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둘러싼 논쟁은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교육 문제가 전혀 교육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떤 분야보다도 종속적이고 정치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게 오늘날 교육계의 민낯이다. 반복되는 갈등에 학생과 학부모의 피로도만 높아져 간다.
 

 자율형사립고가 이슈다. 도입 5년 만에 존폐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한 진보교육감들은 자사고를 ‘일반고 슬럼화’의 주원인으로 꼽고 폐지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자사고 구성원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은 전체 자사고 49곳 중 25곳이 위치한 서울이다. 자사고 학부모들은 보신각 앞에서 2,00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를 두 차례나 열었다. 학부모들과 조희연 서울교육감과의 만남도 이뤄졌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조 교육감은 여전히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선 자사고를 없애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갈등이 지속되면서 자사고를 두고 진보와 보수 세력이 결집하고 있는 모습이다. 진보성향 단체는 20일부터 서울시교육청에서 자사고 폐지를 촉구하는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자사고 존폐 논란은 결국 교육의 평등성과 다양성 중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다. 두 가치 모두 우선순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중요하지만, 개별 정책은 특정 가치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된 자사고에 대한 입장이 분명하게 엇갈리는 이유는 특정 가치를 중심으로 한 주관적 평가가 이곳저곳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사고는 건학이념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다.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하고, 사학의 특성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고교서열화를 조장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일반고의 3배가 넘는 등록금과 내신성적 제한을 둔 선발전형(평준화 지역은 2015학년도부터 폐지)은 돈 많고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공부 못 하는 학생을 배제하는 학교는 분명 비정상적이다.
 

 문제는 자사고 제도의 책임을 개별 학교에 물을 순 없다는 것이다. 제도를 도입한 주체는 교육 당국이다. 자사고는 교육부와 담당 교육청의 승인을 받아 새로운 운영방식을 도입했을 뿐이다. 물론 자사고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에 관한 책임은 개별 학교에 있지만, 자사고라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더군다나 교육감에겐 자사고 제도를 폐지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추가 및 재지정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도 자체를 무력화시킬 순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자사고 폐지는 교육감의 권한 남용이고, 자사고 구성원에 대한 폭력이다. 그 어떤 목적을 위해서라도 잘못된 수단이 정당화될 순 없다.
 

 자사고가 사라진다고 일반고가 살아날지도 의문이다. 자사고 폐지론자들이 가장 큰 문제로 꼽는 점은 자사고의 우수학생 독점이다. 자사고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몰리면서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한 학생이 많은 일반고의 면학 분위기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학업수준과 성취동기가 높은 학생이 많으면 그렇지 않은 학생도 영향을 받아 학업수준과 성취동기가 높아질 수 있다는 교육사회학 연구 결과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전체 고교에서 자사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2%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이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자사고의 우수학생이 여러 일반고로 흩어지게 되면 학교별 배정인원은 매우 적을 수밖에 없어, 불균형적인 성적분포 문제를 해소하긴 어렵다.
 

 자사고 문제를 전체 공교육 차원으로 확대하면 논란만 커질 뿐이다. 현실적으로 교육부가 자사고 폐지를 선언하거나 모든 자사고가 스스로 일반고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자사고 폐지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자사고의 본래 취지를 살리면서 일반고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방안을 찾는 게 합리적이다. 문제가 생겨서 폐지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교육정책은 아마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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