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건축에 담을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준 ‘감응의 건축가’

“건축가로서 내가 한 일은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들의 요구를 공간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을 평생 실천해온 건축가가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감독 정재은)의 주인공이라고 하면 더 빨리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많은 건축가가 도시의 랜드마크를 세우는데 열중하는 사이, ‘건축가가 누구한테 봉사해야 하는지 실천적으로 보여준’(건축가 승효상) 그는 고(故) 정기용(1945~2011)이다.

MBC 예능 프로그램 <느낌표!>에서 진행한 6곳의 기적의 도서관과 학교 건축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받는 계원예술대학은 정기용의 대표적인 공공건축물로 꼽힌다. 그러나 ‘감응의 건축’으로 응축되는 그의 건축철학을 깊이 있게 볼 수 있는 곳은 그가 10여 년간 공공건축의 디딤돌을 쌓은 전북 무주군이다.

무주에서 고인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은 60여 채에 이른다. 그러나 설계 변경된 것이 많아 32채만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아이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청소년 문화의 집부터 죽은 이들이 머무는 납골당까지 그 폭도 넓다. 군 단위의 작은 지역에 삶과 죽음의 공간을 모두 담아내는 일은 쉽지 않다. 그의 건축은 삶과 죽음이, 사람과 자연이, 건축과 주변 환경이, 나와 당신이 서로 교감하고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감시하고 군림하는 면사무소가 아니라, 주민들이 제집처럼 편안히 머무는 공간을 생각하며 개축한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여러 개의 창이 한쪽 벽면을 대신한 이곳은 햇살로 가득하다. 처음엔 넓었다가 점점 좁아지는 계단의 너비는 이채롭고,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달리 보이는 덕유산의 풍광은 인상적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넉넉한 덕유산만으로도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덕유산이 한눈에 보이게 건물의 중심축을 옮기고 마치 액자처럼 창문을 뚫어놓은 이유다.

그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의 공통점 중 하나는 창문을 통한 액자 효과이다. 창은 건물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선이자 동시에 안팎을 연결해주는 매개물이기도 하다. 이를 이용해 정기용은 마치 카메라가 줌인하듯 창문의 프레임이 외부의 풍경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했다.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홀수날은 남탕, 짝수날은 여탕으로 운영되는 목욕탕이다. 목욕 한번 하려면 봉고차 타고 대전까지 나가야 했던 주민들을 위해 센터 안에 목욕탕을 들였다. 그가 주민자치센터의 주인인 주민들을 대상으로 일일이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고 다닌 노력의 결실이다. 목욕탕 옆에는 치과, 내과 등의 보건소가 자리해 주민들의 건강을 살핀다.

고인이 무주에서 진행한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인 프로젝트로 꼽는 것은 공설운동장의 등나무 스탠드다. 저서 『감응의 건축』에서 “모더니즘 건축이 놓친 자연과 인간의 교감과 감성을 내게 일깨워준 작업”이라고 회고했다. 공설운동장 중앙엔 푸른 잔디밭이, 의자가 놓인 사면의 스탠드 위에는 등나무가 빼곡히 자라 있다. 4월 말에서 5월 초에 만개하는 보라색 등꽃은 봄날의 장관이다.

등나무 스탠드의 탄생은 당초 주민들의 불편에서 비롯됐다. 따가운 햇살이 고스란히 얼굴에 내리쬐는 탓에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행사에 늘 주민들의 참석률이 낮았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기용은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에서 스케치를 완성했다. 하늘로 뻗쳐 제멋대로 자라던 등나무가 살 집을, 그는 등나무와 같은 굵기의 철봉으로 엮어 만들었다. ‘건축은 홀연히 사라지고 자연이 오롯이 주인공으로 남은’ 이곳엔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등나무와 연보랏빛의 등꽃이 주민들을 반긴다.

한 명의 건축가의 손끝에서 자연스럽게 태동한 전북 무주군의 공공건축은 한국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완공 이후 현 정부가 주도해온 녹색성장 정책과 관계기관의 관리 소홀로 훼손된 곳이 적지 않다. <말하는 건축가>에서도 나오듯 안성면 주민자치센터 옥상엔 위압적인 태양열 집열판이 설치됐고, 공설운동장 한쪽 면에도 등나무가 낮 동안 햇빛을 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태양열 집열판이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가 공공건축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유는 그가 건축 그 자체보다 건축 안팎에 머물며 공존할 사람과 자연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공건축 설계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직원 월급을 못 줄 때도 많았지만 그의 ‘감응의 건축’은 살아 있는 건축가들에게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남겼다. 현재 어려운 상황에도 정기용의 유지를 받든 김병옥 소장이 ‘기용건축’을 이끌며 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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