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조난신호가 너무나 크다. 그것도 먹고 사는 가장 심플한 문제로 인해, 곤궁하기 짝이 없는(strapped) 상태로서의 신호다. 게다가 이는 세상의 현재 20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도 보편적인 변수이다. 각국의 청년들이 이 때문에 다 때려 부수고 난리법석이라는 것은 이제 동네 깡패도 아는 사실이다. 뭐 우리나라는 잠잠하지만.
   ‘700유로 세대’의 출처로 알려져 있는 안나 샘(Anna Sam)의 에세이 「체크아웃: 계산대 앞에서의 인생(Checkout: A Life on the Tills)」은 청춘들이 보내는 조난신호의 내용을 잘 말해준다. 1979년생, 스물여덟의 샘은 슈퍼마켓의 계산대를 로보트처럼 지킨다. 어느덧 8년째다.
   그녀는 하루 평균 289명의 손님을 만나 800여 개의 물건을 스캔하고 ‘감사합니다’를 500번 말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그녀가 받는 질문들은 “화장실 어디죠?”, “(담을) 가방 있나요?”, “(이쪽라인에서) 계산 가능해?”가 전부다. 질문이 참으로도 고차원스럽다. 10개 상품이하만 계산되는 곳에서 무조건 계산 해달라면서 진상부리는 손님들도 상대해야 한다. 
  

▲ 출처 : 네이버영화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조난 프리타>에서도 안나 샘과 유사한 노동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 다큐는 대기업 캐논사 잉크공장의 비정규직 파견직으로 사는 히로키 이와부치의 이야기다(그는 다큐의 감독이기도 하다). 대학 전공을 살려 잡지사에 취업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잉크통에 스티커를 붙이는 시급 1,250엔짜리 인생. 게다가 그 일은 “약간 머리가 좋은 오랑우탄 이상이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수준이다.
   88만원 세대보다 먼저 ‘월 급여 예상액’을 세대명으로 사용한 이탈리아아의 자전적 소설 『천유로 세대』에 나타난 20대 실상도 마찬가지다. “정말 잔인한 현실이다.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처럼 수습에 대해 기대하게 해놓고는, 막상 들어가 보면, 그 누구도 일을 가르쳐주기는커녕 다 쓰면 버리는 일회용 일꾼으로밖에 대접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절망적 표현은 왜 자신이 오랑우탄처럼 대우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경제가 어렵다고 사회가 이들을 당연하게 무시할 수 있느냐라는 하소연이다. 변화된 인간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거다.
대학을 다니면서 생활비마련을 위해 자발적 성매매여성이 된 자신의 이야기를 논픽션으로 그려낸 책이 프랑스와 독일에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이라는 절묘한 부제가 붙은 『퍼킹베를린』은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5년 동안이나 섹스워커로 살게 된 에피소드를 담았다. 제목부터 슬퍼지는 『나의 값비싼 수업료』는 집세를 성(性)으로 납품(?)해야 했던 에피소드를 ‘프랑스의 추악한 부동산 위기’(France's sordid housing crisis)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
이러한 논의들을 단순히 돈이 부족하다는 보릿고개시절의 평가기준으로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학력’이라는 제도화된 수단과 그 학력이 약속한 문화적 성과가 어울리지 않는 데서 나타나는 신세한탄이 일상이 됐다. 짚어야 할 지점이 사회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앞선 비정규직 청년들의 논의가 제도화된 수단과 문화적 목표의 괴리에 관심 있었다면 성매매 논의는 수단과 목표의 괴리까지도 가지 않는다.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고 일단 제도화된 수단이라도 획득하고 보자는 청춘의 절박함만 묻어난다. 이런 와중에 아직도 “우리 때는 더 힘들었어!”라는 ‘꼰대’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참고로 말하지만 그 ‘꼰대’들보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100배는 더 똑똑하다.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