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중국 근현대 무술의 살아있는 전설, 엽문

‘일대종사(一代宗師)’란 각 무술 문파에서 한 시대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스승을 일컫는 말이다. 무술실력과 더불어 사회적 공헌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고수에게 붙여지는 명예로운 칭호로, 무림계 전체의 존경을 받는다. 중국 무림 역사상 일대종사의 칭호를 받은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홍가권의 황비홍, 미종권의 곽원갑, 그리고 영화 <일대종사>의 주인공이자 영춘권을 널리 알린 엽문(본명 엽계문)이 있다.

  무술 철학을 겨루는 고수들의 결투

“쿵후란 단 두 글자로 요약된다. 수평과 수직, 쓰러진 자는 수평, 서 있는 자는 수직이다.”

<일대종사>의 초반부와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 말은 엽문의 일생을 가장 잘 보여준다. 엽문은 진화순(1836-1909)의 마지막 제자이자 쿵후를 서방에 알린 이소룡(1940-1973)의 스승이다. 그는 중국 광동(廣東) 불산(佛山)의 부유한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 진화순으로부터 영춘권(중국 남파 무술의 하나)을 배웠다. 이 당시는 마지막 왕조인 청이 몰락해 매우 어지러웠지만, 중국 무술의 황금시대이기도 했다. 엽문은 불산의 무인들과 무술을 겨루며 영춘권 연마에 전념한다.

엽문은 1930년대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 남방무술의 새로운 실력자로 급부상한다. 이때 팔괘장의 고수 궁이가 등장해 엽문과 맞먹는 커다란 힘의 축을 형성한다. 궁이의 아버지 궁보삼은 형의권과 팔괘장을 완성한 북방 권법의 고수다. 궁보삼이 엽문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지만, 승부욕 강한 궁이는 일대종사의 자리를 놓고 엽문과 대결을 한다. 궁이는 감독 왕가위가 창조해낸 허구 인물이지만, 엽문과의 무술적 교감이나 무술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은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대련 중, “쿵후란 정밀함의 대결이니 기물 하나라도 부수면 진 걸로 하자”라는 엽문의 대사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으니 감춰진 수를 조심해라”라는 궁이의 대사에는 무술을 예술로 여겼던 그 시대 무인의 세계관이 반영돼 있기도 하다.

궁핍한 현실에도 무술인의 정신을 잃지 않던 그는 1938년, 불산이 일본군에 함락되자, 그곳을 떠난다. 1949년 가족과 떨어져 홀로 홍콩으로 건너간 엽문은 영춘권 도장을 연다. 이를 시작으로 엽문은 영춘권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는데, 그의 제자 중 한 명이 이소룡이다.

이소룡은 엽문에게서 배운 무술인의 철학을 영화에 옮겨왔다. 이소룡의 실전무예 실력은 무술 영화를 탄생시켰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 심지어 서양인까지 중국 무술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소룡의 시대와 함께 홍콩 영화도 급격하게 성장했다. 1980년대 홍콩 느와르, 1990년대 <황비홍>까지 새로운 스타일의 무술 영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스승의 무예를 계승한 이소룡 덕분에 엽문의 철학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엽문이 대중에게 ‘일대종사’로 기억되고 있는 이유다.

 

무림액션의 부활을 위하여……

엽문을 소재로 한 영화로는 엽위신 감독의 <엽문>(2009)이 유명하다. 엽문이 1930년대 무술가의 메카였던 불산에서 일본의 침략에 저항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엽문>이 엽문의 영웅성을 강조했다면, <일대종사>는 1930-1950년대를 살았던 중국 무술인의 삶과 그들의 무술관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다. 영화에는 엽문 외에도 팔극권의 대부 일선천, 팔괘장의 고수 궁보삼 등 실존인물이 등장한다.

중국 근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스러져간 고수들의 허무와 고독을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왕가위 감독은 배우에게 ‘진짜 무술’을 구사하길 권했다고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감독의 뜻에 따라 배우들은 4년간 쉼 없이 무술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양조위는 영춘권을, 장쯔이는 팔괘장을, 장첸은 팔극권 동작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됐다. 팔극권의 마스터 왕식권의 지도를 받은 장첸은 이에 재능을 보여 2012년 중국 팔극권 겨루기 대회에서 우승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또, <매트릭스>, <와호장룡>의 무술감독 원화평을 비롯해 실제 엽문의 제자이자 이소룡의 동기인 던컨 량과 그의 아들 대런 량, 이연걸의 스승이자 팔극권의 마스터 왕식권 등을 제작 과정에 투입했다. 배우와 감독의 이러한 노력이 더해져 영화 <일대종사>는 중국 근현대의 무술을 아름답게 묘사한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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