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1 화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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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동덕문화상- 소설 부문 당선작
2017년 11월 14일 (화) 22:38:00 동덕여대학보 ddpress@dongduk.ac.kr
   


•소설 부문 당선작

냉장보관 중
 

이안연(문예창작 13)

영덕까지 한 번에 가는 KTX가 없음에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일단은 기차에 몸을 실었다. 포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한다는 사촌의 말에 둘째 이모부가 “어이고, 참....”이라 중얼거렸다. 과연 그만한 수고를 할 만큼의 값어치가 있을까. 모두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둘째 이모네가 자신들 가족 몫의 표를 샀고 희주 역시 엄마 것까지 해서 두 명분의 티켓을 샀다. 사람들은 발권기기 화면에 영덕을 거쳐 가는 무궁화호가 여럿 있는 것을 끊임없이 못 본 척했다.
 “...진짜 이게 다 뭐라니. 내가 진짜 너무 놀라고... 처음 은란이한테 들었을 땐 뭔 소린가 해서 진짜 막... 그냥 알아서 잘 지내고 있거니 생각했지, 우리도 다 살기 바쁘고... 아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이미 애가... 얘, 은란아. 영범이한테서 더 연락 없었냐? 아까 언니한테 전화해 보니까 둘이 만났다고는 하던데...”
 이미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재차 물어대고 또 그걸 혼자서 대답하는 이모의 수다 소리와 함께 기차가 출발했다. 사실 희주는 외삼촌이 빠져 죽었다는 영덕의 한 바닷가 동네로 가는 중이란 사실이 내내 와닿지 않았다. 그녀는 까만 창문에 비친 친지들의 옆얼굴을 보았다. 이어폰을 끼고서 핸드폰 화면에 정신 팔린 사촌 동생과 옆에 앉은 이모, 그 바로 뒤에서 숨을 쉴 때마다 가랑가랑 고인 가래를 들이키는 이모부, 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먼저 출발한 큰외삼촌 네, 뒤이어 내려간 수원 큰이모 내외. 그 밖에 각자 흩어져 사는 나이 많은 사촌들과 아직 어린 손아래 동생들까지 하나하나 곱씹으며 희주는 명절에도 만나지 않는 외가 식구들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떠올려 보았다. 그 와중에 엄마는 벌써 창에 얼굴을 대고서 자고 있었다.
 김희주는 오늘도 역시 평소와 똑같이 별거 아닌 일상을 보내던 중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먹고 아르바이트에 다녀온 엄마와 딱히 영양가 없는 말을 주고받다가 무심코 시작된 취직 얘기에 또다시 지겨운 실랑이를 펼치고 있던 참이었다.
 하는 데 안 되는 걸 어떡해?
 하긴 뭘 해. 자기소개서를 두 줄 써서 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면접 전에 준 문제지를 대충 풀어서 내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몰랐잖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해본 적이 없는데.
 아니, 이게 한 두 번이냐고. 잘 좀 해봐.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왜 그러는 건데.
 희주는 몇 년 전까지 자신이 엄마의 취직문제로 인해 이토록 신경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엄마의 불합격 실적은 차곡차곡 쌓여, 어느 순간에 이르자 희주 안에서 펑 하고 터져버렸다. 그 이후 희주의 태도는 그녀가 중학생 때, 돈을 쏟아부어도 외고에 못 갈까 봐 되려 더 안달복달 못했던 엄마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그 시절 엄마가 희주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희주는 근래 자신의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결혼퇴사 이후로 쭉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엄마의 경력만 걱정하기도 벅찼다. 희주가 엄마에게 자기소개서 작성을 열심히 도와주면 면접에서 말아먹었고 면접전용 인터넷 강의를 다운받아 엄마를 공부시키면 오로지 그것만 신경 써서 정작 중요한 입사 지식은 모조리 까먹었다. 엄마는 그럴 때마다 나이와 상황을 포함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변명거리 뒤로 쏜살같이 숨었다. 그것은 결국 돌고 돌아 외동딸인 희주와 엄마가 박 터지게 싸우게 되는 이유로 굳어졌다.
 그렇게 오늘도 역시 처음 떠드는 것처럼 희주는 엄마를 거세게 몰아붙였고, 참다 못한 엄마가 “그만 좀 해!”라고 크게 소리쳤다. 알아서 한다는 엄마의 말에 희주는 대체 뭘 알아서 하냐고 맞붙었다. 딱 그렇게 말하던 그때 문제의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고 생판 처음 보는 지방 고유번호가 찍혀있었지만, 엄마는 전화를 잘도 받았다.
 “에, 송은란씨 되십니까?”
 “맞는데요.”
 “송영회씨랑 어떤 사이 되십니까?”
 “동생인데요.”
 “다름이 아니고, 사람이 죽었습니다. 바다에 떠내려왔어요.”
