)



사진 당선 소감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미대 건물 저 밑 지하에 그림을 버리는 곳이 있다니요. 하지만 한 발 치 정도 거리를 두고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생과 사는 함께 가니까요. 버려졌다고 무의미한 것이 되는 걸까요. 살아있었습니다. 삶을 다한 것이죠. 그 그림들은 그에게 주어진 수명을 다 살아낸 것일 뿐입니다.


  수명이 긴 작품들이 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흔히 ‘명화’라 칭하며 미술사에서 계속해서 회자되는 작품들을 말할 수 있겠네요.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세기가 지나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가져다주고,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업의 수명을 늘려나가는 일이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이지 않은가’라고 생각해봅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어 설명을 덧붙이자면,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고,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이야기에 충실하게 녹아들어 연구하고, 정리하고, 연습하고, 표현해야 함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 있었던 진심이 세기를 넘어 통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학교입니다. 우리는 아직 어딘가 미숙하고, 어눌하고, 더딘 부분이 있습니다. 연마가 필요합니다. 과정에서 나온 호흡이 짧았던 작업은 버려졌다 하여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생각과 기억, 기록이 남습니다. 차곡차곡 한 층씩 쌓이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덤덤히 성장해나가겠지요. 


  작품은 말이 없지요. 하지만 저는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늘 고민이 많습니다. 당선사를 통해 여러분과 더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진 심사평

  1839년 사진이 처음으로 발명되었는데 (Daguerreotype 다게레오 타입) 은판 위에 얻어지는 정밀한 상은 그 당시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기억을 가진 거울’이라고 불리었다. 180년이 지난 지금도 사진은 찍는 순간의 시간을 반추해 낸다. 사진에 담긴 장소와 상황 그리고 이미지들은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시대성과 역사성으로 전이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록적 특성은 시간과 공간을 재해석하게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인간의 지각 방식을 변화시키면서 새로운 경험세계를 선물했다.


  “수명을 다한 것처럼 보이는 화판들의 겹쳐진 군집은 마치 공동묘지를 연상케 한다. 나는 버려진 그림과 지하의 공간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곧 죽음은 ‘살아있음’을 반증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살아있는 것만이 끝, 다시 말해 죽음을 맞이한다.”(작가의 말)


  <UNDER THE GROUND SERIES.1〉버려진 장소에서 기억의 단상을 들춰낸 작가는 각기 다른 그림으로 채워졌을 화판을 통해 생명과 다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수많은 그림이 그린 화가의 기억 속에서는 멀어지고 지워진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생명체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포토 콜라주(collage) 표현 방식은 20세기 초의 아방가르드들이 행했던 사진과 그림, 사진과 데생, 사진과 텍스트를 상호 교환하는 미학적 표현 수단의 연장선에 있다. 작가의 사진 또한 디지털 이미지의 혼용을 통한 시각의 확장, 다층적 구조의 해석을 가능하게 했고 작가 자신의 내러티브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쉽게 버려지고 잊힘에 작가는 주목한다. 그의 포토 콜라주는 사진에 가상적 공간을 만들어 내고 연속된 이미지들을 결합해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 시켰다. 화판, 액자, 형광등, 창을 통해 작가는 여러 문화 파판들을 모으고 분리시켜 결국에 전달하고자 하는 무언의 메시지는 ‘절대적인 완결이나 답이 없다’ 일 것이다.

 

신빛(사진가·회화과) 겸임교수

 

