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대화’ 체험展

  밀려드는 정보를 읽어내기 위해 현대인의 눈은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이와 달리 맨발로 흙의 감촉을 느끼거나 새의 지저귐을 듣는 등 오감을 사용할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어둠 속의 대화’는 이런 현대인에게 안성맞춤인 체험전이다. 1988년 독일에서 시작된 ‘어둠 속의 대화’는 지금까지 전 세계 30개국을 돌며 ‘보이는 것 그 이상’의 반전 있는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그런데 문득 ‘어둠 속의 대화’라는 이름이 눈에 걸린다.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슨 대화를 한다는 걸까.
 

  ‘어둠 속의 대화’를 직접 경험하기 위해 신촌역 3번 출구로 나와 버티고 타워 9층으로 향했다. 대기실 내부는 유리창에 베이지색 블라인드가 걸려 있어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어둠 속 ‘여행’은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론 벽을 짚으며 나아가는 방식으로 90분간 진행된다. 8명이 한 조로 입장하며, 목소리로 길을 안내하는 로드 마스터가 일행과 동행한다.
 

  입구에 들어서기 바로 전까지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 속 ‘오영’이 돼본다는 생각에 철없이 설렜다. 이윽고 두 겹으로 된 커튼을 거두고 체험장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이 온통 캄캄해지자 그제야 어둠 속 여행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실감 났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거라곤 벽의 촉감, 로드 마스터와 동료의 목소리, 흰 지팡이, 그리고 몸의 감각이었다.
 

  여행경로는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느낀 일상의 공간은 매우 낯설었다. 우리는 손으로 와닿는 벽의 촉감과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에 의지해 걸었다. 그동안 시각에 의존했던 습관이 몸에 밴 탓에 잘 쓰지 않던 감각을 이용하는 일은 처음엔 두려웠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5미터 가량의 흔들다리는 50미터처럼 느껴졌고, 횡단보도 앞 낮은 턱은 ‘움찔’하는 기분이 들게 했다. 시장에서 촉감만으로 물건의 정체를 알아맞히기도 쉽지 않았다. 손으로 벽의 존재를 감지하거나 같은 조 동료의 이름을 불러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그나마 커다란 위안이 됐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촉각, 청각, 후각, 그리고 지팡이 끝에 느껴지는 감촉을 이용해 사물과 공간을 인지하는 일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여행이 끝날 무렵, 어둠 속에서 한결 자유로운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둠 속의 대화’가 특별한 이유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여행이기 때문이 아닐까. 여행 내내, 눈으로 보고 그것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자유로운 상상의 기회가 주어졌다. 로드 마스터는 가는 곳마다 그곳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라고 조언했다. 그러려면 눈이 아닌 몸의 감각을 최대한 이용해야 했다. 예를 들면 손으로 나뭇잎과 나무기둥을 만지고 새의 지저귐과 흐르는 물의 소리를 들으며 코로 풀의 향기를 맡고서 그곳이 숲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숲을 상상했고 그래서 우리가 여행에서 본 숲의 모습은 각자 달랐다. 
 

  빛이 있는 곳에서와 달리 어둠 속에서 세상을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지팡이로 주위를 파악하고, 소리와 냄새로 장소를 유추하고, 동료의 발소리와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에 의지해 길을 걸었던 이번 여행처럼 말이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시각만이 사물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착각한다. ‘눈으로만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때론 사물 일부를 본모습이라고 잘못 이해하기도 하고, 시각장애인을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 동정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어둠 속의 대화’는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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