 통화음을 크게 설정해둔 탓에 상대방의 억센 사투리가 희주한테까지 들렸다. 희주는 삼류 드라마처럼 입을 억하고 크게 벌렸다. 엄마는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영덕 모 파출소라 밝힌 발신자는 외삼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하기보다는 자신이 시체를 이러한 경로로 발견했으며 핸드폰 연락처를 이렇게 저렇게 복구해 전화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만 열심히 떠들었다. 엄마는 2남 3녀 중 막내인 남동생이 갑작스레 죽었다는 사실이 생각처럼 와닿지 않는지 경찰의 곁가지 말들을 그저 멍하니 듣기만 하였다. 결국, 희주가 가까이 다가가 “사인이 뭐래, 익사야?”, “어쩌다 빠지신 건데? 낚시라도 가신 거야?”, “그럼 지금 어디 계신 거야? 경찰서? 어디로 가면 되냐고 물어봐, 얼른.” 따위의 질문들을 물어보게 시켰다. 엄마는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수강생처럼 더듬더듬 말을 옮겼다. 전화를 끊고서도 엄마의 표정은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영회야, 일 없으면 밥이나 한 끼 하러 와라.
 -보고.
 경찰은 맨 처음 직계가족에게 전화를 돌렸다. 허나 십 년도 전에 이혼한 전 부인이 받을 리 만무했고 군대 간 큰아들, 밥 먹듯이 핸드폰을 바꿔대는 작은 아들은 더더욱 깜깜무소식이었다. 결국 경찰은 가장 최근에 연락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번호를 눌렀다. 송영회 씨는 ‘누나3 송은란’이라 저장한 사람과의 간략한 문자를 끝으로 한동안 연락이 없더니 덜컥 사망 소식을 알렸다. 엄마는 큰이모를 시작으로 형제자매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분주한 수요일 오후였다.

 새까만 밤중에 탄 택시는 오만 원을 천 원짜리 몇 장에 동전 네 개로 탈바꿈시켰다. 택시 하나로 갈 수 있다며 사람 넷이 뒷자리에 꾸역꾸역 끼여서 탔다. 사촌 동생은 이모의 가랑이에 간신히 걸터앉았고 희주는 두 아줌마 사이에 껴 다리가 이상하게 꼬인 채로 50분가량을 불편하게 갔다. 엄마가 문 쪽으로 가까이 붙어줬지만 나아진 건 조금도 없었다.
 “아이고, 언니!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아니, 영회가 죽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어디 있대.”
 “언니, 영회 어디 있어? 좀 봤어? 애가 갑자기 죽었다니. 나 아직도 안 믿겨가지고 막...”
 “오빠는? 올케, 오빠 어디 갔어?”
 “불쌍한 우리 막내...”
 목적지에 도착하고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꺼진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본격적으로 어른들이 한바탕 울기 시작했다. CCTV는 못 찾았고 주변 해안가에 주차해있던 차량 블랙박스를 일일이 뒤지던 경찰들로부터 몇 군데에서 사망자의 모습이 찍혔다고 전화가 와, 큰 외삼촌과 사촌 오빠가 대표로 확인하러 갔다고 외숙모가 대신 행방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이모들과 엄마는 억장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거세게 울었다.
 “와보니까 경찰들이 벌써 병원으로 옮겨놨더라고. 의사들이 그러데, 아무리 길게 봐도 어제저녁이라고. 상해도 없고 한 것이, 새벽에 술 마시고 혼자 자빠진 거 같다면서. 혹 부검 원하냐고 묻길래, 어우, 됐다고 그랬지.”
 “그렇지, 그렇지. 못 하지.”
 큰이모는 조금 일찍 온 덕에 알게 된 소식들을 두 여동생에게 줄줄 쏟아냈다. 큰이모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둘째 이모는 바닥을 때리며 맞장구를 쳤고 엄마는 조마조마한 얼굴로 두 손을 모은 채 열심히 경청했다. 곡을 하는 내내 어른들은 사오십 년 전,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들의 어린 시절부터 평소에도 자신들이 얼마나 막내를 걱정하고 잘되길 요원했는지 모른다는 설명까지 덧붙여 가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눈물과 섞어 토하듯 쏟아냈다.
 “아니, 미심쩍은 사항이 요만큼이라도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진짜 내가 봐도 너무 멀끔해. 의사 양반들도 이상한 사건에 휘말린 것 같진 않다고 그러니, 그게 맞겠지.”
 “아이고... 우리 막내만 불쌍하지, 불쌍해... 어떻게 이렇게 가...”