ㅣ 소설 부문 당선작

새비지 가든(savage garden) - 최서윤(문예창작 16)
서울 부촌富村, 강 교수네가 사는 바로 그 2층 저택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딸려 있었다. 정원의 모든 것은 늘 가꾸어져 있었고, 따라서 거기엔 그림 같은 조형미와 어떤 정형성이 있었다. 그 집의 남매는 매일같이 그 정원을 뛰놀았다. 이란성 쌍둥이였는데, 첫째가 시라, 둘째가 시경이었다. 둘 다 뽀얗고, 이마가 단정하니 꽤나 어여뻤지만 공통점은 그뿐이었다. 그들은 성별부터 생김새까지 모두 달랐고, 무엇보다 성격이 정반대였다. 시경은 남자애로 키가 또래보다 크고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면, 여자애인 시라는 어린애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눈, 그 부라리는 모양새 때문에 섬뜩한 기운이 풍겼다. 어린애들답게 그들은 순수로 무장한 채 심술궂은 장난도 쳤고 간혹 잔인할 때도 있었다. 그에 관해선 특히나 시라가 좀 남달랐다. 어찌나 고집이 세고, 제멋대로인지 자라면 어마어마한 신경질쟁이가 될 거라고… 그 애를 겪은 사람들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 집에서 오래 일한 가사 도우미가 한 날엔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옛날에 이 집 둘째 삼촌도 저렇게 눈빛이 불온했지.”
둘째 삼촌이란 동성의 연인을 두던 시인이었는데, 워낙에 성질이 모난데다 집안에서는 눈엣가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자살해 세상에 없었다. 어린 앨 두고 그런 흉험한 얘길 하는 게 여간 도리에 어긋난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느낀 나머지 절로 그 소릴 입 밖에 내고 만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라와 시경은 쌍둥이인 탓인지 서로를 지극히 아꼈다. 서로에 관해서라면 죽고 못 살 정도였다. 잘 때조차 각자의 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한 침대에서 자곤 했으므로.
성향이 그렇게 달라도 서로 싸우는 법도 없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자라고부터는 취미가 달라지는 바람에 공유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갔다. 시경은 주로 책에 파묻혀 지냈다. 고작 열두 살, 열세 살인 때쯤에 벌써 아베 코보, 서머싯 몸, 귄터 그라스, 체호프 등을 읽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의 부모가 둘 다 교수에, 점잖고 고상한 취향을 가진 전형적인 젠트리였기 때문에 시경의 그런 취미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부모는 신이 나서 그가 원하는 책들을 그의 품에 안겨주곤 했다.
하지만 시라는 그런 면에서도 시경과 정반대였다. 그렇다고 무슨, 책을 찢는 취미가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이지 부모가 제지할 수밖에 없는 취미를 골라 가졌던 것이다.
그 애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대체 어디서 났는지 모를 담배를, 그것도 학교 도서실 구석에서 피우다 들키곤 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얼굴의 반을 새카맣게 칠하고 등교를 하려하거나 그 가지런한 자기 집 정원에 불을 지르려고도 했다. 멋대로 학교를 결석하는 바람에 온 가족의 애를 태우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오기도 했다. 이유도 없이 거짓말을 하고, 이유도 없이 화를 냈다. 아버지 차를 끌고 나가 앞마당을 휘젓기도 하고, 장식장의 술병들을 모두 깨뜨렸다. 느닷없이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조르다가도 막상 고양이를 데려왔더니 꼴도 보기 싫다고 악을 질렀다. 그래놓고선 다음날 그녀의 방에서 발견된 건 온통 고양이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때로는 익살스럽게 나대다가도 금세 침울해했다. 밥을 안 먹겠다고 우기면서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안 나올 때도 잦았다. 어쩔 땐 시라의 취미가 그 일들 각각이 아니라 오직 단 하나뿐인 것 같기도 했다. 그녀 주위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
그나마 꽃이나 그림, 독특한 가구 같은 것에 흥미를 보이는 것도 같아 그녀의 부모는 미술을 시켜보기도 했지만, 시라는 캔버스에 온통 시경의 얼굴을 그릴 뿐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보통 이상의 일들을 저지를 때면 부모는 그녀에게 묻곤 했다. “뭐 때문이니, 대체 무엇 때문이니?” 그녀는 그럴 때면 대답 없이 눈을 부라렸다. 시경은 그런 걸 다 지켜보면서 어릴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느 날, 시라는 키우던 개의 두 귀를 붙잡고 그 개를 들어 올리고 있었는데, 개가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대는 걸 듣고 달려 나온 시경이 개를 안자 오히려 시라는 이렇게 물었던 것이다. “우린 오늘 아침 돼지고기를 먹었어. 돼지는 괴롭혀도 되고, 개는 괴롭히면 안 돼? 왜? 왜 안 돼?”시경에게 그건 그저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무 대답을 안 했다. 설마 진심으로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겠지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누나는 천진하기라도 했는데. 하지만 열여섯의 시라는 무척 야위고 신경질적인 인상이었다. 타인들에겐 그 얼굴이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지만 시경은 다만 나날이 날카로워지는 누나 콧날이 걱정스러웠다. 저러다 말라 죽으면 어쩐담. 그래서 그는 밤늦게 누나가 파자마를 입고 자기 방을 찾아올 때면 이런 말을 해주기도 했다.
“누나,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망가져보고 싶어 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내던지고 가끔은 타락해보고 싶어 해. ‘아예 저 밑바닥까지 가볼까. 그러면 어떻게 되지?’ 누나는 좀 오래 그런 상태에 있을 뿐이야. 아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거지. 하지만 그런 식의 태도는 어떤 이유로든 옳지 않다는 걸 알아둬야 해, 누나. 그리고 그런 호기심은 잠깐뿐이어야 한다는 것도.”
시라는 그런 훈계조의 말을 못 견뎌했지만, 동시에 시경에게만큼은 유독 약했으므로 그녀는 그런 비슷한 말들을 매번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와 동생의 생일 날 밤, 마치 장난인 것처럼 그러나 확실히 긴장한 채로 물었다.
“만약 네가 말하는 그 일탈이, 호기심이 아니라 그냥 내 천성이라면 어쩔래? 내가 그냥 그런 사람인 거면 어쩔래?”
시경은 그때에도 대답을 안했다. 솔직히 시경은 그런 사람은 없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자존심 세고, 고집까지 센 자기 누나가 오기랍시고 또 다시 일을 벌일까봐 말을 아꼈던 것뿐이었다.
시라는 시라 나름대로 시경이 대답이 없는 것에 충격을 받은 채였는데, 그녀는 그 이후로 느닷없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에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예민해 보였으면서 동시에 목석같기도 했다. 그녀는 이젠 학교도 꼬박꼬박 잘 나갔고, 밥도 잘 먹었다. 대신 말수가 줄고, 어떤 행동을 할 때 꼭 시경이나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이 뭘 하는지 잘 보아두었다가 한 박자 뒤에 그걸 똑같이 따라하곤 했다. 그녀가 그러기 시작하자 더 이상 학교에서 집으로 연락이 오는 일도 없었고, 희한한 일이 일어나는 날도 없었다. 강 교수 부부는 이제야 시라가 철이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역시 어려서 분별이 없었던 것이거나 장난기가 조금 심했던 게 아닐까 하면서.
시라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몹시 피곤해하며 늘어지게 자다가 밤이 되면 다시 그림을 그렸다. 아침이 되어 “밥 먹으러 갑시다, 시라 아가씨.”하고 시경이 장난스레 들어오면 “그럽시다, 시경 도련님.”하고 시경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가 부엌엘 갔다. 부엌에서 가사 도우미가 그녀 앞에 밥을 내주면 얌전히 그걸 먹었고, 다 먹은 시경이 일어나서 화장실에 들어가는 걸 보고 그녀도 2층 화장실로 향했다. 씻고 나와서는 시경과 함께 학교로 갔고, 수업이 끝나면 시경과 함께 돌아왔다. 그리곤 다시 또 잠들었다가 일어나 그림을 그렸다. 그토록 매일 같이 그림을 그려댄 덕에 그녀의 그림 솜씨는 날로 정교해져갔다.

