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프로그램 <짝>이 여성 출연자 자살 사건으로 폐지 수순을 밟았다. 자살 소식이 알려진 직후, 언론사와 누리꾼은 프로그램 존폐여부를 두고 논쟁하기 바빴다. 일반인 리얼리티의 한계를 지적하는 기사는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사망자에게 애도를 표하거나 자살 자체에 주목해 쓴 글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이 그만큼 일반적인 일이 돼 버린 것일까.

유명 연예인부터 정치인 그리고 일반인까지. 누군가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자살 소식을 접할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한편, 점점 ‘죽음’이라는 비극에 무감각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생을 포기할 만큼 고통스러웠던 한 사람의 선택이 이렇게 살아있는 다른 누군가에겐 늘 일어나는 사고쯤으로 비쳐진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타인의 죽음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를 비판하기 이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살을 결심한 당사자에게도 생을 포기한 데 대한 책임이 있다는 점이다.

유서를 통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라고 고백하는 그들만큼은 아니겠지만, 많은 이들이 힘든 일상을 나름대로 견뎌내며 살고 있다. 취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기자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일상에서 지친 마음이 들 때 마다, 기자는 시시포스 신화를 떠올린다.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외도를 밀고한 죄로 죽음을 선고받지만, 이를 거부한다. 결국, 신들에게 미움을 산 그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게 된다. 바위는 꼭대기에 다다르면 반대편으로 떨어지므로 그 일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보일 수 있다. 도무지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우리의 일상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평생 동안 그 일을 반복한다.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하는 것이 신에게 굴복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시시포스가 고통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는 잠깐의 시간, 즉 행복을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생각을 바꾸는 순간, 누군가에겐 무의미한 일도 행복으로 변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는 반복되는 일상을 형벌이라고 여기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들의 선택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순간의 선택으로 행복을 잃은 그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생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온다면, 그건 행복이 찾아올 순간을 예고하는 것이다. 산꼭대기까지 짐을 짊어지고 오르는 중에는 이를 알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자살은 자신에게 주어질 행복을 포기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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