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 불합치란 그 조항이 위헌이지만, 사회적 혼란을 우려해 법을 새로 제정할 기간을 정해두는 것을 뜻한다. 헌재가 낙태죄를 위헌이라 판단한 이유 중 하나는 이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토록 당연한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66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어찌 됐건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은 임신 중단과 관련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뿐이다. 구체적인 법의 개정은 국회에서 시작된다. 개정되는 법의 내용이 원래의 것과 다를 바 없다면 오늘의 변화도 헛걸음이 될 수 있다.

 
  기존 낙태죄 처벌 대상은 부녀(婦女)와 의사만을 포함했으며 남성의 경우 처벌을 피할 수 있는 법의 허점이 존재했다. 이런 불평등한 처벌 대상도 위헌의 근거가 됐다. 무엇보다 기존의 낙태죄는 실질적인 효력이 없는 법에 가까웠다. 박명배 교수(배재대학 실버보건학과)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임신 중단 수술은 연간 최대 50만 건까지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원치 않는 임신을 겪는 여성의 수가 적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낙태죄 폐지는 고무적인 일이고, 이후 새로워질 법의 양상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임신과 출산을 여성만의 것으로 치부해왔던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다. 오랜 가부장제의 영향으로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여성의 역할처럼 여겨졌고, 낙태는 부녀에게만 해당하는 죄였다. 여전히 사회 기저에 존재하는 왜곡된 성 가치관이 이번 변화를 통해 바뀌어야 한다. 모체와 태아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는 구도 또한 타파해야 할 요소다. 태아는 모체에 의존적이므로 둘을 완전히 분리해 바라볼 수 없다. 낙태죄를 모체와 태아 중 하나만 살아남는 경쟁으로 의식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여성의 결정권을 보호해야 태아의 미래가 보장된다는 구조로 낙태죄를 이해해야 한다.
 
  결국 임신할 권리보다 더욱 우선시 돼야 할 것은 임신을 선택할 권리다.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과 미래를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생명의 탄생도 축복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국회가 인지한다면 세포보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힘을 실어주는 법을 제정할 것이다. 사회의 도태를 바라는 이들은 낙태죄 폐지를 헌법의 실수라 칭하지만, 세상은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낙태죄 폐지는 여성 인권에 있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하주언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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