여름이 한창일 무렵, 시라와 시경은 방학을 맞았다. 가지가 혈관처럼 뻗은 소나무 몇 그루, 하얗고 동그랗고 매끄러운 돌들이 땅을 덮은 모습, 입구에서나 집 안에서나 바라보기 절묘한 위치에 놓인 새까만 수석, 자그마한 연못과 그 위를 지나는 장식용 목조 다리까지 정원은 여전히 그윽하고 우아미 넘치는 풍경이었다.
시경은 방학을 맞아 본격적으로 독서에 빠져들어 갔다. 시라 역시 본격적으로 그림만을 그려대었다. 강 교수 부부 또한 각자의 서재에 처박혀 연구를 하거나 집필을 하는 등 저택은 모처럼 고요하고 한적하였다. 시경은 독서를 하다가도 때때로 아래층에 내려와서 간식거리를 해 먹거나, 아버지 방을 두드려 자기가 읽은 책이 어떠했는지 감상을 말했다. 그럴 때, 계단이 울리는 소리… 시라의 어머니는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 씩은 이모를 초대해 정원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테이블을 펼쳐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마다 통-통-하고 셔틀콕 받아치는 소리… 웃음 소리… 가 그 집에서 나는 유일한 소음이라면 소음이었다. 시라는 간간히 그들이 부르면 내려가고 대꾸하고 가끔은 따라 웃기까지도 했지만, 나머지 시간은 거의 그림을 그리는 데에 썼다. 시경이 방에 들어와 앉아있거나, 오전에 가사 도우미가 들어와 그림자같이 청소를 하고 사라질 때에도.
시라가 그토록 열중해 그렸던 그림의 소재는 온통 나무였다. 그녀 앉은키만 한 캔버스에 시라는 오직 나무를 하나 그리고, 그걸 다 그리고 나면 다른 캔버스에 또다시 비슷하게 생긴 나무를 하나 그렸다. 전에 괴기스러울 정도로 주구장창 시경만을 그렸던 이력이 있었기에 강 교수 부부나 시경이나 이번에도 그녀가 나무만을 그리는 것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 그녀가 오래 전 몇 번 레슨을 받은 것만으로 그만큼이나 뛰어난 그림을 그려내었다는 것을 신기해 할 뿐이었다. 시라 어머니인 김 교수가 특히나 즐거워했다. 그녀는 심지어 자기 딸이 어쩌면 천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김 교수가 강 교수에게 그러한 얘기를 하자, 강 교수도 어쩌면 시라의 어릴 적 괴벽이 예민한 감수성이나 예술적 재능을 주체 못한 탓이 아닐까 상상했다. 게다가 어느 날 낮에 시경이 시라의 방에 들어갔을 때에 그가 깨달은 바를 귀띔하자 더 그랬다.
그날 시경은 그녀가 오늘만큼은 나무가 아니라 검은 수석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문득 그녀가 지금까지 그려왔던 총 여섯 점의 나무 그림들을 살펴보다가 깨달았던 것이다. 시라가 지금껏 자기 집 정원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배경에 담장이나 이웃집, 가로등 따위만 없을 뿐이지, 그림 속 나무들은 그동안 왜 몰랐을까 싶을 정도로 정원의 나무들과 닮아 있었다. 놀란 시경이 나무 그림들을 정원의 실제 구도대로 펼쳐놓았더니 정말이었다. 그는 박수를 치면서 누나의 침대에 앉았다. 시라는 붓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화라 어쩔 수 없이 물감 마르길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름답다.”
오히려 시라는 시경의 그 한 마디에 놀라고 말았다. 쑥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아름, 답다고?”
“그래. 제목은 지은 거야?”
“아직…”
“‘뷰티풀 가든’은 어떨까? 아니면 ‘따뜻한 정원’이라던가, 아니면 아예 ‘정원 풍경’이라고 하는 것도 멋있지 않을까?”
“좋아…”
좋다고 말하는 시라 입술이 달달 떨렸다.