 다시 통곡 소리가 이어졌다. 큰이모는 특히나 막내 외삼촌이 이혼한 이후로 챙겨주는 사람도 없어 늘 짠했다며 말하곤 자기 말에 충격받은 양 더 크고 탁한 울음소리를 뱉어댔다. 그 모습에 맞춰 둘째 이모와 엄마 역시 더욱 서럽게 울었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니 희주는 가슴이 따끔하게 아파져 왔다. 외삼촌이 돌아가셔서 슬프다기보다는 엄마가 울어서 슬펐다. 부고 소식을 들은 이후로 내내 희주의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귀찮음은 어느새 죄책감으로 변해 그녀를 괴롭혔다. 장례식장은 어떻게 보면 산 사람들을 위한 참회의 장소일지도 몰랐다. 우는 소리가 길어질수록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이기적인가에 대해서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또한, 근래 들어 특히나 좋지 못 했던 엄마하고의 관계에 있어 그녀가 잘못했던 일들이 떠올라 수치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러다 이모들과 엄마가 한데 똘똘 뭉쳐 슬픔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에서 희주는 더 큰 두려움을 느꼈다. 큰일을 치를 때 같이 감내해 줄 형제가 없다는 점이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다.
 “엄마... 언제 와?”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사촌이 엉금엉금 팔로 기어가, 제 엄마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외숙모는 “기다려. 곧 오겠지.”라 말하며 중학생 아들을 살살 달랬다. 희주는 처음에 큰 외삼촌이 언제 오느냐고 묻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엄마가 말할 때 밥 먹었으면 좋았잖아. 언제 먹을지 모른다고 먹으라 할 땐 듣지도 않더니.”
 “아, 이렇게 오래 있는 줄 몰랐지.”
 “장례식장 가는 건데 당연하지.”
 외숙모가 이모들 눈치를 보며 빠른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씨, 배고픈데 왜 안 와. 사촌 동생은 발라당 드러누웠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하던 게임을 마저 하는 그를 쳐다보며 외숙모가 아들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큰이모의 말 사이사이에 앓는 소리를 추임새로 넣던 둘째 이모마냥 사촌 동생은 모바일 게임을 하는 내내 배고프단 말을 끊임없이 지껄였다. 맞은편에서 결혼식 때 이후로 처음 본 새언니들이 작게 무어라 속닥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그중 한 명이 자기 아이를 안고서 슬그머니 일어나 옆방으로 쑥 들어갔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본, 사촌오빠도 따라서 일어나 옆방으로 들어갔다. 아주 잠깐 문이 열리고 닫히던 사이, 남녀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던 것도 같다. 희주는 벽에 머리를 더 기대었다. 문상객들이 과연 얼마나 올지, 장례를 며칠 동안 하는지, 집으로 돌아갈 때도 KTX를 타는지 따위의 것들을 생각하다 보니 턱 끝까지 따분함이 밀려들어 왔다. 그녀는 자신의 기분이 이래서 몸도 덩달아 축 늘어지는 걸까 아니면 이렇게 의욕 없이 벽에 기대있기 때문에 기분도 같이 처지는 걸까 헷갈렸다. 밖에서 요란한 자동차 바퀴 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징징대던 사촌 동생이 벌떡 일어나 잽싸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족발이었다.
 헬멧을 쓴 채로 배달원이 하나둘씩 비닐로 싼 음식들을 내려놓았다. 애들은 좋다고 웃으면서 비닐을 벗기기 시작했다. 다해서 얼마냐고 묻는 목소리와 함께 서로 내겠다는 실랑이가 엎치락뒤치락 이어졌다. 배달원은 껌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지 헬멧 아래로 보이는 턱이 분주하게 딱딱 움직였다. 카드결제 단말기에서 영수증이 혀처럼 튀어나왔다. 맛있게 먹으라며 큰이모가 아이들 틈으로 다가와 막국수를 대신 비벼줬다. 새콤한 냄새가 난다며 아이들이 자지러졌다. 결국 누가 계산했을까. 희주는 그게 궁금했다.
 “김희주.”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나무젓가락으로 생양파나 공연히 쿡쿡 찌르는 희주에게로 다가온 엄마가 작은 목소리로 빠르게 속삭였다.
 “얼른얼른 많이 먹어. 괜히 어물쩍거리다가 쟤들한테 다 뺏기지 말고. 알았지.”
 희주가 돌아봤을 때 엄마는 이미 “비계는 떼고 먹어. 살찌니까”라는 말까지 덧붙이고선 이모들에게로 돌아가고 없었다. 희주는 길이가 어긋나게 잘린 나무젓가락을 집고서 누르스름한 고기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아빠의 장례식 때 희주와 엄마는 탈진할 만큼 울고 사흘 동안 제대로 먹은 게 없어 몇 걸음 걸을 때마다 픽픽 주저앉았다. 진절머리 날 정도로 더운 8월이었는데도 둘은 더운 것도 몰랐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허나 영정사진을 멍청히 바라보며 벽에 기대 서 있는 희주에게로 엄마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그녀의 팔을 홱 잡아챘다.
 “작작 좀 긁어.”
