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애니메이션 <라바> 맹주공 감독

요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애벌레 두 마리가 나오는 영상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로 40개국에 방영권이 판매되며 국내외로 사랑받고 있는 인기 절정의 애니메이션, <라바>다. <라바>는 최근 <뽀로로>를 잇는 ‘핫 아이콘’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중국 상하이 TV 페스티벌에서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라바>를 탄생시킨 주인공 맹주공 감독을 지난 6일, 논현동 ‘투바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저는 제 그림을 통해서 무언가를 표현하고 사람들이 거기에서 감흥을 얻는, 말하자면 소통이 이뤄지길 원했어요. 서양화는 순수예술이다 보니 많은 사람과 제 생각을 공유하기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 당시 유화로 만화를 즐겨 그리곤 했는데 문득 ‘만화에 움직임과 소리까지 더해진 애니메이션이라면 대중과 작품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많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꿈을 위해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하게 됐죠.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 ‘투바’에 들어오기까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지인 4명과 미술 관련 기획사를 차리자는 창업계획을 세웠어요. 경제적 여유는 없었지만, 회사에 근무하면서 창작을 병행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거든요. 막상 닥쳐보니 현실은 기대와 다르더라고요. 신혼이었는데 집에 생활비를 많이 가져다주지 못해 아내가 적잖이 고생했어요. 어쩔 수 없이 생계를 위해 결혼식 촬영 아르바이트를 해보기도 하고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벤처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창작자가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는 저 자신에게 회의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작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기획, 창작, 외주제작을 혼자 다 하다 보니 고되긴 했지만, 투바의 캐스팅 제의를 받게 된 계기가 됐죠.

 

결국엔 꿈을 이뤄 연출자가 됐네요. 창작에 대한 목마름이 대단했나 봐요

‘그림쟁이’다 보니 작품으로 제 목소리를 표현하자는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동경하기보다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뭘 하든지 창작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했죠. 계속해서 머릿속에 그려보고 꿈을 향한 끈을 놓지 않았어요. 다만 제 예술성을 펼칠만한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뿐이었죠. 하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그만 해야지’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아요. 이런 열망이 쌓여 <라바>라는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됐다고 생각해요.

 

<라바>의 관람연령대가 폭넓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기획할 때 애니메이션이 꼭 어린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도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걸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슬랩스틱 코미디에 도전했죠. <라바>를 보고 즐기는 포인트는 각기 다르겠지만 ‘웃음’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건 같거든요. 지금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라바>를 사랑해주니 뿌듯해요.

 

주요 캐릭터 ‘레드’와 ‘옐로우’의 탄생 비화가 궁금해요

디자인을 구상하다가 색깔명을 가칭으로 정한 게 굳어졌어요. 사실 시즌 1에 레드와 옐로우 말고도 ‘바이올렛’이 더 있었어요. 제가 아들 둘이 있는데 티격태격 노는 모습이 볼 때마다 참 재미있더라고요. 이미 많은 사랑을 받은 <패트와 매트>나 <톰과 제리>를 봐도 앙숙인 두 캐릭터가 나오는 내용이 웃기잖아요. 그래서 레드와 옐로우 콤비가 탄생하게 된 거죠. 그렇다고 어떤 작품을 참고해 만든 건 아니고요.(웃음)

캐릭터를 하수구에 사는 벌레로 설정한 것은 장르가 코미디이기 때문이에요. 레드와 옐로우가 예쁘게 생긴 인형이었다면 망가지는 데 한계가 있었을 거예요.

 

버스나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라바>를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최근 들어 방송을 TV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컴퓨터로도 많이 본다는 점에 주목해 제작했어요. 애초부터 <라바>로 돈을 많이 벌려고 했다기보다 대중이 <라바>를 좋아하게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러려면 우선 실생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도록 해 친근감을 형성해야 했고, 이왕이면 너무 길지 않아야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좋다고 생각했죠.

 

<라바>가 무언극인 것도 짧은 시간 내에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제가 의도한 건 재미를 높이기 위해서예요. TV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의 ‘몸으로 말해요’라는 코너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될 거예요. 말로 한마디 하면 될 것을 행동으로 표현하니 웃음을 유발하잖아요. 만약 <라바>에 대사가 있었다면 지금만큼 웃긴 에피소드가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이와 더불어 캐릭터의 디테일한 연기에서 나오는 공감능력과 단순하면서도 내용 전달이 쉽다는 점도 무언극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애착이 가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시즌 2의 <하루살이>라는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아요. 옐로우는 핑크가 있는데 레드는 여자 친구가 없어요. 그래서 레드에게 여자친구로 ‘하루살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줬어요. 레드가 하루살이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하루밖에 사랑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에요. 이를 통해 시청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하루 만에 죽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경험을 한 셈이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자신을 평하자면?

저는 애니메이션에 대한 개념을 따로 규정짓지 않는 편이에요. 음악, 문학, 영화, 애니메이션을 구분 짓는 기준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다만 중요한 것은 감독이 자신의 목소리를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담아내는지 하는 거죠. 저는 대중을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고 대중은 제 작품 속 캐릭터의 여러 감정을 그대로 느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라바>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라바>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라바>의 주제가 행복이거든요. 이건 제 인생의 신념이기도 하죠. 전 자신의 행복을 놓치면서 누구를 위해 희생하거나 양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전 앞으로도 연출가로 남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재능은 있지만, 여건이 안 돼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창작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도록 누군가를 돕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제 행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