시경이나 강 교수 부부는 그 이후로 그림의 진전을 보기 위해서 자주 시라의 방을 찾았다. 시라는 그들이 그림을 마음껏 보도록 내버려 두었다. 어느 비가 오는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시라는 책상에 앉아 무언갈 끄적이고 있었는데 시경이 그림을 보기 위해 슬그머니 그녀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던 것이다. 시라는 그가 들어온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장난스러운 발상이 떠올랐다. 시경은 발소리를 죽이고 시라의 뒤로 다가갔다. 시라를 깜짝 놀라게 하려는 의도였지만 그는 곧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시라의 스케치를 지켜보아야 했다. 시라가 사각거리고 있던 것들이 또다시 시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케치 속 시경은 나무 기둥 속에 발가벗은 채로 서 있었다. 시라는 연습하듯 여러 각도로, 조금씩 다른 자세로 나무 기둥 속에 들어있는 시경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뒤를 돌아 캔버스에 멋지게 그려져 있는 나무들을 살펴보았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지만 육안으로는 그저 거북이 등같은 소나무 껍질들밖에 볼 수 없었다. 때마침 시라가 인기척에 돌아보았다.
“또 그림 보러 온 거니?”
“응.”
시경은 그러곤 천연덕스럽게 그림을 보는 척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아무 것도 못 본 듯 돌아가자. 그냥 모른 척하자. 그리하여 심지어 몇 분 후에는 시라에게 아무 내색 않고 자기 방으로 돌아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참지 못하고 커터 칼을 챙겨들어 다시 누나의 방으로 갔다. 시라가 말릴 틈도 없이 그는 한 나무 그림의 유화 물감을 캔버스로부터 조금 뜯어내었다. 나무기둥을 표현한 짙은 갈색 계열의 물감 덧칠 속에 과연 밝은 빛깔이 숨겨져 있었다. 마치 사람의 살과 같은 빛이었다.
시경은 시라를 돌아보았다. 시라는 또다시 입술을 달달 떨고 있었다. 시경은 이 안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시라는 말이 없었다. 시경이 다가가 그녀의 책상에서 스케치북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그제야 저 나무들 속에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스케치는 온통 시경과 강 교수, 김 교수가 눈과 입을 꿰매진 채 발가벗고 서 있는 것이었으므로.
시라는 중얼거렸다.
“시경아, 사랑해.”
시경이 그녀를 안아 주었다. 그리곤 그녀를 위해 잠시간 눈물을 지어주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시경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그러나 이런 건 그냥 넘길 수 없어.”
그는 시라를 놓아주고 방 밖으로 나갔다. 창밖에서는 번개가 내리치고 있었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 곧장 안방에 다다랐다. 그 순간,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소리가 끝나고 곧이어 부모님이 자고 있는 방의 문을 두드리는 시경의 얼굴이 깜빡 깜빡 사라졌다가 드러났다가 하였다. 시라도 어느새 나와 계단 난간을 붙잡고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동생의 완강한 얼굴이 너무 빛이 났고, 너무나도 완벽해 보였다. 그녀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만큼. 시라는 곧 다시 방으로 돌아왔지만 번개는 계속해서 내리쳤다. 저 번개는 무엇을 가르고 있다… 그리고 무엇을 죽이고 있다… 시라는 한동안 꼼짝없이 방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녀 주위를 둘러싼 나무 그림들 사이에서 멍한 그녀의 얼굴은 송장처럼 창백했다.
시라의 유학이 의논된 것은 그날 새벽이었다. 강 교수 부부는 며칠 후에는 시라를 프랑스로 보내기로 아예 결정해버렸다. 아직도 딸의 광기가 천재적인 예술성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못한 탓이었다. 그게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든 천재성으로 포장해볼 계획이었다. 둘 다 그런 심사를 절대로 입 밖에 내지도, 의식하지도 않았지만.
시경 역시 부모님의 결정에 납득했다. 그는 그 정도면 누나도 정신을 차리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든, 낯선 곳에 적응하기 위해서든 더 이상의 기행은 꿈도 못 꾸게 될 것이라고. 시경은 시라에게도 확실하게 유학 계획을 전해주었는데, 시라는 그 이후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이틀째 되는 날, 보다 못한 시경이 시라의 방문을 두드리고 살짝 문을 열어보았다. 시라는 시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시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열린 틈으로 이야기했다.
