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DVD의 목록을 정리하다 원신연 감독의 <세븐 데이즈>를 다시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2007년은 유괴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다수 제작되었다. <밀양>, <그놈 목소리> 등이 같은 해에 제작된 영화이다. ‘유괴’라는 계급적 범죄의 유형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범죄가 최근의 한국을 설명하는 핵심단어라는 것을 알려준다. 영화적인 면에서 볼 때 유괴는 매력적인 소재이다. 일단 ‘유괴’라는 범죄가 작동되면 장르를 횡단하는 시각적 쾌감이 만들어지고, 새끼를 잃은 인물들은 야성적 분노를 표출한다. ‘유괴’가 반증하는 것은 최근의 인간에게 육체적 활동을 부여할 특정한 장치(소재)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데올로기는 하나로 통합됐고, 사랑은 감동적이지 않으며, 돈은 진부하다. 우정, 의리, 애정은 구전되지 않는 전설처럼 맥없이 도시를 떠돈다.
원신연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세븐 데이즈>도 ‘유괴’라는 범죄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지연(김윤진)은 승률이 99%가 넘는 변호사이다. 그런 그녀의 딸이 운동회 중간에 사라진다. 유괴범은 그녀에게 일심에서 사형이 언도된 강간살인범 정철진(최명수)의 무죄를 일주일 안에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유지연이 친구이자 형사인 김성열(박희순)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진실로 다가갈수록 정철진의 유죄는 확실해 보인다. 그녀는 정철진의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유죄의 증거를 조작하고, 증인을 없애며, 무고한 누군가를 살인범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점에서 <세븐 데이즈>는 전도된 법정드라마이다. 이 역전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딸을 살리기 위해 진범의 무죄를 날조해야 하는 역설적인 변호사 유지연과 딸을 살해한 정철진에게 합당한 처벌이 선고되어야 한다고 믿는 피해자의 엄마 한숙희(김미숙)의 관계는 서로 유사하지만 각기 다른 윤리적 지점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극의 종반 정철진에게 가장 고통스런 사적 보복(화형)을 하기 위해 한숙희가 유지연의 딸을 납치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둘은 아이를 매개로 비윤리적 행위를 시도한 동일한 인간으로 묶인다.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증인의 위독한 상태를 방치했던 유지연과 법치국가에서 금지된 사적 보복을 시도한 한숙희는 법이 규정하는 사회적 정의와 윤리의 테두리를 벗어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다.
<세븐 데이즈>에서 ‘법’은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절대적인 원칙이 아니다. 마치 프로야구 선수들의 타율과 방어율처럼 제시되는 변호사와 검사의 능력은 이미 우리가 어떠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극 중반 아이가 위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집으로 급하게 돌아와 헤겔(Hegel)의 초상이 놓인 서랍장을 뒤지며 약을 찾는 유지연의 모습은 영화가 제시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헤겔은 변증법적인 사유를 통해, 법은 윤리를 지향하고 윤리는 다시 진리를 완성한다고 보았다. 헤겔이 역사의 완성으로 인식한 근대국가는 이러한 법의 원칙 속에서 이성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이용하는 유지연과 새끼의 복수를 위해 유괴를 자행하는 한숙희의 모습은 역사 이후의 인간들을 속물과 동물로 규정한 코제브(Alexandre Kojeve)의 분류를 떠올린다. 헤겔은 죽었다. 이제 속물들은 헤겔의 영정 밑에서 약육강식의 법정을 열고 살육의 축제를 벌인다. 누가 이것을 막을 수 있으며, 비판할 수 있는가? 우린 유지연과 한숙희에게 감정적인 공감을 보내는 속물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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