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그날들> 모두의 그 날을 떠올리기엔 역부족/노란색/손민지 기자 탄탄한 스토리, 그래서 익숙한/노란색/김태이 수습기자

  

현재 유명 공연예매 사이트에서 쟁쟁한 라이선스 작품들에 뒤지지 않고 월간 예매순위 3위를 기록하고 있는 창작 뮤지컬이 있다. 바로 뮤지컬 <그날들>이다. 모든 노래가 故 김광석의 곡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언론으로부터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탄탄한 스토리로 구성돼 있으며 주크박스 뮤지컬의 새 장을 열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들 말대로 <그날들>의 플롯은 탄탄하다. 그러나 탄탄함은 곧 안정감이고 안정감의 또 다른 말은 익숙함인지도 모른다. 청와대 경호실의 막강한 라이벌이자 친구인 ‘무영’과 ‘정학’ 사이의 우정과 오해 그리고 이로부터 생긴 무영을 향한 정학의 배신감, 세월이 흘러 드러나는 진실과 이를 통한 화해는 그렇게 신선한 구조는 아니다. 극에서 ‘오해’의 설정은 극적인 화해의 복선이며, 현재와 과거의 장면 교차에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관객에겐 더욱 그렇다.

군사 독재의 잔재가 남아있는 1990년대 초를 배경으로 삼은 점, ‘청와대 경호원 이야기’라는 특수한 배경과 캐릭터에서 그나마 ‘창작’ 뮤지컬로서의 신선함을 찾아볼 수 있었다. 모든 서사는 한정된 플롯 안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한참 각광받고 있는 작품에서 만난 익숙한 구조에 대한 실망감은 짙게 남는다.

연출을 맡은 장유정 감독은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그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대중은 그의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았지만, 정작 김광석이 힘들 때 대중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녀는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경호원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러한 창작배경 때문인지 스토리가 가사를 좇아가는 느낌이다. <그날들>에는 김광석의 감성 대신, 그가 노래한 이야기만큼이나 많은 이야기가 있다. 장면의 복잡한 변화를 따라가느라 어느 한 감정에 오롯이 집중하기 어렵다. 한 이야기를 통해 ‘그녀’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사랑, 부녀의 갈등, 친구 사이의 화해라는 큼지막한 주제를 모두 다루고 있다 보니 어느 하나를 전달하지 못하는 작품이 돼버렸다.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가지의 시대 배경, 인물 간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그날들>이 강력하게 피력하는 것은 ‘공감’이다. 그러나 김광석의 노래가 생소한 젊은 세대에겐 그저 사랑과 우정에 대한 작품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작품이 김광석과 시대를 같이 한 연령층과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감대가 될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 다만, 명곡의 쓰임이 스토리 형성에 도움을 주는 데 그쳐 아쉬울 뿐이다.

김광석의 곡을 활용한 또 다른 작품인 연극 <청춘예찬>에는 그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극의 마지막 배경음악으로 등장한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라는 가사에는 극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함축돼 있다. 이에 비해 무영이 그녀와 산에서 이별하며 부르는 <사랑했지만>이나 무영에 대한 오해를 푼 정학이 부르는 <그날들>은 스토리와의 연관성이 적어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아마도 이 뮤지컬은 김광석의 노래를 통해 관객 개개인의 ‘그날’을 떠올리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너무 많은 걸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노래로 자신의 그 날을 떠올릴 수 있었던 건 정학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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