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의 여러 가지 면모 중 우선, 역사를 알아보자. 기자는 역사를 직접 느껴보고자 월곡 곳곳을 누볐다. 그러던 중 많은 사람이 바쁘게 오가는 길목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상가를 찾았다. 그곳에서 월곡의 ‘살아있는 화석’으로 부를만한 옷 가게 '까불 이 세상'의 A씨, 떡집 '월곡 방앗간' B씨, 인쇄소 '일진사' C씨의 이야기를 통해 월곡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월곡의 옛날 모습은 어땠나요

A씨: 예전의 월곡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 지금 아파트가 들어선 곳은 산동네였는데, 쓰러져가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어.

B씨: 맞아. 지금의 동아아파트가 있는 자리에는 무허가 집들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그곳에 몰렸어. 그 좁은 한 집에 3-4가구씩 살았지. 정말 ‘살 부대끼며’ 살아야 했어. 동덕여자대학교와 진각사가 세워지기 전엔 참 별것 없는 동네였어. 그 두 건물이 들어선 이후에 음식점들과 상가가 많이 생겼지.

C씨: 옛날엔 시골 사람이 서울 올라오면 제일 먼저 오는 곳이 월곡동이라고 그랬어. 그만큼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거든. 그리고 이곳엔 밤나무가 참 많았어. 그래서 ‘밤나무골’이라고 불리기도 했지.

 동덕여자대학교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B씨: 예전엔 학교의 면적이 지금의 본관과 약학관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 크기도 작고 학생 수도 워낙 적어서 이곳에 대학교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였어. 이 일대에는 제약회사와 석유 공장들이 즐비했지. 그래서 그 당시엔 학생보다는 공장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을 더 자주 볼 수 있었어. 그 사람들이 월곡을 이만큼 성장시켜 놓은 주역이라 할 수 있지.

  상권은 어떻게 변화했나요

B씨: 몇십 년 전에 산동네의 무허가 집을 모두 없애버렸어. 그래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지. 그땐 사람이 워낙 많아서 떡이 잘 팔렸는데, 지금은 그에 비해 주민이 적으니 그때만 못해. 38년간 떡 장사를 하면서 수요가 갈수록 줄고 있어서 안타까워.

C씨: 예전엔 방학 때 손님이 거의 한 명도 없었어. 학생들이 학교에 오질 않으니 인쇄소를 이용할 사람도 없었고. 요샌 월곡에 사는 학생도 많아지고 가게도 늘어 방학 때도 사람들로 북적이지.

  과거와 비교해 좋은 점이 있다면요

A씨: 먹을 것, 볼 것, 즐길 것이 많아졌다는 것이 기뻐. 특히 맛집이 늘어 참 좋아. 젊은 학생들이 주로 찾는 음식도 먹어볼 수 있고 말이야.

C씨: 예전엔 판자촌에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골목길이 참 좁았어. 그 좁은 길을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다 보니 자주 부딪히기도 했지. 또, 워낙 집이 많다 보니 한 집을 찾으려면 오랫동안 헤매야 했어. 지금은 그때에 비해 여유롭지.

변화가 아쉬운 점은요

A씨: 이곳이 산동네였을 때, 밑에서 올려다보면 산과 어우러진 집들이 참 예뻤는데. 지금은 건물이 높이 들어서니까 산이 보이지 않아 아쉬워. 그때 그 아름다웠던 월곡의 모습은 모두 사라진 것 같아.

B씨: 전보다 사람은 줄었는데 차와 건물은 더 많아졌어. 그래서 예전에 비해 삭막하고 답답해. 산책할 때도 속이 꽉 막히는 느낌이랄까.

C씨: 예전의 월곡은 지금보다 훨씬 정이 넘치는 곳이었어. 손님이 없을 때 가게 앞에 돗자리를 펼치고 앉으면 그곳이 잔치 못지않았지. 그곳의 주변 상인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사람까지 다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눴어. 다들 한 손에 술과 음식을 들고 나와 나눠먹었지. 그게 힘들 때 가장 위로가 됐어. 요즘에도 지칠 때마다 그때가 그립더라고.

  월곡에 바라는 점이 있나요

A씨: 예전보다 많이 발달했지만 여전히 낙후된 곳이 많아. 밤에 가로등조차 켜지지 않는 곳도 많으니까. 또, 월곡에 생계가 힘든 사람이 모여 있는 건 여전하지. 나와 같은 상인들이 더 살기 좋은 동네가 됐으면 해.

B씨: 공원이 생겼으면 좋겠어. 녹지대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고 싶은데 월곡에는 마땅한 곳이 없는 것 같아. 예전엔 지금 건물이 들어선 곳에 산이 있었지. 그땐 자주 등산을 즐기곤 했는데 말이야.

 

그들은 40여 년 간 월곡의 어제와 오늘을 겪은 ‘월곡의 역사’ 그 자체였다. 세 사람은 “부모님, 형제 그리고 자식까지 모든 가족을 추억할 수 있는 곳이 월곡”이라며 앞으로도 쭉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며 입을 모았다.

강연희 수습기자 yhadell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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