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20대들은 이제 몇 가지 스펙만으로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가 됐다. (물론, 스펙으로 무장해 취업에 성공한들 자유롭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흔히들 900점대의 토익점수, 6개월 이상의 어학연수를 스펙의 필수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만 하기에도 만만치 않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게다가 등록금은 무진장 비싸고 학점관리까지 경쟁적으로 해야 한다. 이거, 기본만 챙기다가도 진이 다 빠질 지경이다. 그런데 남들 다 하는 기본만 했느냐면서 (기업에서) 문전박대 당한다. 다시 도전할 엄두를 내기도 쉽지 않다. 당연히 무기력해질 것이고 이 과정이 만성이 되면 도전할 힘 자체가 소멸한다. 뭐라고?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고? 미안하다. 일곱 번째는 벼랑 끝에서 넘어졌다. 뭐라고? 벼랑 끝에서 떨어져도 다시 바닥을 딛고 일어서라고? 그런데 그 바닥이 갯벌이라면? ‘하드코어인생아’(옥상달빛)라는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자면 20대의 삶이란 “죽지 못해 사는 오늘, 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것”이다. 결국, 청춘은 자포자기하며, 사회는 이를 ‘아주 당연히’ 외면한다. 청춘(靑春)이라는 말뜻대로의 ‘푸른 봄’은 이렇게 봉쇄당한다.
  

▲ 자우림의 노래 '청춘예찬'은 20대를 절망과 무기력한 존재라고 묘사하고 있다
이런 청춘의 현실은 과거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청년세대가 역사를 만들던 시대도 있었는데 말이다. 최남선이 고작 19세 때 강건한 청년세대를 주문하는 「해에게서 소년에게」라는 시를 『소년』 잡지에 발표했을 때부터 이 땅의 청년들은 ‘기백(氣魄)’으로 대변됐다. 4·19 때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였으며, 6·25 때는 조국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 60, 70년대는 조국 근대화의 기수, 80년대는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투쟁의 선봉에 서서, 그리고 90년대는 문화소비의 리더로서 청춘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사회적으로 과시했다.    이처럼 시대마다 ‘결’은 다르지만 청춘은 언제든 ‘예찬’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민태원의 1929년 시 「청춘예찬」은 ‘스테디’한 공감대가 있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이 시가 지금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다는데 어찌 현실감이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왜냐고? 지금 주변에서 확인되는 청춘이 결코 ‘인류를 움직이는 동력’이 아니니까. 자우림이 2005년도에 발표한 노래 ‘청춘예찬’은 20대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 바로 절망과 무기력이다. “젊은 나는 내 젊음을 절망하네(…) 무기력한 내 청춘이여 (…)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별을 늘 나는 갈망한다 (…) 나의 두 눈은 공허를 보네 (…) 무기력한 내 청춘이여 (…) 먼 곳의 별을 늘 나는 갈망한다” 기껏 갈망한다는 별은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다. 이는 공허로 이어지며, 이 과정은 잉여의 진입로가 된다. 잉여라는 말이 청춘과 동시에 연상되는 무서운 시대가 탄생해버렸다. 산울림이 1981년에 발표한 ‘청춘’이란 노래가 있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이 노래에서 청춘은 아쉬워한다. 무엇을? 환상적이고 푸른 ‘현재’가 자꾸만 ‘어제’로 흘러감을 말이다. 다시 말해, 아쉬워할 ‘청춘의 내용’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요즘 친구들에게는 꿈같은 소리지만, 당시의 젊음은 청춘이라는 말 그대로 푸른 봄이었다. 하지만 이제 ‘푸른 봄’은 사라졌다. 아니, 애초에 오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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