 무기력한 표정을 하고서 희주는 모기 물린 데를 정신없이 긁고 있었다. 손톱을 세워 북북 긁은 팔목 안쪽이 빨갛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상처가 안 난 게 용할 정도로 시뻘건 팔을 보고서 희주는 까만 상복을 내려 팔뚝을 가렸다. 사촌형제들을 가리키며 하나라도 더 먹으라 한 엄마의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그만 좀 긁으라고 말하던 그때의 엄마가 떠오르는 목소리였다. 희주는 족발 비계를 떼어내고서 살코기를 집어 들었지만, 도무지 입에 넣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몇 번이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얼른 나와서 먹으라며 옆방 문을 벌컥 열어젖힌 사촌 동생은 방안을 보고서 화들짝 놀라 급하게 문을 다시 닫았다. 문에다 대고서 미안하다고 우물우물 말하더니 제 또래 사촌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무어라 수군거렸다. 두 남자애가 묘한 분위기가 실린 웃음을 킥킥 내뱉으며 연신 옆방 문을 노골적으로 흘끔거렸다.
 “근데 정화는 아직 오는 중이야? 언니. 애들 안 와?”
 “걔한테 얘기 안 했어. 정화 애가 다음 달에 돌인데, 잔치 앞두고 처가에서 상 치렀다고 하면 시댁에서 싫어할 거 아냐. 시부모랑 같이 사는데 이런 거라도 도와줘야지.”
 큰이모의 말에 둘째 이모가 “그래, 그래. 괜히 애 더 힘들게 할 필요 없지.”라 말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희주는 대학 졸업반이 되자마자 만기 적금을 타듯 병을 얻어 세상을 뜬 아빠가 생각났다. 그때도 저런 말들을 나누었을까. 희주는 이곳에 도착한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향냄새를 맡지 않았단 걸 깨달았다. 그제야 점점 이질적으로 다가왔던 부분들이 선명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무도 문상객을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장례식장 외관은 일반적인 건물이라 하기에 어폐가 있었다. 누가 봐도 조금 큰 사이즈의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입구엔 곰팡이가 잔뜩 슨 차양이 대충 말려 올라가 있었다. 유리문은 시커멓게 때가 껴, 손대는 것조차 꺼려지게 했고 그 와중에 화장실은 해수욕장 근처까지 걸어가야 있었다. 화룡점정으로 복도 전등들엔 구역질이 날 정도로 벌레시체가 까맣게 쌓여있었다. 누구라도 기피할 것 같은 장례식장을 이용 중인 사람들은 지금 고 송영회 일가밖에 없었다. 희주는 ‘왜 이런 데서?’라 생각했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장례식장 경험이 많은 건 아니었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굳게 잠긴 음료수 냉장고부터 해서 도우미분도 하나 없고 흰 종이가 깔린 나무 탁상 세 군데에선 족발과 막국수 잔재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장소만 떼고 보면 이게 명절에 모인 건지, 외조부모님 제사라 모인 건지, 자식들 행사에 온 건지 가늠이 안 되었다. 아무도 분향을 하지 않았다. 장례 단상 위엔 빈 액자만 덩그러니 세워져 있었다. 아주 가끔 사소한 문자나 전화를 할 정도뿐인 늙은 형제의 사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돼지 누린내가 진동하는 살코기를 친척들은 잘도 씹었다.
 그사이 큰 외삼촌이 돌아왔다. 외삼촌은 “앉아가지고 그거 보는 것도 고역이다, 고역!”이라 괄괄한 목소리로 소리치듯 말했다. 외삼촌 쪽으로 가족들이 가까이 다가갔다.
 “얘, 영범아. 뭐 좀 나왔어? 경찰이 뭐래?”
 “걔가 술이라도 마신 거라니? 자빠져서 빠진 거 맞대?”
  큰 외삼촌은 종이컵에 물을 약간 따른 뒤 꽁지만 남은 담배를 비벼 껐다. 그러던 와중에도 이모들과 외숙모는 계속해서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몰라! 그런 건 안 나왔어. 그냥 군청 쪽으로 해서 이렇게 떠내려온 걸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경찰들이 주변 CCTV를 좀 봤나 봐. 몇 군데서 애가 나오긴 했는데 왔던 길에서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니 그냥 저기 횟집 쭉 있는데 그쪽에 즈음에서 변을 당했거니 하더라고.”
 “아이고야...”
 “근데 말이야, 경찰이 나보고 고향이 여기냐고 묻네? 아니라고 하니까 그럼 경북이냐고 또 묻는 거야. 또 아니라고 했지. 그럼 사는 데가 어디냐는 거야. 그래서 일단은 수원인데 큰누이 빼고 다 뿔뿔이 흩어져 산다, 하니까 ‘그럼 이 분은 여기 왜 온 겁니까?’ 이러는 거야.”
 “.......”
