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사 깊이 읽기』(2013)-주진오 외 5명/푸른역사

 

오랫동안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 미래에 대한 대비책으로 이용해왔다. 그러나 대부분 역사는 강자의 일생에 편향돼 있었다. 사회적 약자가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의 논리와 편견에 따라 역사 속에서 약자는 배제됐다. 그중 여성은 억압과 차별 속에 고통받는 존재로만 서술됐다.
우리나라 학계에서 여성사는 여전히 주요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탐구하는 학자가 부족할뿐더러 기존의 남성 중심 연구가 이미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한 6명의 교수가 모였다. 이들은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의 진정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다. ‘말 없는 여성들에게 말 걸기’라는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역사 속의 약자인 ‘그녀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담아냈다.
열두 개의 주제로 이뤄진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가정 내 여성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먼저 선사시대에 여성은 출산과 양육이라는 생리적 특성과 관련해 숭배의 대상이었다. 가정 내 집단의 안정을 만드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던 제사도 여성이 독단적으로 책임졌다. 이 때문에 여성은 부족 내의 주도권을 가져 모계 사회를 형성하기도 했다.
 
정체성이 확고했던 고려시대
고려 시대에는 개인주의적 사상이 짙은 불교가 성행해 혼인을 강조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혼인하지 않는 자도 있었으며 만혼의 사례도 많았다. 혼인 풍속이 주로 처가살이였기 때문에 여성은 시댁에 소속되지 않은 주체성을 가진 존재였다. 또, 조선 시대와 달리 여성의 이름이 호적에 온전히 등재됐으며 자녀들이 돌아가며 제사를 모시는 윤행(輪行)의 풍속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혼인과 제사에 대해 남녀가 차별 없이 권리와 의무를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 여인 염경애는 남편의 학업을 위해 발 벗고 나서서 적극적인 경제활동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녀를 비롯한 고려의 여인은 살림의 주체를 자처해 가정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나아가 기존 가부장제와 달리 ‘아내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가부장 상을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여성만의 특색이 드러난 조선시대
조선 시대의 표상이었던 현모양처(賢母良妻)는 일본의 양처현모(良妻賢母)와 달리 훌륭한 아내(良妻)보다 좋은 부모(賢母)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시됐다. 이 시대에는 여성의 자질이 가족, 나아가 사회를 바람직하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학자로 알려진 이사주당은 높은 학식과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태교신기』를 썼다. 태교에 관해 다룬 이 책은 ‘아이를 낳을 때 아파도 몸을 비틀지 말고 엎드려 누우면 해산하기 쉽다’ 등 구체적인 체험이 서술돼 실질적으로 여성에게 도움이 된다고 평가받았다.
 
본격적으로 사회에 뛰어든 여성
현대와 가까워질수록 여성은 가정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규제와 억압이 있었으나 여성의 지적 욕구가 확대되면서 많은 지식인이 등장했다. 임윤지당, 강정일당 등은 성리학에 깊은 조예를 보였으며 남성과 학문적 교류를 나눴다.
구한말 등장한 신여성은 계몽과 참정권 운동에 남성 못지않은 적극적 참여를 보였다. 여성단체에 의무적으로 참여해 한글 보편화, 근대화에 힘썼고 다양한 직업을 가져 남성과 동등한 사회 역할을 하고자 했다. 당시 여성단체에서 내건 ‘여성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구호는 그녀들이 얼마나 민족 발전에 열의를 가졌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우리는 흔히 여성 위인을 언급할 때 유관순, 신사임당 등 소수의 인물밖에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처럼 다양한 여성이 우리가 아는 모든 역사 속에 함께 있었다. 역사 속의 ‘그녀들’은 우리에게 지체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성 우월적 인식이 팽배한 19세기, 독립협회는 자유와 평등을 강조한 동학사상에 기반해 남녀동등권을 주장했다. 이로써 여성 교육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여성이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변화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역사를 통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배웠듯, 과거의 여성도 현재의 우리에게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진짜’ 여성의 이야기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만 ‘오해와 편견’으로 물든 인식을 바꿀 수 있다.
 
강연희 수습기자 yhadella@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