“누나, 옛날에 누나가 물었지. 이런 짓들을 하는 게 그냥 누나의 타고난 기질이라면 어쩔 거냐고. 나는 그때 그런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이제 알겠어. 그런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하겠어. 그러나 그런 사람은 광인狂人이고, 광인은 여기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있어야 해.”
시경의 어조는 차갑지도 않았고, 오히려 호의가 넘쳤다. 그의 눈빛은 분명 따스했지만, 오래도록 시라의 가슴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가 지금 막 터지기 시작한 그녀의 울화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녀는 그러나 살포시 웃었다. 그녀 자신도 자기가 왜 웃는지 몰랐다.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서? 너무 슬퍼서 나온 헛웃음인가? 아니, 다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깨달았을 뿐이었다. 
시라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시경도 방문을 닫았다. 이윽고 시라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두 눈 속에는 전에 없던 지독한 광기가 우글거렸다. 그녀는 즉시 붓통에서 중간 붓 하나를 꺼내왔다. 그걸 반으로 부러뜨렸더니 제법 날카로운 흉기가 되었다. 시라는 그 뾰족한 부분으로 자기 오른 손을 내려쳤다. 이가 갈릴 정도로 악 다문 턱. 피는 있는 대로 튀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수차례 반복되었다. 시라의 손등은 짓이겨져 뼈마디가 보일 정도였다. 그녀는 피로 흥건한 손으로 이번엔 종이를 찾았다. 거기에 그녀가 그녀의 피로 적은 글은 이런 것이었다. ― 그래, 영원히 날 부정해라. 난 계속 여기 있었고, 죽어서도 떠나지 않을 거니까.
그 일은 온 집 안을 발칵 뒤집었다. 강 교수 부부와 시경은 거의 실신 직전의 상태로 그녀를 병원에 데려갔지만, 시라는 그들보다 훨씬 침착한 채였다. 그들이 집을 비운 사이, 가사 도우미가 시라의 방에서 그 모든 흔적을 말끔히 치웠다. 가사 도우미는 걸레질을 하는 내내 두려움에 덜덜 떨어댔다. 이러다 무슨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나겠어. 그 애는 정상이 아니야. 그녀는 그동안 그 말을 중얼거렸지만, 다행히도 그녀가 두려워한 일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강 교수 부부가 결국 시라를 대학병원에 입원시켰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손이 나으면 시라는 정신병원으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시경이나 강 교수, 김 교수는 그 이후 한참 동안을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방 안에 누워 있던 시라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시라는 그때에도 눈을 부라리면서 기겁하는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극도의 충격으로 모든 일상적인 일들을 해내지 못하고 멍하니 지냈다.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머리를 싸매 시라를 이해해보려고도 했다. 그녀가 왜 그 지경이 되었던가를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보아도 그들에게는 잘못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한 번도 그녀에게 소홀한 적 없었고, 그녀를 학대한 적도 없었다. 언제나 애정을 가지고 그녀를 걱정했으며, 지금까지의 비상식적인 행동들까지 견뎌가면서 끝까지 그녀를 보살폈다. 그런데 대체 왜, 무엇으로 인하여? 그들이 기껏 할 수 있는 추측이란 유학을 그리도 가기 싫었던 걸까 하는 것이 다였다.
시경은 더더욱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이 상황을 납득할 수 없어 했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어 했다. 그는 개학을 앞두고 있었다.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학교를 다녀야 할 터였다.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시경은 두려웠다. 이대로라면 시라가 남긴 편지도, 그녀의 표정도, 그녀가 한 짓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는 여러 번 시라를 보러 갔다. 어리다는 이유로 그가 누나를 보는 일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시라가 안 보는 사이에 그녀의 병실 문 밖을 지나면서 그 틈에 그녀를 훔쳐보고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해서 그녀를 보고 와봤자 그에게는 여전히 모든 것이 오리무중이었다. 막막한 기분으로 병원 로비에 앉아 있으면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다시 누나를 보러 입원실이 있는 층으로 올라가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추측하건대, 시라가 정신병동으로 옮겨지고 나면 그녀를 만나는 일은 더더욱 요원해질 것이었다. 부모님이나 의사는 그가 정신병동을 들락거리도록 허락지 않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병원에서 온 연락이 그에게 기회가 되었다. 시라의 심리상태를 검진하는 과정에서 가족 전원의 상담기록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엔 이미 시경이 개학을 한 상태였으므로, 시경 혼자 따로 시간을 내어 병원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부모님 없이 또다시 시라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았다. 거기에서 만난 신경정신과 의사가 질의하는 대로 한참 대답하다가 시경은 멈칫하고 말았다. 누나와 평소에 했던 대화중에서 뭐가 제일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 때문이었다. 의사는 시경이 말이 없자 친절히 덧붙이기까지 했다. “네가 누나에게 해준 말도 좋고, 누나가 너에게 해준 말도 좋아.”
