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피맛(避馬)골

얼마 전 아는 교수님에게서 피맛골이 몇 년 전에 비해 많이 변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교수님은 친구들과 자주 가던 맛집이 사라져 안타깝다고 하셨다. 피맛골의 현재 모습을 통해 과거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직접 종로를 찾았다.

탑골공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니 좁은 골목사이로 ‘피맛골 주점촌’이라 적힌 간판이 보였다. 2-3명이 들어가면 딱 맞을 정도의 좁은 폭을 지닌 골목 안에는 작은 음식점들이 즐비했다. 대부분 해장국, 생선구이, 빈대떡 등 서민음식을 파는 가게였다. 그러나 문이 닫힌 상태였고 거니는 사람도 별로 없어 전체적으로 조용했다.

옛 명성이 빛바랜 피맛골을 뒤로하고 대로변으로 나와 이번엔 종로1가를 향해 걸었다. 동대문 방향 좌측 대로변으로 대형빌딩들이 여럿 서 있었다. GS건설을 비롯한 업계 10위권 내 대형건설사들이 모이면서 형성된 ‘컨스트럭션(건설) 밸리’였다. 그리고 뜻밖에도 그곳에서 ‘피맛골’ 간판과 또 한 번 마주했다. 바로 지난 2008년 9월 도시환경정비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재개발된 피맛골이다.

10여 년 전까지도 피맛골은 종로 1가에서 6가까지 이어진 긴 골목이었다. 이후 2008년 재개발을 거쳐 현재는 종로 1가 교보문고 뒤편에서부터 3가 사이로 일부가 남아있다.

현재 피맛골은 대중에게 맛집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원래는 ‘말을 피하기 위한’ 골목이었다. 피맛골이 위치한 종로(운종가)는 궁궐과 가까워 많은 관리와 육의전의 상인들이 오고 가던 곳이었다. 당시, 신분의 엄격한 구분으로 인해 일반 서민은 말을 탄 고관이 행차할 때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없었다. 행차가 끝날 때까지 길바닥에 엎드려 있어야 했는데, 생업에 바쁜 사람들에게 이 행차는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피맛골을 통해 예식을 피했다. 피맛골의 폭이 좁은 이유는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 골목이 변화를 맞게 된 건 서울시 도시ㆍ건축공동위원회가 청진구역 제1지구와 제2, 3지구, 제12-16지구 정비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자신들의 터전이 ‘디자인 서울’이라는 명목아래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상인들은 단체로 반발했다. 재개발 중이던 2009년에는 조선시대 관영 상설점포인 시전행랑 터가 발굴되기도 했다. 그 결과 현재 피맛골은 수복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교수님이 말씀하신 옛 모습은 결국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누군가에겐 시간여행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피맛골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자체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