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오거리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빨간 유니폼을 입은 ‘빅판(빅이슈 판매원)’이 잡지를 판다. 빅판 차일용 씨는 올해 3월부터 일을 시작했다. 빅이슈는 서점을 통해서 구할 수 없다. 온라인 홈페이지(http://www.bigissue.kr)를 제외하고는 빅판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 빅이슈(The Big Issue)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대중문화잡지로 창간한 지 올해로 십 년째다. 이 잡지는 잡지를 판매하는 판매원 모두 집이 없는 홈리스(Homeless)라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홈리스의 자립을 응원하는 잡지 빅이슈의 영업홍보팀 박효진(34) 씨를 만나보았다.


조금은 ‘인디스러운’ 잡지
  

▲ '빅이슈 코리아' 영업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 박효진 씨
   빅이슈는 20·30대 여성이 주 독자층이다. 그 중에서도 여대생 독자가 많다. 자극적인 내용보다는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고 궁금해할 만한 콘텐츠를 선정한다. 박효진 씨는 다른 잡지에 비해 빅이슈가 '인디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2010년 7월에 첫 호를 발행했다. 지금까지 열두 번의 잡지가 나왔다. 빅이슈는 현재 10개국에서 14개 종류의 잡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한 달에 한 번 내던 월간지였지만 이번 달부터 1일과 15일, 한 달에 두 번 발행하게 됐다. “다른 잡지에 비해 두께가 얇아요. 마음먹고 읽으면 반나절이면 정독하거든요. 무엇보다도 독자들과 빅판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해서 한 달에 두 번 발행하게 됐어요" 


빅이슈는 홈리스(Homeless)가 판매하는 잡지입니다

   박 씨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 홈리스들이 특수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직업적인 문제도 있지만 1997년 IMF를 겪으면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였는데 아버지가 실직하셔서 대학에 합격해도 포기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그 시기에 많은 분들이 거리로 내몰렸어요”
   현재 서울시가 집계한 노숙인의 수는 5천 명. 민간단체에서 집계한 노숙인의 수는 최소 2만 명에서 최대 5만 명이다. “노숙인들은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최소 6개월에서 1년, 길게는 10년 동안 매일 3~4시간 밖에 못자고 생활해요. 노숙을 하다보면 잘 씻지도 못하고 정신적으로 위축돼요. 그러다 보면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틱장애, 자폐증상이 생기기도 해요. 사회와의 단절로 노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노숙을 하면서 사회와 단절 되는 거예요” 빅이슈를 판매하기 시작했다고 해서 바로 자립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립하기 위해서 거쳐야 되는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이 빅판이에요. 빅판 활동은 노숙자의 경제적인 자립에도 도움을 주지만 사회로 돌아가기 위한 훈련을 하기도 해요”
    빅이슈는 ‘홈리스’만이 판매 할 수 있다. 홈리스를 구분하는 기준은 각 나라별로 다르다.
우리나라는 쪽방, 고시원, 해방촌에 사는 사람도 홈리스에 해당한다. 이와는 다르게 노숙인은 집이 없어서 정말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홈리스=노숙인’이라는 공식이 성립돼요. 다른 나라와는 홈리스에 대한 기준이 조금 다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노숙인이 판매하는 잡지가 됐어요. 원래는 홈리스가 판매하는 잡지에요”


빅판이 되기 위해 지켜야 될 세 가지 조건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이 되기 위해서 노숙인이 지켜야 할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로는 노숙인 출신이어야 되고, 두 번째는 스스로 자립 의지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빅이슈가 정한 ‘10가지 행동규칙’을 지켜야 한다.

◆ 빅판 수칙 (빅이슈 판매원 행동수칙)
① 배정받은 장소에서만 판매한다.
② 빅이슈 ID카드와 복장을 착용하고 판매한다.
③ 빅판으로 일하는 동안 미소를 지으며 당당히 고개를 든다.
④ 술을 마시고 빅이슈를 판매하지 않는다.
⑤ 흡연 중 빅이슈를 판매하지 않는다.
⑥ 판매 중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도록 자리 잡는다.
⑦ 우리 이웃인 길거리 노점상과 다투지 않고 협조한다.
⑧ 빅판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는 빅이슈만 판매한다.
⑨ 긴급 상황 시 반드시 빅이슈로 연락한다.
⑩ 하루 수익의 50%는 저축한다.

