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는 사건의 중심에는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논란’이 있다. 사건은 지난 연말 대통령 선거 당시,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여직원이 인터넷에 특정 후보를 비판하거나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에서부터 시작됐다. 이에 수사당국은 국정원 여직원이 쓴 컴퓨터, 아이디 등을 조사해 60여 개의 해당 댓글을 밝혀냈다. 확대 수사를 통해 국정원 내에서 동일한 댓글 작업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작업을 지시했다는 주장이 일부 시민으로부터 제기됐다.  

이로써 ‘국가정보원의 선거개입 논란’이라는 불이 점화된 것이다. 특정 시민단체와 야당은 대북심리정보국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이행 지침을 마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댓글이 인터넷상에 무차별적으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또한,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경찰의 수사은폐 및 허위발표 의혹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 수사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촉구했다. 여기에 동의하는 시민이 모여 6월 21일부터 전국 각지에 촛불집회가 열렸다.
 
서울 광장에 인 촛불 물결
8월 14일, 서울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4만여 명, 경찰 측 추산 7,500여 명의 인원이 참석해 촛불을 밝혔다. 284개의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당 정청래 의원,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 박원석 정의당 의원 등 정치인도 함께 광장을 메웠다.
 
집회 참석자의 자유발언 중간 중간 시민의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다. 부천의 직장인 기타 동아리 회원 20여 명은 민주주의를 소재로 한 자작곡을 불렀다. 국가정보원 게이트 버스킹(KGB)이라는 팀명으로 모인 시민도 무대에 올라 ‘국가정보원 게이트’에 항의하는 공연을 이어갔다.
 
‘저항’이 ‘문화제’가 되기까지
촛불집회는 1968년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 운동가들에 의해 처음 시행됐다. 한국 사회에서는 기존의 폭력적인 시위를 대신하는 비폭력․평화적인 문화 행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이후 거리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시위나 집회는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저항으로 치부되곤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독재정치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혁명 당시,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국민에게 강경하게 대응했으며, 1970년대에는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을 필두로 수많은 노동자의 극한적 투쟁이 이어졌다. 5.18 민주화 항쟁과 6월 민주항쟁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의 시위ㆍ집회는 어느 때보다 격렬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거리에서는 화염병, 각목으로 무장한 시위대와 최루탄, 곤봉으로 무장한 경찰 사이의 무력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헌정사상 최초로 평화적ㆍ민주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7년, 시위 및 집회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평화의 상징인 촛불이 시위ㆍ집회의 주도권을 잡게 된 것이다. 촛불집회는 2002년 ‘미선이 ․ 효순이 사건’으로 처음 열렸다. 미군 장갑차에 의해 압사한 여중생 미선이 · 효순이를 추모하는 행사에서, 시민은 쌓였던 반미감정과 미국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불만을 촛불로 표출했다. 이후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2009년 용산 철거민 진압 참사 추모 집회 등을 거치며 촛불집회는 ‘저항’이 아닌 온 국민이 목소리를 내는 ‘문화제’로 거듭났다.
 
한국의 촛불집회가 문화제의 성격을 띠게 된 데는 법 조항이 큰 영향을 미쳤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해가 진 이후에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금지하고 있으나, 문화행사 등은 예외로 인정된다.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드는 행위는 문화행사로 용인되지 않다가 2008년, 광우병 파동 반대 집회를 계기로 문화행사의 범주에 속하게 됐다. 이에 따라 촛불집회는 현재의 형태로 굳어졌다.
 
촛불문화제의 한국적 의의
‘대한민국은 촛불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민심을 결집하는 공론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한국의 촛불집회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시위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행해진다. 그 단적인 예로 지난 14일 이집트에서는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이와 달리, 촛불집회는 국민이 바라는 바를 평화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열린 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중고생, 대학생, 일반 회사원, 유모차를 끄는 젊은 주부들까지 다양한 개인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며, 언론과 SNS를 통해 시위가 세계 각지로 전파된다는 점은 한국의 촛불집회만이 지니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집회가 평화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촛불이 지니는 상징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촛불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주위를 밝게 비춘다는 점에서 희생을, 여럿이 모이면 온 세상을 밝게 채운다는 점에서 결집을, 어둠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꿈과 기원을 상징한다. 한자의 어원을 보면, 민주주의(民主主義)에서 ‘주(主)’는 상형문자로 촛대에서 촛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문자의 윗부분‘丶’는 등불이 타는 모양, ‘王’은 촛대의 모양)이다. 따라서 ‘민주(民主)’는 국민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는 국민의 마음을 대변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밝히는 이유다.
 
촛불집회는 시각적 효과가 커 대중의 이목을 끌 수 있고 야간에 이뤄지기 때문에 일을 마친 시민의 참여가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다. 또한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딛고 직접 민주주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권위주의적 권력행사를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을 통해 정치·사회적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정치관이 만들어질 수 있고, 반대 의견에 대한 배타적 공론이 형성돼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평화시위의 또 다른 이름인 촛불집회는 때로 잘못된 대중 선동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기도 하기 때문에 무조건 옹호해서도, 비판해서도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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