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개그콘서트>에서 아줌마보다 더 아줌마 같은 연기로 브라운관을 종횡 무진하며 ‘두분토론’의 여당당 대표와 ‘봉숭아 학당’에서 비너스 회장을 연기한 김영희 씨. 화면에서 보던 아줌마 분장을 지우고 실물로 보니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 예쁘게 손질 받은 손톱까지 두말할 것도 없이 ‘천상 여자’였다. 관심사로 개그와 운전을 꼽은 그녀는 연애는 안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 다른 것보단 개그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바쁜 일정으로 인터뷰 약속을 잡기가 어려워 힘들게 만난 그녀. 여당당이라는 캐릭터에 맞게 국회의사당 앞 한 카페에서 만나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바쁘신 것 같은데 요즘에 뭐하고 지내시나요.

   새 코너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아줌마 연기 전문이라 중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코너를 계획하고 있어요. 그동안 연인을 소재로 한 코너가 신세대의 사랑을 주로 다뤄서 좀 뻔하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잘생긴 남자와 못생긴 여자 커플이거나 예쁜 여자에 못생긴 남자 커플 식으로요. 그래서 다른 연인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이라는 드라마에서 중년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아, 이거다’ 싶었죠. 후배 중에 아저씨를 잘 흉내 내는 친구가 있어 둘이서 준비를 시작했어요. 지금은 이 코너를 감독님께 계속 검사 맡는 중이고 허락받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여당당이나 비너스의 캐릭터도 아줌마였어요. 나이 있는 캐릭터를 고집하시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잖아요. 물론 부족한 부분에 도전해서 성공하는 것도 좋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아줌마 캐릭터가 많으니까 자신 있는 면부터 보여드리고 싶어요. 아줌마 캐릭터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사실 아줌마마다 다 다르게 연기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여성스런 아줌마와 억척스러운 아줌마는 정말 다르죠. 그 차이에 흥미를 느끼기도 해서 더 아줌마 캐릭터에 열중하는 것 같아요. 제 나이에 맞는 연기도 생각해 본 적은 있는데 선배들한테 물어보니 저한테는 아줌마 역할이 맞다고 하셔서요. 저보고 그냥 아줌마 같다고 하세요. 그래서 그러려니 해요.
   이런 아줌마 역할은 처음에 저희 어머니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비너스 회장도 저희 어머니를 본뜬 거예요. 어머니께서 등산을 가시면서 완벽하게 화장을 하신다거나,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친화력 같은 부분이요.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전화하실 때의 말투나 몸짓, 목소리 톤까지 유심히 살펴봐요.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이 생기면 제일 먼저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검사를 맡죠.(웃음)

◆어렸을 때부터 개그 쪽에 욕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아니면 원래는 몰랐는데 나중에 끼를 발견하신 건가요.

   끼는 많이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친구들을 웃기는 걸 좋아했고 소질도 있었어요. 학교 축제나 공연이 있으면 제가 먼저 나서서 주도했어요. 그냥 친구들한테나 동네에서 유명한 정도였죠. 처음부터 개그맨 쪽으로 나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텔레비전에서 개그 프로그램을 보기는 했지만 그다지 관심이 있진 않았거든요. 대학도 순탄하게 잘 갔어요.
   개그맨이 된 계기는 우연찮게 고등학교 후배랑 연락이 됐는데 그 친구가 대학로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친구가 된 걸 보니 저도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제가 그 친구보다 훨씬 웃겼거든요. 어떻게 하게 됐냐고 물어보고 바로 ‘갈갈이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했어요. 시험에 붙고 나서 바로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했죠. 지금 생각하면 ‘더 빨리 알았더라면 일찍 시작했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저는 늦게 시작한 편이거든요. 25살,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더 빨리 이루려고 노력했어요. 26살과 27살에 타 방송국에 개그맨으로 합격했지만 다시 시험을 봐서 스물 여덟이라는 나이에 KBS에 들어오게 됐어요. 이곳저곳 합격은 많이 했는데 솔직히 타 방송국들은 제가 만족을 못했던 곳이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김석현 감독님에 대한 기대가 컸거든요. <개그콘서트>를 꾸려나가는 사람은 도대체 누군지 정말 궁금했어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맘이 있었는데 당시 다른 방송사에 있었을 때라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 있는 안락한 곳을 버리고 나가면 저는 다시 개그맨 지망생이 되는 거잖아요. 두려움이 컸는데 과감히 나왔어요. 그래서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봤는데 다행히 붙어서 지금 이 자리에 온 것 같아요.

