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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학원으로 전락한 한국 이공계 대학
2011년 12월 01일 (목) 19:09:10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djang@snu.ac.kr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국내의 우수한 이공계 대학의 생명과학부 교수가 친구인 내게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우리 학부 졸업생들 중에서 같은 학부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 죄다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는 모양이야. 자괴감이 들어.” 나도 안타까운 경험을 이야기했다. 내게 찾아와 이제 이과 공부는 안 하기로 했다며 폭탄선언을 하는 영재고 학생들 때문에 고민 중이라고. 이유를 캐면 그들은 주저없이 “과학이 이젠 너무 지겨워요. 과학 공부에 질렸어요”라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 이과 교육의 파행적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범위가 평범한 이과 진학생들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소위 영재라 불리는 학생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는데 이런 특이 사항이 더욱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우리 도서관을 관찰해보자. 이과 전공 논문이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학생들은 멸종한지 오래다.
  대신 각종 의학(의약) 관련 전문대학원(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생들이 도서관의 주류이다. 물론 각종 고시를 준비하느라 두꺼운 책들을 옆에 끼고 있는 학생들도 많지만, 전문대학원 입시를 위한 문제집도 그에 못지않게 펼쳐져 있다. 입학이나 입사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 비해 순수하게 지식의 세계를 탐험하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도서관의 소수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강의실은 어떤가? 국내 유수 대학의 생물학과 교수들은 최근 입학 성적이 우수한 학부생들이 대거 입학하는 현상에 처음에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금은 표정이 굳어진다. 대다수 학생들의 관심이 순수한 이공 지식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대학원 입시에만 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연과학이나 공학이 정말 좋아서 입학한 학생인데도 대세에 흔들려 똑같은 입시생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장에 있는 교수들의 생생한 증언에 따르면, 우수한 이공계대학들의 생명 및 화학 관련 학부의 학생들 중에서 같은 계열의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자의 세계로 들어서는 비율이 전체 학생의 10% 정도도 안 된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의 근대화 프로젝트에 앞장선 이공계 인력들이 재생산에 명백히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탁월한 과학자의 강의실은 휑한데 입시 학원 유명 강사의 수강권은 새벽부터 줄을 서야 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이공계의 현재 위기다. ‘이공계 기피’는 학생들이 인문사회계열로 몰리기 때문이 아니라 이공계열로 입학한 학생들이 주변에 휩쓸려 의학 관련 전문대학원이나 편입을 준비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진짜 공부가 아닌 입시 공부에 찌든 대학가의 현실은 국가 전체의 지적 자원 차원에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어디서부터 이 복잡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까? 청춘을 다 바쳐가며 이공계 박사학위를 받아도 연봉 3500만원의 계약직 연구원으로 살아가게 만든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을 재고해야 할 것이다. 이공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그들의 선택(‘기피’)을 비난하는 일은 옳지 못한 행동이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도 자문해봐야 한다. ‘우리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에겐 지금 잊혀진 호기심을 되살려 줄 새로운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지금 시급한 것은, ‘이공계 세계 몇 위’, ‘국내 몇 위’라는 공허하고 맹목적인 목표가 아니다. 수학과 과학의 성취도는 세계 제1인데 흥미와 의미를 묻는 물음에는 왜 세계 꼴찌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과학에서 재미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아니, 못하게 만든다면) 이공계 기피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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