 “송영회 씨 주소지는 양양이던데요, 낮에 전화 돌렸을 때도 사람들이 송영회씨하고는 잡부 일 하다가 만나서 잘 모른다고 하더래.”
 “...어... 하는 일이 이 근처라던가 그런 것도 아니고?”
 둘째 이모의 말에 외삼촌이 인상을 팍 찌푸리고서 팔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곤 단호한 어조로 “아예 요즘 일 자체가 뚝 끊겨서 송영회 씨 본 지도 오래됐다고 하더라“ 라고 덧붙였다. 텔레비전 방청객마냥 어른들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걘 여기 왜 온 거래?”
 티셔츠 앞섶을 펄럭이며 큰 외삼촌이 말했다.

 “그리고 또 경찰한테서 영회 애들 번호를 받아왔어. 오면서 전화해 봤는데 작은 애랑 연락이 돼서... 여기 일 말했다.”
 “아이고, 짠한 것들. 얼마나 놀랐을까....”
 생각만 해도 안쓰러워 죽겠다며 이모들이 눈물을 훔쳤다. 희주는 기억을 더듬어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막내 외삼촌이 이혼한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두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사촌 동생 하나가 희주에게 슬그머니 다가와선 작은 목소리로 “언니, 걔들 이름이 뭐였지?”라 물어보았다. 희주 대신 가장 나이가 많은 사촌오빠가 “송정훈, 송동훈”이라 말했다.
 “큰 애가 군대에 갔다네? 작년 중순에 들어갔다고. 형한테 알려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까 자기가 하겠다고 그러더라.”
 “다 컸네, 다 컸어. 애가 벌써 군대에 갔다니 세월 참 빨라. 둘이 몇 살 터울이더라?” 
 “그래서 동훈이는 먼저 오고 있대요? 고속버스가 아직 있나?”
 “내일 온다고 하는데?”
 “뭐? 내일 언제?”
 내일 당장은 상관없지만, 모레부턴 각자 일로 돌아가야 한다며 저마다의 사정들을 주절주절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전날 꺼내놓고 나와야 다음 날 손질해서 장사할 수 있다는 둥, 자기네 회사는 형제 경조사 연차가 하루밖에 안 된다는 둥, 애들이 곧 시험이라 학원을 빠지게 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아주 다양한 사유들을 내놓았다. 큰외삼촌은 따로 별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으나, 옆에서 외숙모가 외삼촌 팔뚝을 철썩 때리며 부부동반 모임 잊지 말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내일 화장터 갔다가 영회 사는 데도 좀 가보고 하려 했는데. 집 정리부터 해서 사망신고나 뭐 이것저것 처분할 게 한둘이 아닐 테니...”
 이것도 물어봐서 딱 알아왔다며 외삼촌이 톨게이트 영수증 뒷면에 적은 주소를 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줬다.
 “내일 영회 애들 오면 게네보고 가라고 하면 되겠네. 이럴 때 저 아버지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나 알게 되고 좋지. 안 그래?”
 “장승 같은 아들이 둘이나 있겠다. 큰 애도 오랜만에 밖에 나온 김에 지 동생하고 쭉 둘러보고 그러는 거지.”
 “그게 또 다 경험이고 공부다? 나중에 사회 나와서 살아보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 그런 것들이 다 쌓여서 진짜 재산이 되는 거야.”
 “그래도 어떻게 고등학생밖에 안 된 애 보고 그런 걸 하라고 시켜.”
 영 못 미덥지 않냐고 하는 외삼촌 말에 이모가 눈을 휘둥그래 뜨고서 그게 뭔 소리냐고 되물었다. 외삼촌은 족발 밑반찬으로 딸려온 오이를 으적으적 씹으며 “작은 애가 그러던데, 형한테 말을 하긴 하는데 안 나올 거 같다고.” 라 말했다. 입을 움직일 때마다 으깨진 오이 잔여물이 지나치게 잘 보였다.
 “그게 뭔 소리야. 당연히 와야지!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인데!”
 “어휴, 언니. 군대에서 외박, 외출 하는 게 뭐 쉽나? 위에다가 허가받고 승인 떨어지고 그래야 하는데.”
 “그걸 누가 모르냐. 그래서 못 나오는 게 아니고 안 나오려는 거래잖아.”
 “지 애미가 허구 헌 날 애들 아빠 험담하면서 키웠을 게 뻔하지, 난 진작에 그럴 줄 알았어!”
 자기 자식들이 당신들 장례식에 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닌데 금세 흥분해 불같이 성을 냈다. 사람으로서 도리의 문제 아니냐며 길길이 날뛰는 게 조금 전 통곡하던 때보다야 배는 더 활기차보였다.
 “그럼 은란이, 네가 뒷정리 좀 하고 가면 안 되겠냐?”
 “어?”
 “아, 그래, 그래! 은란이가 있었지. 잘됐다. 너 아직 일도 못 구했지?”
