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중 동네빵네 협동조합 이사장 인터뷰

 

2000년대 초반부터 프랜차이즈 제과점은 세력을 확장하며 개인이 운영하는 일반 베이커리의 생존을 위협했다. ‘동네빵네 협동조합’의 조합원들도 혼자였을 때는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동네 빵집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럿이 힘을 모으자 대형 프랜차이즈에도 맞설 수 있는 튼튼한 빵집이 됐다. 동네빵네 협동조합은 최근 골목상권을 살리는 협동조합 우수사례로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조합이 이렇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 제과기술의 명맥을 유지’하고자 하는 조합원의 신념이 큰 몫을 했다. 동네빵네 협동조합의 이사장인 신흥중(62) 씨도 46년 넘게 빵에 인생의 전부를 쏟아왔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신흥중 동네빵네 협동조합 이사장

협동조합을 만들게 된 계기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어요. 혼자서도 잘 됐다면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예요. 더 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었고 당장 가게를 닫아야 할 위기였죠. 옛날에는 동네마다 일반 베이커리가 군데군데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지금 운영하고 있는 베이커리 주변에도 제과점이 대략 6개쯤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반경 400-500미터에 프랜차이즈만 6개가 생겼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살 방법을 찾은 거예요.

 

빵집 협동조합의 선례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세무회계, 법무, 노무 등 복잡한 일이 많았어요. 특히 공장을 세우면서 일반 제과점이랑 다르게 제조허가를 받게 됐는데 그러면 적용받는 위생법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모르다보니 어려움이 많았고 여전히 이 부분에서 막힐 때가 있어요. 그래서 컨설팅회사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컨설팅회사에 지불하는 금액을 조합원이 십시일반 모아서 충당했지만, 지금은 중소기업청 산하 기관에 신청해서 지원 대상으로 선정돼 도움을 받아요.

 

협동조합 결성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전에는 가게에 큰 기계를 놓을 장소가 없거나 고가의 기계를 구입할 여력이 안 돼 낡은 기계를 쓰곤 했어요. 그렇다보니 제빵사의 기술이 아무리 좋아도 좋은 빵이 나오기 힘들었죠. 협동조합을 결성하고 공장시설을 갖추면서 최신식 기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어요.

이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머리를 모아 좋은 상품을 연구하고 검증이 된 다음에 출시하니 소비자 반응도 좋죠. 눈에 띄는 변화로는 매출이 많이 올랐어요. 거의 대부분 매장이 30-40% 올랐죠.

 

신촌 현대백화점에 입점하기도 했다

작년 11월과 올해 4월 총 2번을 각각 일주일동안 입점했습니다. 그 백화점 고객이 대부분 서대문․은평․마포구 주민이에요. 다녀간 손님들이 그 뒤로부터 우리 동네빵네 간판을 단 제과점을 이용해줘서 홍보에 도움이 됐어요. 백화점에서 성황을 이룬 후 국회에서 열린 ‘협동조합 우수상품 바자회’에 참가하기도 했죠. 아무래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백화점 입점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더 좋은 반응을 불러왔다고 생각해요.

 

프랜차이즈 빵집과 다른 동네빵네만의 경쟁력

우리는 최대한 천연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려고 해요. 그래서 주로 산지에서 바로 보낸 재료를 사용하려는 연구를 많이 하죠. 이사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공장에 모여 각자 개발한 빵을 시연합니다. 그렇게 상품화를 논의하고 출시하죠. 그런데 좋은 재료를 고집하다보니 저렴한 빵도 있지만 대부분은 프랜차이즈보다 조금 비싸요. 그래도 요즘 웰빙이 트렌드이니 고객들도 이런 점을 이해하고, 우리 빵을 좋아해줘요.

 

서울시 은평구 신사동에 위치한 공장에서 갓 구운 빵을 쟁반에 옮겨 담는 동네빵네 협동조합 직원

유통과정이 궁금하다

공장에서 대부분 생지 상태로 각 매장에 납품돼요. 생지는 반죽을 1차 발효한 상태인데, 이것을 매장에서 2-3차 발효 후 각자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어요. 그래서 같은 협동조합이지만 매장마다 모양이 다르죠. 빵에 들어가는 충전물도 조금씩 다를 수 있어요. 동네빵네 주력상품 몇 가지 빼고는 가게마다 상품이 다 다른 셈이죠.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도 ‘같으면서 다른 것’이에요. 가끔 “다른 가게에는 있던데 여긴 없냐”라고 묻는 손님도 있는데 이런 특징을 잘 설명해드려요.

