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필름 심재명 대표

     
▲ 그녀는 다양한 작품이 공존하는 건강한 영화계를 꿈꾼다

  국문학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영화사를 차리기까지, 과정이 어떠했는지?
  저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어요(그녀는 본교 국어국문학과 82학번이다). 활동 중인 감독이나 제작자 중에는 저처럼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분이 의외로 많아요.
  대학 시절, 막연히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작품을 많이 보고, 관련 이론서도 즐겨 읽고, 영화 잡지 기자를 하면서 영화를 가까이하려고 노력했죠.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4개월 다니다가 서울극장에 영화광고 카피라이터로 취직했어요. 월급을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겠다 싶었거든요. 그 일이 본격적으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됐죠. 이후에 영화제작을 배우려고 극동스크린이라는 회사도 다니고 ‘명기획’이라는 영화 홍보 마케팅 회사를 차리기도 했어요. 독립영화 제작을 하던 이은 씨와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레 지금의 ‘명필름’을 설립하게 됐고요.

  명필름에서 그동안 제작한 영화들은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데, 영화를 고르는 특별한 기준이 있다면?

  예술성과 관객의 취향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늘 노력해요. 제작자는 영화에 투자한 돈의 가치만큼 작품을 완성도 있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것이 관객에게 그리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이기도 하죠.
  시나리오를 보면서 흥행성과 작품성을 충족시킬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고 그렇다는 판단이 서면 제작을 결정합니다.
 
  1996년 영화 <코르셋>으로 데뷔해 영화계에서 일해 온 지도 30년 가까이 됐다.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함께 느끼려고 노력해요. 명필름에서 <접속>이라는 영화를 제작했을 때, 제 나이가 30대 중반이었어요. 그때는 주 관객층인 20대하고 나이 차가 10살 정도밖에 안 나서 관객의 취향을 이해하는 게 수월했는데 지금은 30살 가까이 차이가 나니까 아무래도 힘드네요.
  요즘에는 제 나이 때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고민 하고 있어요. ‘낡지 않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관객과 눈높이를 맞추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할 겁니다.

  제작자로서 겪는 고충이 있을 것 같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 전 실시한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 제작자의 직업 만족도 순위가 600위를 넘었다고 들었어요. 모든 일에 각자의 힘든 점이 있겠지만 제작자는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에요.
  영화가 성공해서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호평을 받으면 제작자로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면 마음고생이 심하거든요. 다행히 저는 제 일에 자부심과 애정이 충만한 편이라 스트레스를 덜 받아요. 제가 만든 작품으로 누군가의 삶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면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죠.

  파주에 무료로 운영되는 영화학교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어떤 이유로 그런 계획을 세우게 됐는지?

  영화학교는 2015년 3월에 개강할 예정이에요. 입학전형은 내년 가을에 발표되고요. 총 10명이 무상으로 기숙학교에서 지내며 영화제작을 배울 겁니다. 인원이 적은 만큼 포트폴리오를 중점으로 얼마나 준비된 사람들인지를 보고 선발할 거예요. 학생들이 2년 동안 학교에 다니고 졸업 작품을 내는 동시에 데뷔할 예정이거든요. 문화재단을 설립해서 하는 공익사업이라 무료로 운영하는 거예요.
  지난 18년간 명필름이 거둔 성공은 여러 사람이 함께 노력했기에 가능했죠. 그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사회에 환원하고, 명필름의 신념을 후배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영화학교를 계획하게 됐어요.
 

  <화차>의 변영주 감독, <도둑들>을 제작한 안수현 대표 등 최근 여성 영화인의 활약이 돋보인다. 같은 여성 영화인으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여성 영화인이 만든 영화의 특색이라고 하면,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최근 남성 영화인이 주를 이루는 상업영화와는 다른 점이죠. 그런 점에서 여성 영화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여성영화인들이 지금보다 더 활발히 활동했으면 해요.

  영화계에도 대중성 있는 영화는 천만 관객 영화에 등극하고, 예술성 짙은 영화는 관객에게 소외당하는 이른바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이를 줄이기 위한 대안은?

  관객을 수요자로, 제작사·배급사·극장 측을 공급자라고 한다면, 공급자의 역할이 중요해요. 쉽게 말해 쏠림현상을 제지하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 이를테면, 극장에 예술영화 전용관을 만드는 것이 될 수도 있겠네요. 지금은 흥행 영화가 하나 나오면 영화관에서 대부분 그 영화만 상영하고 있잖아요. 다양한 영화를 고루 상영할 수 있도록 정책이 마련된다면 영화계의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겠죠?
  한국의 예술영화가 국외 영화제에 출품되는 것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분명 의미가 있어요. 전세계적으로 한국영화의 위상을 알리는 거니까요. 누군가는 국외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는 것이 명예를 위해서라고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실, 영화제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예술영화를 지키기 위한 보루 같은 거예요. 상업영화에 대항하여 스스로 예술영화로서의 존재를 대중에게 각인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거죠.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는 청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힘든 세대는 20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펙을 강요하고 실질적인 능력보다 학벌을 우선시하는, 한국 사회 고질병의 피해자니까요. 저는 청춘들이 다른 사람이 정해놓은 잣대나 사회적 인식에 기죽지 말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왜 나는 저 사람보다…….’ 하는 식의 생각은 참 불행하다고 생각해요.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에요. 꽃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 다르죠. 어떤 사람의 꽃은 10대에, 어떤 사람의 꽃은 50대가 되어 필 수도 있어요. 저는 여러분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생을 사는, 그런 20대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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