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2013) 上

영화는 개츠비의 대저택에서 열리는 파티 장면으로 시작된다. 파티에서는 사회각층 저명인사들의 뒷거래가 오고 간다. 여기에 인맥을 넓히고자 찾아온 손님까지 더해져, 그의 집 곳곳은 유흥과 환락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 개츠비는 이들 상류층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한편, 출세를 위해 동부로 이사 온 닉은 갑부 개츠비의 바로 옆집에 산다. 그는 채권 유통을 돕는 딜러로, 부자들을 동경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어느 날, 닉이 개츠비의 파티에 초대받으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개츠비의 정체와, 상류층의 생활이 닉의 시각을 통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영화는 개츠비를 한 여자, 데이지에게 순정을 바치는 남자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둘 사이에는 안타까운 이별의 사연이 있다. 전쟁 이전, 개츠비와 데이지는 순수한 사랑을 나눴다. 그러나 상류층이었던 데이지는 가난하고 별 볼일 없는 가정환경 출신의 개츠비를 버리고 톰과 결혼한다. 개츠비는 그녀를 되찾고자 하는 욕망으로 돈을 모아 부자가 된다. 그의 집이 데이지가 사는 이스트 에그의 강 건너 편인 웨스트 에그에 위치해 있는 것,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여는 것은 모두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데이지의 사촌오빠인 닉의 주선으로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재회한다. 닉의 집에서 그들은 여러 번에 걸쳐 둘만의 시간을 갖는다. 순수했던 과거로 돌아갔기에 그들의 은밀한 재회는 짜릿한 느낌을 준다.

 

영화에는 뉴욕 근교의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전통 부촌’ 이스트 에그와 ‘신흥 부촌’ 웨스트 에그가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웨스트 에그는 개츠비와 같은 신흥부자들의 거주지다. 여러 세대를 거쳐 부를 이어온 전통 부자들이 모여 있는 이스트 에그와 구별된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각각을 대표하는 개츠비와 톰은 다를 바가 없다. 개츠비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밀주업 등 불법적인 방법을 이용해 부를 얻었으며, 데이지의 남편 톰은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바람을 피운다. 이들은 모두 1차 세계대전 후 허무주의ㆍ쾌락주의에 빠진 상류층일 뿐이다.

 

개츠비와 행복한 만남을 이어오던 데이지는 결국 또다시 옛사랑을 배신하는 선택을 하고 만다. 개츠비에게 흔들리는 그녀를 보며, 순수한 사랑의 결실을 기대했던 관객에게 그녀의 물질주의와 야망은 실망을 안긴다.

 

이러한 데이지의 속내는 개츠비와의 계속된 만남에서 입고 나온 의상을 통해 영화 중간중간 암시된다. 데이지의 진한 화장과 ‘보브 헤어’라고 불리는 단발머리가 그녀의 자신감을 보여준다. 또한, 그녀가 즐겨 입고 나오는 비단 드레스는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고 소매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즉, 노출 대신 선이나 옷감으로 여성의 몸매가 드러나도록 디자인 돼 있는데, 우리는 여기에서 데이지라는 인물의 상징성을 파악할 수 있다.

 

그녀는 주체적이고 자유를 추구하는 그 시대 젊은 여성을 대표한다. 남성 중심이었던 이전 시대에, 여성은 여성성을 상징하는 ‘잘록한 허리’를 만들기 위해 고통을 참고 코르셋을 착용했다. 반면, 영화의 배경이 된 1920년대는 미국에 현대화가 한창 진행되던 무렵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적으로 혁명, 탈보수 등 새로움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일었다. 그동안 핍박받던 많은 여성이 일자리와 함께 투표권을 얻게 됐으며, 이들은 미에 대한 관심을 표출해 새로이 얻게 된 자유를 즐기고자 했다.

 

그리고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음은 코르셋 대신 지퍼와 버튼을 사용한 의상으로 영화 속에서 구현된다. 여성의 의상에서 코르셋이 사라진 것은 여성 스스로 자유 의지를 표출하기 시작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를 재현하는 공간과 패션, 인물의 설정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욕망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싶다. 결말에 이르러, 데이지의 배신으로 개츠비는 죽음을 맞게 된다. 이 비극을 통해 우리는 개츠비의 아메리칸 드림이 실패로 끝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속 개츠비와 마주한 현대인은 자신이 가진 욕망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제목에 나타난 개츠비의 ‘위대함’은 이상세계를 향한 인간의 환상과 물질주의의 좌절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사랑도 실은 허황된 세계를 향한 집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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