 “다행이다. 일이 또 이렇게 되네. 방금 네가 일 없다고 한 게 딱 이렇게 맞아 떨어지네.”
 성가신 일을 엄마에게 죄 떠넘기고는 다 해결됐다며 좋아했다. 누군가 피곤하다고 중얼거렸다. 그 말에 사람들은 옆방에 켜켜이 쌓인 방석들을 반으로 접어 바닥에 베고 누웠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소리에 하나둘씩 눈을 감았다. 허나 희주는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방석을 가져다준 사이 베고 잘만한 것들은 이미 동이 난 지 오래였다. 이리저리 돌아누울 때마다 장판에 맨살이 쩍쩍 달라 붙어댔고 머리에 베고 누운 두루마리 휴지심이 계속 튀어나와 희주의 관자놀이를 괴롭혔다. 휴지를 납작하게 만들려고 옆을 꾹꾹 누르다가 두루마리 휴지가 그만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버렸다. 희주는 휴지를 다시 주워오는 걸 포기하고서 그냥 맨땅에 머리를 뉘였다.
 희주를 제외한 모두가 잘만 잤다. 향을 하나 피워두고 단상 옆을 지키는 사촌오빠마저도 앉은 자세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젠 하다 하다 음료수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까지 거슬렸다. 한참을 뒤척이던 희주는 결국 자는 것을 포기하고 핸드폰이나 하자 싶어, 누운 자세 그대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화면을 켜자마자 배터리 부족 알림창이 떴다. 되는 일이 없다.
 “송지환, 자냐?”
 빈 콘센트를 찾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던 희주는 갑자기 들려온 외숙모의 목소리에 눈을 콱 감았다. 희주가 다들 자는 중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외숙모도 그러했는지, 단상 옆에 앉아있는 자기 아들에게로 다가갔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불빛에 외숙모 그림자가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너, 누나한테 사과했어...?”
 “.....”
 “지영이가 이제 너 있으면 집에 안 내려오겠다고 난리야. 막내 태어나기 전까지 서로가 유일한 형제였는데 왜 그렇게 남 보듯 해. 잘 지내는 게 부모한텐 효도야.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얼른 누나한테 전화로라도 사과해.”
 “아, 뭐. 나만 잘못했냐고.”
 목소리 좀 낮추라고 다급하게 말하는 외숙모 목소리가 들렸다. 희주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모부와 외삼촌이 신나게 코를 고는 사이사이로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잘도 들렸다.
 “휴가 때 좋자고 모였는데. 그러고 네 누나 울면서 집 갔어. 알아?”
 “그니까 그게 나만 잘못해서 된 일이었냐고. 누나가 먼저 시작했잖아!”
 “엄마가 언제 누나가 잘했다고 그랬어. 그리고 목소리 줄여, 다들 자는데...”
 “뭐 맨날 나한테만 그래놓고. 그리고 누나가 나 가지고 놀리니까 다들 좋다고 웃었잖아, 사람 무시해?”
 “언제 또 무시했다고...”
 “했다고! 그리고 내가 기분 나쁘다는데, 먼저 조롱한 건 괜찮고 내가 화내는 건 잘못됐다는 거잖아, 지금!”
 “그렇다고 매형을 때리면 어떡해.”

 희주는 슬금슬금 잠이 쏟아졌다. 아득한 정신 속에서 전에 엄마가 아빠 사십구재 때 이런 일이 있었다며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당신, 큰 처제가 작은 처제한테 돈 빌려달라 할 생각이라던데?
 어, 나도 들었어. 어쩌지? 우린 진짜 그 돈 필요한데.
 어쩌긴 뭘 어째, 우리가 먼저 해야지.
 근데 빌려줄까?
 해봐야지. 해줄 때까지 해봐야지.
 엄마는 둘째이 모가 자신에게 돈을 꿀 생각이었단 것도 몰랐고 큰이모 역시 그런 의도로 사십구재에 온 것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큰 외삼촌이 “좋은 투자처를 알고 있다!”라며 아빠의 퇴직금을 들먹였었다.
 아침을 연 식당이 한 군데도 없었다. 기사 식당 같은 데를 찾아가면 있기야 하겠지만, 사람들은 텅 빈 배를 공연히 문지르며 예약해둔 화장터로 가자고 밖에 말하지 않았다. 직접 운전하고 내려온 가족들 차에 몇 명씩 찢어져 엉덩이를 비집고 올라탔다. 그마저도 모자라 희주는 사촌 동생 두 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갔다. 이럴 때만 어른 취급 받는다고 생각하며 희주는 택시비를 지불했다.
 화장터는 장례식장만큼이나 남루했다. 희주는 내리자마자 ‘죽어도 이런 곳에서 태워지기 싫게 생겼다’라고 생각했다. 이미 죽은 다음에 오는 곳을 보고 ‘죽어도’라니. 말이 이상했지만, 진짜 죽을 만큼 오기 싫게 생겼다. 새벽 6시 40분의 화장터 출입구 쪽으로 군인 한 명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와 희주가 눈이 마주쳤을 때 의외로 상대를 알아본 건 군인 쪽이었다.
