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으로 서울을 보다

사람의 주름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짐작할 수 있듯, 간판에서도 그 도시의 여러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최근 간판은 고객에게 상점의 정보를 알릴 뿐 아니라 도시의 이미지와 역사를 표현하는 매체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시내 번화가 다섯 곳(홍대 앞, 강남역, 인사동, 압구정, 종로)의 간판을 통해 2012년 9월의 서울을 들여다보자.

‘젊음의 열정’ 하면 떠오르는 홍대. 홍대 주변의 간판들은 각 매장 분위기에 어울리는 개성을 담고 있다. 독특한 색과 아기자기한 서체, 통통 튀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간판들은 ‘멋의 1번지’로 알려진 홍대의 명성과 어울린다. 간판들이 좁은 지역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어 다소 답답할 수 있지만, 그마저도 홍대 거리만의 스타일이 된다.

강남역에서 교보문고 사이를 잇는 760m 구간에는 30m 간격으로 미디어 폴(국내외 유명 작가의 미디어 아트 작품이나 전시 정보, 그 밖의 광고 상영을 하는 스크린 간판)이 설치돼 있다. 유동인구와 차량이 많은 강남 특유의 도시적 이미지가 느껴진다. 대로변에서 벗어나 골목 안을 걷다 보면 고급 레스토랑이나 체인점 간판 사이사이 작고 소박한 간판들이 엿보인다. 이는 옛것과 새것, 부유함과 소박함이 공존해온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서울의 대표 동네, 인사동의 간판은 외국 기업의 프랜차이즈 상점까지도 모두 한글로 돼 있다. 간판의 수려한 붓글씨 서체는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인사동 길을 걷다 보면 모형간판(문자간판 대신 제품을 매다는 전통 간판양식)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과거에는 글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고객이 알기 쉽도록 상품의 견본을 가게 앞에 매달아두었는데 이것이 현재까지 전승된 것이다. 

고급 브랜드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압구정의 간판에는 이미지를 이용한 판매 전략이 숨어 있다. 파스텔 계열 색이나 금속성의 재질을 이용해 고급스러움을 자아낸다. 또, 한글보다는 외국어를 사용한 간판들이 많다. 이러한 간판의 모습에는 197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고급품 소비 상권이 형성된 압구정의 역사가 담겨 있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종로는 조선시대에는 운종가로 불리던 도성 안 상업 지역이었다. 이러한 종로의 간판에는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서울시의 노력이 숨어 있다. 지난 2004년, 서울시는 ‘종로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시행해 종로 간판의 색채와 글씨체, 크기 등을 정비했다. 거리 미관에 어울리지 않는 큰 간판, 돌출 간판, 무허가 간판이 줄었지만 단조롭고 획일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종로는 ‘좋은 간판 만들기’ 사업과 ‘서울시 좋은 간판 공모전’을 시행해 간판의 디자인 품격을 높였다. 현재 종로는 600년 역사와 현대의 ‘예술 간판’이 공존하는 동네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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