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지금껏 누군가의 수많은 선택과 결심을 부정해왔을 한 마디다. 결혼 적령기가 되면 배우자를 찾아 혼인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오랜 전통이었다. 그런데 최근 자발적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이러한 관습을 타파하고자 하는 비혼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라고 말하는 사회를 향해 ‘그래서 결혼을 하지 않겠다’라고 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미(未)혼이 아닌 비(非)혼
  ‘비혼’과 ‘미혼’은 비슷하지만 다른 의미의 단어다. 두 단어 모두 결혼하지 않았다는 뜻을 담고 있지만, 아닐 미(未) 자를 사용하는 미혼은 ‘아직’ 혼인하지 못했음을 지칭한다. 즉, 언젠가는 결혼을 하게 된다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반해 비혼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며, 동시에 결혼할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는 단어다. 미혼주의자는 없지만, 비혼주의자는 있듯이 비혼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삶의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결혼 제도로부터 탈피하고자 비혼을 선택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특히 여성에게서 더 적극적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여성의 비율은 43.5%로, 남성(52.8%)에 비해 낮았다. 국내 여성이 비혼을 결심하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본지는 지난달 6일부터 일주일간 10대 이상 여성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는 10대 5명, 20대 262명, 30대 9명, 40대 이상 25명이 참여했다.

 

71.8% ‘비혼 의사 있다’, 성 불평등과도 연관돼
  먼저, 비혼 의사를 묻는 항목에 전체 응답자 301명 중 71.8%(216명)가 ‘그렇다’고 답했다. 해당 응답자에게 비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묻자, 83.8%(181명)가 ‘출산 및 육아를 원치 않음’, 82.9%(179명)가 ‘직업 및 경력 유지’를 꼽았다. 그다음으로 다수의 선택을 받은 응답은 ‘가부장제 대항’ 71.1%(155명), ‘가사 노동 부담’ 54.6%(118명)이었다. 특히, 216명 중 97.2%(210명)가 비혼을 선택한 계기로 두 개 이상의 응답을 복수 선택했으며, 이는 비혼을 결심하는 데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비혼의 계기로 ‘출산 및 육아’와 ‘경력 유지’의 비중이 높게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일‧가정 양립 지표>의 ‘혼인상태별‧성별 고용동향’에 따르면 유배우 남성 고용률은 81.1%인데 반해, 여성은 53.5%로 남성보다 27.6%p 낮은 고용률을 보였다. 결혼을 이유로 여성의 경력이 단절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같은 통계청 지표에 따르면 여성 경력단절 사유에는 ‘육아’가 38.2%로 가장 높았으며, 그다음으로는 ‘결혼’이 30.7%, ‘임신‧출산’이 22.6%의 비중을 보였다. 이는 여성의 가정 내 성 역할 불평등이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지 설문조사에서 한 응답자는 “현재 여성 정책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외의 다양한 여성 정책이 필요하다”라며 현 제도의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구멍 난 비혼 정책,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본지는 설문조사 응답자에게 비혼의 삶을 산다고 했을 때 가장 우려되는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에 68.1%(205명)가 ‘안전에 대한 걱정’, 53.5%(161명)가 ‘제도 및 혜택으로부터 제외’를 꼽았다. 지난 2017년, SNS에서 퍼져나갔던 해시태그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를 통해 많은 1인 가구 여성이 주거침입 범죄로부터 체감하는 공포를 토로했다. 이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낯선 사람이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 문 열기를 시도하고, 가스 검침원으로 위장해 주거침입을 시도했다는 등 수많은 경험담이 쏟아져 나왔다. 앞선 본지 설문조사에서 한 응답자는 “혼자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불안을 느낀다”라며 안전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혼 가구가 겪는 주거 문제는 제도와 혜택 등에서도 나타난다. 그 예로 주택청약에서 가점점수를 산정하여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청약 가점제가 있다. 이는 부양가족 수가 많고 가입 기간이 길수록 가점이 높아지기 때문에 혼자 사는 청년층에게 불리하다. 또한, 신혼부부의 경우 청약 경쟁 없이 주택을 분양받을 수 있는 특별공급 제도, 연말정산 배우자 공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1인 가구는 이러한 혜택으로부터 소외된다.

여성 연대, 가족의 의미를 바꾸다
  “사회적 압박에 못 이겨 결혼하는 일도 생길 것 같다. 이로 인해 비혼 연대가 무너지는 게 가장 무섭다.” 이 씨(22)는 비혼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많은 이들이 비혼을 다짐하고 있지만, 결혼은 의무이자 4인 가족 형태만이 정상 가족의 범주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아직 비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이에 비혼 여성들은 연대를 통해 집단적인 힘을 끌어내려는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 씨는 지난해 청년허브에서 주최한 ‘청년여성 서울에서 살아내기’ 공론장 기획단으로 활동한 여성이다. 이 씨는 “그동안의 비혼 여성은 개인의 형태였기에 집단적인 힘을 가질 수 없었다. 공론장에선 한마음으로 1인 가구를 위한 주거 정책 마련의 필요성에 관해 이야기 할 수 있었다”며 집단의 결속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유튜브 채널 <혼삶비결> 역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맞서는 여성 연대의 형태 중 하나다. 혼삶비결은 비혼 여성들을 위한 주거 및 재테크 정보를 소개하고, 비혼주의자와 페미니스트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콘텐츠를 제작하게 된 이유에 대해 “한국에서 여성 1인 가구는 가족 단위 및 남성 1인 가구에 밀려 소외돼왔다. 1인 가구 여성을 위한 정보들을 한데 모아 공유한다면 이들의 삶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혼삶비결은 “혼자 살더라도 아프거나 수술할 때 보호자로서 서명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현재 이러한 권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야만 누릴 수 있다”라며 1인 가구를 기본값으로 두는 정책들이 계속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국내에선 비혼 가구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만약 생활동반자법이 마련된다면 혼인이 아닌 동거 관계, 즉 결혼 제도 바깥의 사람들까지 의료와 주거, 사회적 혜택 등 다양한 체제 안에서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다.

  비혼을 선택하는 여성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비혼 가구가 안전한 삶을 보장받고, 제도로부터 소외되지 않게끔 변화를 일궈내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 비혼의 움직임은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성 불평등으로부터 시작됐음을 잊어선 안 된다. 여성이 가족 형태에 구애받지 않고, 그 삶에서 결여를 느끼지 않는 사회가 찾아오게 될까.

김도헌 기자 heengl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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