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출판한 『힌트는 도련님』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총 세 권의 책을 내셨는데요.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한 달로 치면 보름 정도는 글을 써요. 일주일에 4일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그 중 하루는 야구를 하고 있어요. 그동안 소설 연재도 했고, 사진작가인 동생이 찍은 사진에 글을 덧붙인 산문집도 준비했어요. 빠르면 6월, 늦으면 7월쯤에 연재한 소설과 산문집 두 권 모두 나올 것 같아요.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아버지가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셨어요. 집에 책이 굉장히 많았죠. 저는 어릴 적부터 책을 읽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텔레비전을 보기보다는 책을 읽으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글을 쓴다는 일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죠.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지만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은 군대 다녀와서 26살 정도에 들었어요. 그전까지는 그런 생각이 없었어요. 선택받은 자들만이 문학의 세례를 받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소설을 쓰는 데 있어 제가 얼마나 준비됐는지, 무엇을 쏟아낼 수 있는지 몰랐어요. 군대를 제대하고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도 ‘작가가 되겠다’는 다짐보다는 문학공부를 해왔으니까 한 시절 온몸과 마음을 다해 글을 써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해서 쓴 소설로 데뷔를 했어요. (웃음)
등단한 후에는 그냥 작가가 된 게 좋았어요. 처음에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꾸고, 작가가 된 다음에는 좋은 작가가 되는 꿈을 꾸면서,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얼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에요.

◆어릴 적부터 많은 책을 읽으신 것 같은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제가 책을 많이 읽었다는 사실을 대학에 가서 알았어요. 대부분 그렇게 읽으며 지내는 줄 알았죠. 문학을 공부하는 과에 모인 학생들 중에서도 책을 많이 읽은 편에 속하더라고요. 수업을 하는데 아는 작가들이 많았어요. 수업 도중 언급된 책들은 거의 다 읽어본 책들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워낙 집에 책이 많았으니까 공부하기 싫으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요. 키가 커 나가는 만큼 책장을 섭렵해 나가는 재미가 있었죠. 맨 밑 칸의 동화책부터 위 칸의 순수문학책까지. 고등학교 들어갈 때쯤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었어요.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며 마치 어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죠. 그때가 가장 열심히 책을 읽었던 시절이에요. 그래서인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좋아해요. 『죄와 벌』 등의 책을 즐겨 읽었죠.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한국 소설들이에요. 한 권을 지목하기보다는 70년대 작가들의 소설 대부분을 좋아해요. 박범신, 오정희, 김성도 같은 70년대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책이 있었는데 그걸 읽던 밤이 가장 행복했죠.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고 소재를 선정하시나요.

보통 작가들은 평생 가지고 가는 주제의식이 있어요. 쉽게 변하지 않는 것들이죠. 예를 들자면 도스토옙스키가 30여 편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썼지만 그 작품들 대부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이처럼 작가가 어떤 궤도에 올라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주제의식들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해요. 처음 등단할 때는 잘 몰라요. 문학을 몸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그런 고민을 시작하게 돼요. 어떤 작가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무엇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죠.
저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제가 바라보는 세계가 소설의 중심이 되고 소재 선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한국사회는 유교적인 것과 도덕주의가 팽배하면서도 서구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을 잘 받아들인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왠지 그 이면은 정반대일 것 같았어요. 반(反)이성적이고 반도덕적인 모습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죠. 그리고 과연 이 세계는 왜 고통스러운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어요. 고통이라는 것은 주는 사람이 있으면 받는 사람도 있는, ‘관계’에서부터 시작하잖아요. 제가 볼 때 고통을 받는 사람은 힘없는 존재, 어린아이나 늙은 여성이었죠. 이런 사람들을 피해자라고 한다면 가학을 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보게 됐어요. 가학의 주체는 남자들이었죠. 남성들이 갖고 있는 권력, 정치, 경제, 성욕 같은 판타지에 의해 악순환이 생겨나는 것 같았어요. 이런 고리들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설의 주제를 정하고 쓰게 됐어요.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거였죠. 결국 나쁜 놈들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요.

◆기존 작품에 비해서 『힌트는 도련님』이라는 책은 굉장히 온순해졌는데 갑자기 변한 이유가 무엇인지.

극적인 요소들이 좀 줄었죠. 하지만 유해진 건 아니에요. 비유하자면 기존에는 카메라를 바로 앞에서 들고 찍었다면 지금은 한발 짝 뒤로 물러서서 찍는 것 같은 느낌이죠. 『힌트는 도련님』에 들어가 있는 게 훨씬 무서운 것들이에요. 칼을 든 것과 말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다르잖아요. 『힌트는 도련님』에 수록된 단편「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와 같은 작품이 잘 보여주고 있어요. 말이 말을 만들어서 한 개인을 파괴시키는 이야기거든요. 사실 이게 훨씬 더 잔인하고 무서운 거죠. 같은 책에 실린 작품 「쁘이거나 쯔이거나」를 봐도 알 수 있어요. 형제가 외국에서 온 한 여자를 공유하는 이야기인데, 사랑과 결혼에 대한 아무런 개념을 갖지 않고 오로지 경제적인 논리를 가지고 바라보고 있어요. 사회에 이런 가치관들이 통용된다는 사실이 훨씬 무섭게 다가와요. 오히려 초기 작품들의 즉각적이고 즉물적인 측면보다 지금이 더 잔인한 세계를 다루고 있는 거예요.
사실 소설을 그만 쓰려고 한 적도 있었어요. 『조대리의 트렁크』를 출간하고 나서 이제 어떤 방식을 취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개인적인 파국을 다룬 소설을 썼는데 제가 봐도 재미가 없었어요. 제가 했던 것들이 이제는 낡은 느낌도 들었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몰라 그만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출판사에 들어갔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일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깨닫는 지점이 많더라고요. 작가가 가만히 앉아서 글만 쓰려고 하니까 앞이 안 보였던 거죠. 관념적인 것들만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작가에게도 일상적인 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때 몸이 풀렸어요. 많은 욕심을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이런 과정을 겪고 『힌트는 도련님』을 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소설을 쓰고 책을 만드는 기쁨을 다시 알게 해준 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소중하고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안겨준 책이죠.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소설이란. 그리고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에게 소설은 어떤 삶을 견디는 방식이에요. 점점 개인적인 것들이 없어지고 생활들이 미숙해지는 사회에서 소설로 버티는 거죠. 많은 것들을 소설이나 문학이 채워주는 것 같아요. 다들 그러면서 사는 거라고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네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4년 내내 과제만 하고 졸업하는 것 같아요. 제가 대학 때는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읽었던 책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문화가 없어졌죠. 과제와 관련 없는 책은 읽지 않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껴요. 글을 쓰려고 하는 친구들도 똑같아요. 자연스럽게 채워져야 하는 것들인데 다들 노느냐고, 연애하느냐고 바쁜 듯해요. 스스로 독서량을 채워나가려고 하는 친구들은 극히 드물죠. 빨리 글을 쓰고, 좋은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많은데 독서에 대해 잊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들은 제가 하나하나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닌데 말이에요.

▲ 백가흠 작가의 소설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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