 “....희주 누나.”
 희주는 군복 위로 깨끗하게 박음질된 명찰을 쳐다봤다. 송정훈. 정훈은 희주를 보고서 그대로라며 신기해했다. 허나 희주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사촌의 어릴 적 얼굴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 오랜만이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지? 어... 너 군대 갔구나. 근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여기서 별로 멀지 않다고 말하며 정훈이 베레모를 벗었다가 다시 썼다. 머리카락 대신 두피에 수염이 난 것 같았다. 희주는 이런저런 말들이 하고 싶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또 무슨 말을 해도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안 들어가고 거기서 뭐 하냐.”
 친척들이 화장터에 도착했다. 우두커니 서 있는 희주를 본 사촌오빠가 왜 그러고 있냐고 물으며 다가왔다. 그러다 정훈의 얼굴을 보고서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훈이? 정훈이 맞지? 아빠! 여기 정훈이가 왔어요! 막내 외삼촌 큰아들! 이모, 이모! 여기요!”
 삽시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특히나 어른들은 정훈의 얼굴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제 아빠와 어쩜 이리 똑같냐고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래, 네 동생이 연락을 줬나 보지? 잘 왔다, 잘 왔어. 암, 와야지. 와야 하고 말고.”
 “그럼. 예부터 부모와 자식 간은 하늘도 못 가르는 거랬어. 가족이 그런 거야.”
 “얘 바지 고무링 넣은 것 좀 봐.”
 “정훈이, 너. 네 아빠 오랜만에 보는 거지? 아버지랑 연락은 좀 하고 지냈냐?”
 “영회 얼굴을 못 봐서 어떡해. 지금이라도 가서 화장 시간을 좀 늦춰볼까?”
 “영안실에서 시간 맞춰 보내주기로 했는데 도착했으려나.”
 정훈이 안 봐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들은 사람은 희주뿐이었다. 희주는 외삼촌과 닮았다는 그 얼굴을 쳐다보았다. 역시 그래도 잘 모르겠다 싶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훈은 어른들의 기세에 휩쓸려 화장터 대기실 안으로 또다시 들어갔다. 희주와 달리 어른들은 정훈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온갖 질문 공세를 펼치는 와중에 알림음과 함께 대기실 전광판 위로 [故人 송영회 화장 중]이란 글자가 떴다.
 “아버지 소식 듣고 많이 놀랐지? 어휴, 가엾어서 어째. 이렇게 하루아침에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것도 우리 중 막내가 먼저 갈 줄이야... 아이고.”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어요.”
 “응? 응?”
 “보험금 실수령자를 저하고 제 동생으로 설정해 놓으시곤 갑자기 해지하셨더라고요.”
 정훈의 말에 이모들의 눈에서 다시금 눈물이 펑 하고 터져 나왔다. 역시 자식 생각하는 건 부모밖에 없는 거다, 같이 못 살게 되었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생각하고 있었던 거라다, 등등 열심히도 떠들어댔다. 그러나 정훈의 말을 들은 희주는 저도 모르게 ‘아.’ 하고 입을 떡 벌렸다. 막내 외삼촌은 자살하신 것이었다.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희주의 머릿속에선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람을 태우는 일이 일이십 분이면 끝날 것이라 여겼던 모양인지 사촌 동생들은 배고파 죽겠는데 언제 끝나냐며 연신 투덜거렸다. 희주는 담배가 피고 싶었다. 엄마 몰래 피우는 담배였다. 지금까지 숨겨오던 노력을 한 번에 무너뜨려서라도 지금 당장 담배를 피우고 싶었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방 안을 뒤적였다. 담배는 있었지만 라이터가 없었다. 화장터 한복판에서 불이 없었다. 의자에서 일어나는 희주를 보고 엄마가 어딜 가냐고 물었다. 희주는 우울한 목소리로 바람 쐬러 간다고 말했다.
 희주는 담배를 입에 문 채 멍하니 기대 서 있었다. 냉장실에 처박아 놓은 채소 나부랭이처럼 희주와 엄마는 서로에게 지겨워져 버린 걸지도 몰랐다. 희주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서 혓바닥으로 입에 문 담배를 빙글빙글 돌렸다. 
 “누나. 나, 가볼게.”
 “...어?”
 군모를 다시금 고쳐 쓰면서 정훈이 말했다.
 “소대장님이 태워주신 거라. 저기 앞에서 차 대고 기다리시거든.”
 “어른들이 밥 먹고 가자던데... 어, 너도...”
 “뭐 하러. 굳이.”
