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9일. 여느 때와 다름없이 힘겨운 야자 시간을 버티고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웬 털 뭉치를 안고 있었다. 늘 개를 키우고 싶어 하던 언니는 가족과 상의 없이 덜컥 포메라니안 강아지를 사왔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강아지 ‘호동이’와 가족이 됐다.
 

 처음에 부모님은 애견 가게에 다시 데려다 주라며 개 키우는 것을 반대하셨다. 사전에 아무런 상의도 없이 갑작스럽게 언니가 강아지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의 간절한 설득에 못 이겨 허락하셨다. 부모님이 호동이와 함께하는 것을 허락하신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부모님의 다툼’이었다.
호동이가 집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와 엄마는 의견 차이로 다투셨다. 평소에는 금방 풀리던 다툼이 오래가면서 집 분위기는 냉랭해져만 갔다. 그런데 부모님이 퇴근하실 때마다 다가와서 애교를 떠는 호동이 덕에 자연스럽게 차가웠던 집안 분위기가 풀렸다.
 

 호동이와 함께한 시간은 이제 4년이 조금 넘었다. 내게는 호동이가 없었던 지난 18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호동이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
 

 호동이의 이갈이, 수술, 병치레 등을 겪으면서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혹시라도 많이 아플까 봐, 마취 후에 눈을 못 뜰까 봐 전전긍긍하던 때에 비하면 호동이는 아주 건강해졌다. 집에 들어서서 현관문을 열자마자 호동이가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울고 있을 땐 눈물을 핥아주고 기쁠 땐 껴안으면서 우리는 더 돈독해졌다.
 

 동그란 눈에 뾰족 솟은 작은 귀와 올리브 같은 코 그리고 작은 얼굴. 서울에서 가족과 떨어져 자취하면서 늘 호동이 소식이 궁금하고 그립다. 곁에 있을 때는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날들이 떨어져 있으니 아련한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됐다. 호동이는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줬다. 서로 정을 나눌 존재가 더 생긴다는 것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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