시경은 시라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되짚어 보았다. 당시에는 특별할 것 없는 대화라 여겼던 것들도 그 일을 겪은 후, 괜히 문득문득 신경 쓰일 때가 있긴 했다. 그것은 대체로 시라가 그에게 해줬던 말이라기보다는 그가 시라에게 해줬던 말들이었다. 예를 들면 정신병원 운운했던 것이나, 타락 어쩌고 했던 것.
그는 지금에 와서야 시라를 이해 못하면서도 안다고 생각했던 걸 후회했다. 그때의 그는 주위에서나 추켜세우는 헛똑똑이였을 뿐인데. 그렇게 재면서 말할 수준은 전혀 아니었는데. 특히나 누나, 시라에 관해서는 말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예전에 누나 앞에서 누나가 하는 행동들을 제멋대로 진단했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사람들이 가끔씩 ‘아, 다 때려치워 버릴까.’하듯이… 누나의 행동들도 단지 타락에 대한 호기심과 충동에 가까운 것이라는 식으로…”
의사는 시경의 어투에서 죄책감을 읽고서, 재빨리 상담 매뉴얼 중 한 가지를 밟았다. 그녀는 교묘히 요점을 피해 시경의 의견에 동조했던 것이다.
“재미있는 생각이구나. 사실 모든 사람한테는 악마적인 충동이 있어. 반대로 성인聖人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지. 아무도 예수나 부처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건 다수의 경우에 고통을 동반하거든. 나는 가끔 그런 생각도 해. 사람한테 가장 최적화된 삶의 방식은 어쩌면 본능에 가깝게 사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게 가장 쉽고 그게 가장 편해. 꾸준히 그러는 사람한테는 고민할 게 없을 걸. 그렇지 않겠니?”
의사의 말은 확실히 시경의 흥미를 끌었다. 그는 금세 의사의 말에 빠져들었다가 곧바로 되물었다.
“그럼 그럴 수도 있나요. 나쁜 사람이 옳고, 착한 사람이 옳지 않을 수도 있나요.”
의사는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망설이다가 얼버무렸다.
“글쎄… 하지만 이런 경우는 있지 않겠니. 우리는 우리가 쉽게 대처할 수 없는 사람을 악하다고 판단할 때가 있거든. 어쩌면 기준이 틀린 걸지도 몰라. 기준이 틀리면 모든 게 어그러질 수도 있으니까.”
시경은 잠시간 말없이 그 얘기를 곱씹었다. 처음에 그는 그의 누나가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그 다음엔 자기가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쁜 건 뭐였을까? 이렇게 그와 그의 누나와 부모님을 아프게 한 건 대체 뭐였을까?
마침내 상담이 끝나고 시경은 그가 바라왔던 것, 시라와의 면회를 요청했다. 의사는 딱 잘라 안 된다고 했다가 시경의 간곡한 청에 마지못해 부모님의 동의를 받으면 허락하겠다고 했다. 그녀도 시경이 얼마 전까지 매일 병원에 왔었던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시라는 시경이 등교하느라 며칠 병원에 안 들른 사이에 이미 정신병동으로 옮겨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의사는 막상 시경이 어머니 김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동의를 받자, 또다시 말을 바꿔 보호사를 면회실 안에 세워두는 조건으로 겨우 면회를 허락했다. 그녀는 끝까지 당부했는데, 절대 시라를 자극할 만한 말은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시경은 그 말에 아차 싶었다. 누나를 봐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면회실 테이블에 앉아서 녹차 한 잔을 홀짝이며 시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시라가 들어왔다.
그녀는 아직도 오른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시경이 그걸 보고 있자 시라는 괜찮다는 의미로 오른 팔을 들어보였다. 시경이 보기에 손가락들은 영 뻣뻣해 보였다. 마치 영영 쓸 수 없게 된 것처럼. 시경은 끔찍한 기분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시라가 시경의 맞은편에 앉을 때까지도 그랬다. 그는 한참동안을 두려움에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있었다. 시라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시경아, 아직도 날 사랑하니?”
시경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이야.”
“엄마, 아빠도 그럴까?”
“물론.”
그러자 시라가 왼손으로 자기 환자복을 만지작거렸다.
“시경아, 이게 나야. 이게… 그래도?”
