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우리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 기점을 거슬러 올라가면 80년대 말 거대 이념의 시대가 몰락해 가던 시기와 대개 맞물려 있다. 이때부터 심심찮게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해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대학에서는 ‘인문 학과의 위기’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수년 간 많은 대학에서 인문 학과를 중심으로 폐지나 통폐합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지방에 소재한 대학은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만 해도 충청권에 있는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독일어문학과, 국문과를 폐지했고 서울 모 대학의 경우도 유럽문화학부와 예술학부를 없앴다. 또한 철학과와 사학과를 통합시키거나 인문, 예술 관련 학과를 통폐합시키기도 했다.

1980년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처음 대학평가제를 시작한 이래, 1990년대에는 당시 교육부가 이를 직접 주관하면서 여기에 중앙 언론사들까지 가세해 이 제도를 지금껏 시행해 오고 있다. 대학 평가의 명분은 대학의 구조조정이지만 현실적으로 학문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현재 많은 대학에서는 자국의 문학(국문학)과 역사(국사학)를 배울 기회조차 없어져 버렸다.

그런데 최근 사회 각 분야에서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인문경영, 인문힐링, 치유의 인문학, 희망의 인문학, 심지어는 기업이 주도하는 아이폰 인문학이란 말들이 현재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도 나서서 4대 국정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을 ‘창조경제'와 연계시켜 ‘인문학 소양이 창조경제의 밑거름’, ‘인문학적 상상력을 확산하는 게 성장동력의 열쇠’라는 말을 하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의 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다른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된다. 그런데 지금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에는 ‘경제’와 ‘성장’이라는 실용적이고 응용적인 용어가 덧대어져 있어 여전히 근대적이고 계몽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아이폰 인문학’은 말할 것도 없이 생산성의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문학이 통섭과 융복합의 차원에서 벗어나 아예 부수 학문으로 전락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감출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문학의 건강한 생태성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대학이 주도하는 기초 인문학에 대한 활성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학문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니며 학문의 자율성과 미래의 인재상은 정부나 기업이 아닌 대학 스스로가 제시해야 한다. 모쪼록 지금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이 대학의 미래 가치와 맞물려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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