▲ 억척스러운 캐릭터와 달리 수줍게 웃는 김영희씨
◆개그맨 준비를 오래하시고 ‘여당당’으로 많은 인기를 얻으셨잖아요. 그전에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제가 힘들었던 기간은 다른 개그맨들이 힘들어 했던 기간보다는 짧은 편이에요. 그래도 제일 힘들었던 때는 이전에 있었던 타 방송사를 그만 뒀을 때였어요. 그곳도 선배님들과 주변 환경은 좋았어요. 하지만 새로운 개그 프로그램이 생겼기에 위험 부담이 있는 신인보다 인지도 있는 사람들을 먼저 출연시키면서 저희는 방송 출연을 못했어요. 뒤에서 박수만 쳤죠. 돈은 받았지만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거예요. 그때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고 갈등이 있었어요. 더 있을 건지, 아니면 과감히 나올 건지에 관해서요. KBS에 붙을지 안 붙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개그맨 지망생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까 무서웠어요. 그래도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 나왔어요. 울면서 이 악물고 나왔죠. 그 다음날부터 저는 다시 개그맨 지망생이 됐어요. 그때 비너스 회장으로 준비는 계속 하고 있었지만 우울증이 심하게 찾아왔었죠.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어요. 다행히 KBS 공채 개그맨 시험에 합격해서 지금 이 자리에 있지만요.

◆2010년도에 많은 상을 받으셨는데 혹시 상 받고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후보자들이 쟁쟁해서 제가 못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제 이름이 유재석 선배님 입에서 호명되는데 너무 떨리고 좋았죠. 하지만 그뿐이에요. 그 날 저녁 ‘두분토론’ 팀끼리 회식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어요. 새 코너를 위한 회의 준비를 계속 했어요. 
   개그맨들은 기복이 많이 심하잖아요. 쉽게 인기를 얻고 쉽게 잊혀지죠. 보통 한번 성공하면 여행도 다녀오고 쉬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저는 제가 성공한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거든요. 그 후로 방송에 안 나온 지 지금까지 다섯 달이에요. 제가 개그맨이란 직업에 대한 욕심이 커서인지 만족하지 않았어요. 매일 같이 회의하고 새 코너 준비하는 게 사실 많이 힘들어요. 이렇게 힘든 직업인지 알았으면 차라리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다른 것을 열심히 할 걸 그랬어요.(웃음)

◆그래도 개그를 하면서 본인이 자부심을 느꼈던 때가 있을 것 같아요.

   보통 후배들하고 회의를 하게 되면 후배들이 대본을 써요. 원칙상 대본은 후배가 써야하는 게 맞아요.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후배가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하지만 저는 제가 주체가 되는 코너에서는 대본을 후배들에게 맡기지 않고 반드시 제가 써요. 새 코너 준비할 때도 선배가 필요한 의상을 말해주면 막내들이 의상실에 가서 찾아와요. 하지만 저는 제 새 코너 의상을 한 번도 남에게 맡겨본 적이 없어요. 일찍 출근해서 의상실에서 직접 옷을 골라요. 그런 점은 제 스스로도 자부심을 많이 느끼고 후배들도 저의 그런 점을 높이 사는 편이에요.

◆인터넷에 김영희 씨를 검색하면 ‘반전미모’가 연관 검색어로 뜨는데요.

   그건 잡지 화보에서 다 수정을 한 거기 때문에……. 그런데 제가 원래 패션 쪽에 관심도 많고 여성스러운 걸 좋아해요. 바지보단 치마가 훨씬 많고요. 볼펜 하나도 예쁘고 귀여운 걸 써요. 패션 잡지도 챙겨보고, 옷을 좋아해서 정말 소중히 여겨요. 특히 신사동 가로수길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마시고 옷 쇼핑 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선배님들이 가로수길 좀 그만 가라고 하실 정도죠.(웃음) 텔레비전에서 보기와는 달리 여성스러운 편이에요. 낯도 가리고, 상처 많이 받아서 눈물도 자주 흘리죠.

◆그런데 개그맨을 하려면 망가져야 하잖아요. 개그우먼들의 애환은 뭔가요.

   개그우먼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많이 느껴요. 무대 위에서는 다른 사람처럼 연기를 하다가도 무대 밑에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남자를 만날 때도 그분은 저희를 브라운관에서만 보셨으니까 무대 위에서와 다른 다소곳한 모습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방송계 종사하시는 분들이 리더십 있고 기가 센 편이에요. 어느 곳에서나 리더십이 발휘가 되기 때문에 연애가 힘들어요. 연애를 할 때 어떤 부분에서는 제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을 하거나 누그러지는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기가 세서 그렇지를 못해요. 지기 싫어하는 게 있죠.
   또 한 가지 애환이 있다면 보통 개그맨들을 보면 웃겨달라고들 많이 하시잖아요. 이러면 정말 부담이 많이 돼요. 그래서 못한다고 하면 ‘아, 재미없네’라고 대놓고 말씀하시거나 안 좋게 보세요. 남자들은 빨리 털어버릴 수 있는데 여자들에게는 계속 상처가 돼요.

◆마지막으로 개그맨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뭐든 포기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 같아요. 포기하지 않는 마음, 추진력, 기발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개그맨이 될 수 있어요. 모든 직업에 해당 되는 부분이긴 하죠, 사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에 편승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하죠. 이건 특히 개그 분야에서 가장 중요해요. 남이 만든 것을 따라해 봤자 이미 한물 지난 게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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