 

전주 풍년제과, 대전 성심당 등 독특한 빵으로 전국적 인기를 끄는 빵집이 있다. 동네빵네를 대표하는 상품이 있나

처음부터 프랜차이즈에 대적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특별한 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고객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화학첨가물을 최소화하고 우리 농산물을 써서 만든 빵이 많아요. 특히 천연효모를 직접 배양하는데, 이를 위해 효모 기르는 기계를 구입했어요. 그렇게 기른 효모는 거의 모든 빵에 들어가요. ‘일주일을 꿈꾼 빵’은 그 효모를 넣고 낮은 온도에서 오래 발효해 만든 빵이죠. 무화과를 넣어서 만든 빵인 ‘무화과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재미있는 이름의 빵도 많아요. 가장 잘 팔리는 빵은 ‘노아갈릭’이에요. 노아의 방주처럼 둥근 빵 위에 마늘소스와 크림치즈를 버무려 올린 거예요.

 

오랫동안 빵집을 운영해 왔으니 단골도 많겠다.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면

다른 지역에서 제과점을 하다가 1995년 11월부터 지금의 신사동에 자리를 잡았어요. 올해로 만 19년이 됐으니 당시 초등학교 다니던 어린 손님들이 이제는 대부분 시집을 갔죠. 그런 손님들이 예전에 자기가 빵 사러 왔을 때의 나이만큼 된 아이를 데리고 올 때가 있어요. 지금도 여기서 하시냐면서 어릴 때 빵 먹던 기억에 찾아왔다고들 해요. “프랜차이즈 빵집 속에서도 지금까지 이렇게 끈질기게 버텨줘 고맙다”라고 하니 저로서는 뿌듯하죠. 이런 분들이 있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기분이 좋죠. 이렇게 고마운 손님이 생각보다 많아요.

 

신흥중 이사장에게 ‘빵’이란

빵은 한마디로 ‘내 인생의 전부’예요. 빵은 저를 서울로 올라오게 하고, 결혼하게 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하고, 작지만 집도 하나 살 수 있게 했죠. 지금은 아이들을 대학도 보내고 결혼까지 다 시켰어요. 빵을 만들어서 나온 돈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셈이죠. 큰돈은 못 벌었어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자식들에게 항상 너희도 빵을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해요. 자식들도 빵 덕분에 클 수 있었으니까요.

 

동네빵네 협동조합의 최종 목표

제빵사라는 게 대형공장을 차려서 하면 몰라도 큰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에요. 큰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안 해요. ‘꺼져가는 제과기술을 열심히 살려서 후배들이라도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는 마음이죠. 조합의 외형을 전국적으로 키우고 이를 통해 돈을 많이 벌었으면 하는 바람은 없어요. 단출하더라도 정말 조합에 들어오고 싶은 성의가 있는 사람을 가입시켜서 함께 하고 싶어요.

그리고 지방에도 차츰 빵집 협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우리에게 자문을 구하면 기꺼이 도와주고 있죠. 40년 가까이 제빵업에 종사하다 보니 지방에 사는 제빵사도 많이 알아요. 서로 아는 사이니까 우리가 처음 시작할 때 겪었던 어려움과 과오를 공유하기 쉽죠. 그들은 똑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지방은 지방대로 서울은 서울대로 각자 빵집이 살아나야 하죠. 서울에 있다고 해서 지방까지 확장하려고 하면 욕심 아니겠어요?

 

인생 선배로서 요즘 대학생에게 한마디

제가 태어난 1952년은 전쟁 중이기도 했고 정말 어려운 시기였어요. 못 먹고 고생하고 학교 못 다닌 사람도 많았죠.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즘 학생들에게 “너네 우리처럼 고생하고 살아야지 왜 놀기만 하냐”라고 하고 싶지 않아요. 우리 조합이 계획단계에 있을 때부터 많은 도움을 준 연세대학교 동아리 ‘인액터스’ 학생들만 봐도 절대 놀기만 하지 않거든요. 공부하는 걸 봐도 단지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해요. 여기 공장에 와서 일을 도울 때도 그 친구들은 항상 “저희는 지금 공부하고 있는 거예요”라고 해요. 학생들에게 일만 시키는 것 같아 미안한데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죠. 대부분 대학생도 같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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