   이 같은 행동수칙을 만든 이유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 때문이다. “노숙 경험이 있는 분들이어서 아직까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요. 빅이슈를 판매하면서 지금은 인식이 많이 개선 됐어요. 이분들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있지 않으면 ‘그래,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러시는 분들도 계세요. 신용을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행동수칙을 지키자 빅판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져 주변가게에서 쉴 공간을 내어주기도 한다. 빅판이 거리에서 잡지를 판매할 때 가방이나 소지품을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다. 비가 올 때나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곳이 바로 ‘빅샵'이다. 서울시내에 총 여섯 곳의 빅샵이 지정되어 있다. 업종에 상관없이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나 학원, 병원 등 다양한 가게가 참여할 수 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독자가 지불하는 3,000원 중에 1,600원이 노숙자에게 돌아간다. “처음에는 10권을 무료로 드려요. 그런데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거라 쉽지 않아요. 적성에 맞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계세요. 정식 빅판이 되기 위해서는 2주 동안 ‘임시 빅판 기간’을 거쳐야 되요. 빅판 활동을 통해서 자립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기간이에요. 판단기준은 판매량이 아니에요. 얼마나 성실하게 약속된 시간에 약속된 장소에서 판매하는 지를 봐요” 정식 빅판이 된 노숙인에게는 첫 달 고시원비와 잡지 10권을 지원한다. 두 가지 외에 회사에서 빅판에게 지원하는 것은 거의 없다. “첫 달 고시원 비용을 지원하는 이유는 좀 더 안정된 주거지에서 생활하도록 하기 위해서예요. 고시원이 주거지가 되고, 이것을 6개월 동안 유지하게 되면 주민등록이 말소된 분은 복원이 가능해요. 주민등록이 돼 있어야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어요. 임대주택에 입주하기 위한 보증금을 마련하도록 하루 수익의 일정부분은 저축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이라 어려운 점도 많다. 박 씨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적 기업이 사회복지를 위한 기업이라고 생각해요. 이윤추구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사회적 기업도 기업인데 말이죠. 물론 사회적 기업이기 때문에 다른 기업에 비해 사회에 환원하고 나누는 부분이 더 많아요. 하지만 이윤추구를 안 할 수는 없어요. 그러다 보니 수익적으로 어려움도 있고요"
   빅이슈 코리아는 현재 서울시의 보조를 받고 있다. “저희도 아직은 자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은 자립하지 못한 상태지만 영국의 ‘빅이슈’나 일본의 ‘빅이슈 재팬’처럼 보조를 받지 않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에요. 현재 빅이슈는 서울에서만 판매하지만 지방에 계신 분들에 한해서 정기구독도 받을 예정이에요. 독자들이 보다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해요”

빅판은 더 이상 노숙인이 아닙니다
   빅이슈는 전문 기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능기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재능기부자의 연령층은 중학생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박효진 씨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빅돔이라고 빅판을 돕는 일을 하는 도우미에요. 잡지를 파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옆에 서서 말동무 해주는 것만으로도 빅판들에겐 많은 도움이 되요. 주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여성분들이 많이 참여하세요”
박 씨는 마지막으로 빅판을 바라볼 때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 말 것을 부탁했다. “구걸이 아니에요.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게 이분들에게는 중요해요. 빅판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고 이웃이에요. 빅판은 더 이상 노숙인이 아니에요.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보단 이웃으로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웃으로 바라봐 달라는 박효진 말처럼 동정어린 시선보다 관심과 애정이 빅판에게 가장 필요하다. 등하교길 얇은 잡지 한 권을 손에 든 빅판을 본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기분 좋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어떨까. “오늘도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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