그 말을 듣자 시경은 지난 일들이 모두 누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시라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대었다. 시경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아주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게 그들을 빗겨가고 있는 것 같았다.
“누나, 우린 한 번도 누날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시라가 환하게 웃었다. 시경도 따라 웃었다. 그러나 왜였을까. 시경은 여전히 끔찍한 기분이었다.
시경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저녁이었다. 집안은 언제나처럼 조용하였다.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채 2층 자기 방에 앉아 있었다. 그의 방 건너편에 누나의 방이 있었다. 그가 앉아 있는 쪽에서 열린 문 너머로 문 닫힌 시라의 방이 보였다. 그동안 시경은 쉴 새 없이 저 문을 열고 들어갔고, 누나도 쉴 새 없이 이 방으로 들어왔었다. 그뿐인가. 어렸을 때에는 함께 자고, 뒹굴고, 뛰놀았다. 시경은 누나와의 어린 시절 사진이 가득한 앨범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조금 더 쉬고만 싶었다. 그토록 애를 써 시라를 만났지만 결국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는 눈을 감고 살그머니 졸기 시작했다. 가사 도우미는 늘 그랬듯 소리 없이 올라와 시라의 방과 시경의 방 사이 작은 거실을 정리하고 있었고, 시경은 아주 잠깐 달콤한 꿈까지 꾸었다. 
“어휴, 광증도 유전인가? 옛날 이 집 둘째 삼촌처럼 눈빛이 불온하더라니.”
가사 도우미의 아주 작은 중얼거림… 이 꿈같은 분위기 속에서 마치 없던 것처럼 흩어졌다면 좋았을… 그 작은 소리 하나가 시경의 무언가를 바늘처럼 찔렀다. 그는 눈을 뜨고 서늘하게 물었다.
“둘째 삼촌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늙은 가사 도우미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물끄러미 그녀를 응시하는 시경을 보고서 깜짝 놀랐다가, 곧 송구스러워 하며 시경을 외면했다. 그녀는 어린애 듣는 데서 못할 말을 하였다는 죄책감 때문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시경은 어쩐지 그게 가증스러워보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어떤 사람이었느냐니까요?”
가사 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녀로서는 딱히 거기에 대한 대답이 될 만한 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노랫말과 같이 시간은 강물처럼 흘렀다. 아무런 의도 없이도 시경도, 집도, 강 교수 부부도 천천히 일상성을 회복해가고 있었다. 모두 가끔씩 시라를 보러가곤 했지만, 심지어 그들은 그때마저도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시라는 병원에서는 잘 지냈다. 그녀는 그녀가 그 집에 어떤 저주를 하고 떠났는지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모두가 그 일을 쉽게 까먹었다. 물론 아예 없었던 일처럼 잊고 살 수는 없었다. 수면 위로 주둥이를 뻐끔거리는 물고기 마냥 그 일은 가끔 한 번씩 떠올라 그들을 섬뜩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점차 빈도가 줄어들게 되었다. 강 교수 부부도 그랬고, 시경도 분명히 그랬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시경은 3년이나 지나서야 친구를 붙잡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날, 나의 무언가를 누나가 앗아갔어. 그게 뭘까 생각해보았지. 다른 사람들 말대로 단순히 우리가 쌍둥이라서 내가 이토록 공허함을 느끼는 걸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자꾸 그게 다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그게 다는 아닐 거야. 어쩌면 그런 거 있잖아… 아주 강력한 주문이나 아주 오래된 강박 같은 게 있다가 사라진 기분.”
“그게 뭔데. 그 강력한 주문이나 강박이 뭔데.”
친구가 시경의 쓸쓸한 얼굴을 보고 덩달아 심각해져서 물으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면 내가 잃은 게 기회일지도 몰라.”
또다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지내다가도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이런 말을 하던 순간도 있었다.
“나는 단순히 누나가 이상하다고 해서 누나를 ‘고발’한 게 아닐지도 몰라. 우리 부모님도 말야… 굳이 왜 누나를 외국으로 보내려고 했을까 생각해 보면 말이야.”
“응…”
“어쩌면 누나가 성가셔서, 누나를 감당하기 싫어서… 그럼 누가 나쁘니. 나쁜 건 누굴까, 응?”
하지만 오래전 가사 도우미가 끝내 그에게 둘째 삼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주지 않았던 것처럼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도 시경에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소설 당선 소감

