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래구 동래읍성上-복천고분군

지난해 영화 <명량>이 흥행하며 임진왜란의 명소였던 곳들이 주목을 받았다. 부산 동래읍성 또한 그 중 하나다. 읍성이 있는 동래구는 남해안의 요새지로서 고대부터 왜구의 침입이 많았던 곳이다. 이에 성을 쌓아 침입에 대비했고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 송상현이 맞서 싸웠던 터전으로 알려져 있다.

읍성은 둘레 900m, 높이 4m의 긴 성벽으로 둘러 싸여있으며 그 안은 ‘독진대아문, 동헌, 복천고분군’ 코스로 구성돼 있다. 그중 기자는 부산 일대 지역의 역사를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복천고분군을 찾았다. 큰 건물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숭례문처럼, 고분은 빽빽한 주택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군은 삼국시대인 4세기에서 5세기에 주로 만들어진 가야 지배층의 무덤이다. 봉긋 솟은 구릉이 이어지는 형태이며 그 정상 부분을 따라 ‘덧널무덤’ 형태의 큰 무덤들이 만들어졌다. 가야시대의 대표적 무덤 양식인 덧널무덤은 직사각형 모양의 땅을 판 후 목곽을 설치하고 그 안에 관과 부장품을 안치하는 형식이다.

설명만으로는 와 닿지 않는 무덤 안을 살펴보기 위해 고분 옆 복천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나뉘어 각각 고분과 가야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무덤의 제작과정과 당시 실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고분 설명판의 생소한 단어에 대한 궁금증이 이곳에서 풀려갔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시신을 처리한 것은 구석기시대에도 존재했으나 본격적으로 무덤을 만든 것은 신석기시대부터라고 한다. 이때는 단순히 시신을 항아리에 넣어 땅 안에 묻는 ‘독널무덤’ 형태였다. 그러다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고인돌를 비롯해 돌덧널무덤, 움무덤, 돌널무덤 등 다양한 무덤이 등장했다. 복천고분군이 생겨난 삼국시대에는 나라마다 다른 무덤 양식을 갖췄다. 고구려와 백제는 돌무지무덤, 신라와 가야는 덧널무덤을 택했다.

제2전시실은 1전시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고분군에서 발굴된 각종 유물을 중심으로 꾸며져 화려한 가야 문화를 느껴볼 수 있다. 전시품은 현대의 장신구와 크게 다름없이 세련됐다. 하지만 영상으로 알게 된 그 제작과정은 현재의 그것보다 섬세하고 치밀했다. 또한, 가야의 대표적 유적으로 조개더미가 있다. 그 속에 섞인 백제와 일본의 물품으로 보아 각국이 활발히 교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 창, 화살촉 등의 무기류와 낫, 도끼 등의 농기구를 통해 그 시절의 장비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를 볼 수 있다.

다시 고분군으로 향해 봉우리에 오르자 동래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만난 동래읍성의 전 문화해설자 이용자(58) 씨는 오후 5시쯤 이곳을 방문하길 추천했다. 이에 기자는 그 시간까지 고분에 머물렀다. 5시에 이르자 그곳은 노을에 비쳐 더욱 아름다웠다. 복천고분군은 ‘삭막한 도심 속의 녹색 성’으로 표현되곤 한다. 많은 건물과 차에 싸여 시끌벅적하다가도 그곳에 다다르면 조용하기 그지없다. 봉우리까지 오르는 길이 힘들더라도 그 분위기를 한 번 쯤 느껴보는 것이 어떨까.

강연희 기자 yhadella@naver.com

저작권자 © 동덕여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