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관한 생각』, 대니얼 카너먼

  화장실의 여러 칸 중에서 어떤 칸으로 들어갈까? 중국음식점 메뉴판에 있는 A, B, C 코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우리는 매일 일상 속에서 수없이 많은 판단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얼마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근대사회라는 것이 데카르트적 이성을 전제로 하고 있듯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꽤나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대니얼 카너먼은 우리가 갖고 있는 합리적 판단 능력에 대해서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로 노벨 경제학상까지 받은 대니얼 카너만이 보여주는 인간의 사고체계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결함투성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사고체계는 빠르게 직관적 사고를 하는 ‘시스템1’과 느리지만 합리적 사고를 하는 ‘시스템2’로 구성돼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문제를 놓고 늘 심사숙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의 뇌는 이러한 두 가지 사고체계를 구성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판단한다. 문제는 그나마 믿을만한 ‘시스템2’라는 녀석이 쉽게 지치고 고갈되는 편이다 보니,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일들은 성격 급한 ‘시스템1’이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스템1’이 영 똑똑치 않은 편이어서 작은 심리적 영향에도 쉽게 흔들린다. 이 때문에 우리의 사고 시스템은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내놓을 때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당신에게 9,000원을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기회와 10,000원을 90%의 확률로 얻을 수 있는 기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9,000원을 확실히 얻는 기회를 선호할 것이다. 이번에는 반대로 누군가 당신에게 9,000원을 확실히 잃거나 아니면 10,000원을 90%의 확률로 잃게 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면,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아마도, 이번에는 확실한 손실인 전자를 피해서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두 개의 질문은 각기 다른 방식의 질문이지만 결국 수학적으로는 동일한 이야기이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자면 두 개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시스템1’은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강한 심리적 경향을 갖고 있어, 이처럼 각기 다른 답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대니얼 카너만은 인간의 뇌가 ‘최소 노력의 법칙’ 속에서 진화돼 왔다고 본다. 또한 인간의 사고체계가 심리적 정향들에 의해 쉽게 현혹되는 결함을 갖고 있음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매우 창의적인 연구방법을 통하여 고정관념, 과도한 자신감, 프레임, 직접 경험과 기억 등이 우리의 합리적 판단을 가로막는 심리적 작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이러한 카너만의 일생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5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다 보니 다소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쩌면 결국 자신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500페이지나 읽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꽤나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의 비합리성과 의사결정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는 책이다.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