  그 말을 끝으로 정훈은 홀연히 화장터를 떠났다. 그가 걸을 적마다 군홧발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희주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기실로 돌아갔다. 친척들은 매생이 국밥을 먹을지 백고동찜을 먹으러 갈지에 논의 중이었다. 사촌 동생 하나가 희주에게 다가와 언니는 뭐가 좋냐고 물었다. 둘 다 싫다고 징징대는 아이도 있었다.
 “순 어른들 입맛이야, 그치?”
 긴 논의 끝에 식사 메뉴는 문어 숙회로 결정이 났다. 뼛가루는 바다에 뿌리기로 했다. 정훈이가 떠나기 전, 아버지께서 바다를 좋아하셨으니 바다에 뿌려달라고 했다는 말에 가까운 해변으로 향하였다. 희주는 바람에 날리는 가루들을 쳐다보며 제발 엄마가 취직에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둘째 이모가 이 근처 잘 하는 집을 검색했다며 앞장서서 모두를 인솔했다. 바다에 왔으니 바다에서 난 걸 먹자며 모두가 입맛을 다셨다.
 

소설 당선 소감

감사합니다. 뚝 잘라 팔아버린 어느 신체 부위 같은 이 소설을 긍정적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은데,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간 써왔던 글들도 하나같이 이런 식이었습니다. 딱 들어맞는 퍼즐 조각을 찾고 또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해 엇비슷한 걸 골라 대충 모면하는 식이었지요. 그래서 항상 저의 글쓰기는 자괴감과 초라함, 유치하고도 조악한 미사여구들을 동반했습니다. 휴학을 하고서 저는 온갖 물감들이 말라 덕지덕지 붙어 있는 붓을 빠는 정도로밖에 지내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써야 좋을지, 뭘 써야 좋을지, 계속 써도 좋을지 고민만 실컷 하다가 복학을 했고 발목까지 숭덩 빠져버린 펄 한복판인양 종종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허나, 붓을 빨고, 햇볕이 통 들지 않아 만족스럽진 않음에도 말리기 위해 붓을 걸고, 솔에서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걸 바라본 그 기간들이 마냥 쓸모없는 건 아니었다는 격려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글을 쓴다고 입으로는 잘도 지껄이면서 얼마나 제가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검증에 목을 맸는지 알 수 있어,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독려와 함께 시작이라 생각하겠습니다. 더 많이 읽고 더 열심히 쓰고 더 사유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더 제 마음속 냉장고를 정리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설 심사평

책상 앞에 붙어 앉아 문학에 대해, 인생에 대해, 혹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 깊이 고뇌했을 응모자들께 우선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작품마다 공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일일이 장점을 말해주고 싶으나 지면이 협소하여 몇 편을 가려본다. 불완전한 문장, 단조로운 전개, 상식적인 결말, 자의식 과잉을 경계하며 「여름 살기」, 「존재의 이유」, 「뱀의 빌라」, 「슈끄메이」 ,「냉장보관 중」을 먼저 골랐다.
종교 행위의 강박을 문제 삼고 있는 「여름 살기」는 구성이 돋보였다. ‘반찬’을 매개로 엄마, 친구, 고시원 남자를 의미 있게 연관시켰다. 그러나 신앙인의 인간적 모순과 종교의 속성을 등치시키는 바람에 주제가 모호해졌다. 「존재의 이유」는 거침없는 상상이 흥미로웠다. 고립된 존재가 자신을 기만하는 현실에 도착적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결말이 눈에 띈다. 소통의 실패를 반어적으로 보여주는 이 결말은, 그러나 재미를 충족시키는 데 머물러 있다. 관계의 의미를 새롭게 규정하는 힘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뱀의 빌라」는 사실과 환상을 봉제선 없이 넘나드는 솜씨가 시선을 끌었다. 소문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이 파괴되는 과정 전체를 은유로 그려내는 대범함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결말에 설명조의 목소리를 넣어 작가의 조급증을 드러내고 말았다. 「슈끄메이」는 문제의식이 신선했다. 운명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결정된 세계와 자유 의지의 대결 관계를 구체화하기 위해 ‘책’을 등장시킨 것은 다분히 작위적이다. 소설의 내적 논리를 확보할 다른 방도가 필요해 보인다.
가장 관심 있게 본 작품은 생의 아이러니를 밀도 있게 드러낸 「냉장보관 중」이었다. 독특한 발상에 기대지 않고도 생기 있는 장면 묘사와 군더더기 없는 대사로 이야기에 집중하게 했다. 외삼촌의 돌연한 죽음을 서사의 중심에 둔 채 작가는 외가 친지들로 대변되는 범인들의 부박한 삶 쪽에 시선을 던지고 있다. 성과 속이 뒤섞인 공간 ‘장례식장’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관조의 미덕을 살리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어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책상 앞으로 가서 고독한 시간을 견디게 될 응모자들 모두에게 문운이 함께하길 빈다.


이주미(문학박사·교양교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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