  당선 소식을 듣고 정신이 멍해지는 사람도 있다지만, 전 오히려 더 멀쩡해졌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내 글솜씨로 대체 어떻게 당선을 한 거지?’ 싶어 보냈던 소설을 다시 쭉 읽어보기까지 했습니다. 다른 응모자분들의 글 쓸 당시의 노고가 결코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을 걸 떠올리면 더 부끄럽습니다.


  나중에 다시 ‘어떤 신비한 까닭으로 제 글이 동덕문화상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더니, 참 많은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가족과 친구들 얼굴입니다. 때론 격려해주고, 때론 다그쳐준 사람들.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에 좋은 경험 많이 하며 글을 쓰다 보니 이렇게 상도 주어지나 봅니다.

  수상소감이라니, 써본 적이 많지 않아 영 쑥스러워 더 적기가 민망하네요. 자만하지 않고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글을 대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오랫동안 버티며, 견디며 끝까지 파보겠습니다. 그럴 용기를 준 동덕문화상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문예창작과 화이팅! 아스떼리스크 화이팅!

 

소설 심사평 

  「연말, 그리고 꽃말」은 ‘관계’를 다룬 소설인데, 한편의 이야기체를 구성하는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물망초, 보신각 등의 클리셰와 어쩔 수 없이 기시감을 불러오는 익숙한 패턴 전개로 이야기의 신선함을 떨어뜨리고 있다. 「로이 더 블루」는 추상적이다. 감각적 문장의 동원해 독특한 파스텔 톤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는데, 서사의 뼈대가 약하고 대체로 감상적으로 읽힌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가령 「미자」의 경우는 전(傳)의 형식으로 ‘늙은 여자의 일생’을 보여줌과 동시에 비극적 결말을 통해 한편의 블랙 서사를 구축하고 있다. 삼대에 걸쳐 유전되는 이 이야기는 그 자체로 읽히는 힘을 내장하고 있다. 그러나 문장이 거친 점이 자주 눈에 거슬렸다. 「정하의 편지」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다룬 작품이다. 고교 때 가까웠던 친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오랜 고통에서 힘겹게 벗어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전체적인 이야기의 짜임새가 약하게 다가온 점이 흠으로 작용했다. 


  한편 「기린의 신화」와 「새비지 가든」은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을 보여준다. 우선 「기린의 신화」는 차분하고 안정된 문장으로 삶을 깊게 관조하려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뇌경색으로 죽어가는 아버지, 케냐와 서울의 동물원에서 목격한 기린, 남자친구 한경과의 관계 들을 겹쳐 놓으면서 작가는 ‘삶에 있어서 결국 남는 것(남겨지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자신은 모르고 있으나 주인공 혜림의 얼굴에 나타나는 습관적인 표정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호소력을 갖췄음에도 전체적으로 구성이 산만하고 논리 구성이 미숙해 보이는 것은 작가가 너무 많은 이야기를 동시에 하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새비지 가든」 또한 문장 구성력이 돋보이는 데다 밀도와 유연함까지 갖추고 있다. 이 소설은 이란성 쌍둥이를 소재로 원시적 생명력을 지닌 존재가 고립되고 파멸돼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광기에 가까운 주인공 시라의 ‘불온함’은 합리적으로 구축된 세계의 시스템과 근본적으로 불화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작가는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야생의 마음(새비지 마인드)’이 거세돼 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라와 같은 ‘광기’에 사로잡힌 존재는 결국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 전락함을 얘기하고 있다.


  두 작품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다 선자는 짜임새와 주제 제시가 좀 더 선명한 「새비지 가든」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린의 신화」에도 끝까지 미련이 남아 있었음을 밝혀두고 싶다. 작품을 응모한 모든 학생에게 정진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

 


 윤대녕(소설가·문예창작과) 교수


 

동덕여대학보의 다른기사 보기  
ⓒ 동덕여대학보(http://ddpress.dongduk.ac.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처리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02748)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 13길 60(하월곡동 23-1) | Tel 02-940-4241~4242
발행인 : 김명애 | 편집인 : 김규희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규희
Copyright 2009 동덕여대학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dpress.dongd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